전주칼럼

제목예전 홈페이지 글 전체모음2018-07-12 08:3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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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전북신문 칼럼 ‘아침을 열며’(2014년 3월 25일자)


한옥마을 목련이 활짝 폈다. 개나리 황금종이 담벼락에 늘어지고 임실 구담마을 매화, 구례 산동 산수유도 만개한다. 이산저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하지만 이 계절은 예정된 배신이다. 왔다가 후딱 가니 반겨한들 쓸데 있나. 봄은 가나니 저믄 날에. 첫 사랑, 첫 치마처럼 온 몸에 봄을 감고 속절 없이 운 것이 어디 소월(素月)뿐이겠는가. 보통 사람들의 노래는 훨씬 더 아릿하다.




#1. 도시의 밤, 방황하는 남자.




아침부터 봄비가 내렸다. 시린 목덜미를 가리기 위해 트렌치 코트 깃을 세우고 충무로를 걷다보니 상가 유리창에 그녀가 어린다. 비처럼 사랑처럼 눈물처럼. 뭐가 자꾸 흘러내리는 바람에 별 수 없이 카페에 앉아 편지를 쓴다. 광화문 우체국에서 부치려 했으나 호주머니 속 편지는 언제나처럼 부치지 못 한다. 보신각 골목길을 돌아나오며 꾸깃꾸깃 편지를 찢고 종로 5가 대학로 쯤에서 담배를 꺼내 문다. 마로니에 잎이 바람에 흔들린다. 한참을 걷다보니 다시 명동. 눈부시던 네온 간판은 꺼지고 누군가 버린 꽃다발이 거리에 뒹군다. 유호 작사, 현인 작곡 ‘서울야곡’(1953)의 봄은 밤늦게까지 서울을 방황한다. 또 다른 노래. 이번에도 봄이지만 시공이 판이하다.




#2. 눈부신 날, 신작로, 여자.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 할 만큼 눈 부신 푸른 날. 연분홍 치마 흩날리고 옷 고름 씹으며 맘 졸여 기다리는데 무심한 산 새는 지저귀며 날아간다. 기다림에 지쳐 냇가로 와 풀잎을 띄우면 새파란 잎은 정처없이 잘도 흐른다. 인생처럼, 내 마음처럼. 새로 닦은 시골 아스팔트 길 위 햇빛이 쏟아지고 멀리서 타닥타닥 짤랑짤랑 우편마차 청노새가 달려오나 오늘 역시 내게 오는 편지는 없다. 어느새 저녁. 하루내 기다리고 기다리다, 타다 타다 못한 처녀 속은 황혼 속에 앙상히 메말라간다. 사랑은 천벌이다. 봄날이 가는데, 모든 아릿다운 색깔과 음향 속에서 내 무채색의 사랑만 기약 없는데 무슨 천벌이 더 필요할까. 손로원 작사, 박시춘 작곡의 ‘봄날은 간다’(1950)는 색의 향연이다. 연분홍, 산제비, 새파란, 풀잎, 꽃편지, 청노새, 황혼, 구름 등 갖은 색깔이 교차한다. 작사자 손로원은 원래 풍경 화가 출신이다. 화가의 시는 유행가로 써도 이만큼 된다.




두 노래 모두 3절까지 있고 3절까지 다 불러야 제 맛이 난다. ‘서울야곡’은 도시처럼 분주하다. 하루 종일 봄비를 맞으며 충무로, 종로, 대학로, 명동으로 돌아다닌다. ‘봄날은 간다’는 맑은 날 제 자리에 선 포즈다. 산새와 시냇물과 우편마차, 자연과 세상이 유전하는데 내 사랑만 홀로 선 자세여서 더 애처롭다. ‘서울야곡’의 쓸쓸함은 사랑 때문만은 아니다. 아마 대도시에 널린 돈, 명예, 자유, 헛 기쁨 속에서 헤매는 상징이기도 할 것이다. 그걸 찾아 도시로 온 ‘서울야곡’의 그는, ‘봄날은 간다’의 그녀가 기다리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자식! 편지라도 한 장 보낼 것이지.




봄은 찬란한 슬픔이다. 파란 강, 하얀 새, 푸른 산, 붉은 꽃은 또 오고 또 곧 지난다. 아직 초입이지만 이 봄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정작 슬픈 건, 아무리 봄이 와도 내가 마중을 못하는 것이다. 시인이 시인인 이유는 보통사람의 시인됨을 끄집어내주기 때문이다. 춘색이 아무리 찬란하면 뭐하나. 자신의 춘심(春心)을 끄집어내지 못한다면.




찢어버린 편지 한숨과 그것을 기다리는 앙가슴은 봄날의 영원한 주제다. 이를 잊지 말고, 노래방 가면 반드시 3절까지 부르시길. ‘봄날은 간다’의 그 찬란한 트럼펫 전주가 들리는 듯하다. 설레지 않나?




새전북신문칼럼(4월22일자 11면) ‘제발…’


이건 뭔가. 반갑잖은 기시감인가. 세월호는 나를 다신 마주치고 싶지 않은 지난날로 실어 나른다. 서해페리, 성수대교, 대구 지하철. 지긋지긋한 사건의 연속이었다. 가슴 먹먹하고 머리 속이 하얗게 돼버렸지만 기사를 작성하고 남보다 빨리 송고해야 했다. 그전에 진작 기자노릇을 집어쳤어야 했다는 생각마져 든다. 그랬다면 이럴 때 남들처럼 가슴 조이며 TV 앞에 앉았을 수나 있을 것을. 요즘 나는 TV를 정면으로 못 본다. 이름 모를 무학여고 학생의 피묻은 작은 구두, 대구지하철 속의 그 새카만 냄새가 오랜 시간을 넘어 한꺼번에 엄습한다. 배 화면 저편에서 뭐가 튀어나올 듯하다. 이것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인지.




1994년 10월 21일 오전 7시 48분. 성수대교는 가을비 내리는 날 아침에 무너졌다. 마침 월급날이이어서 새벽부터 누구와 저녁 약속을 잡을까 한가하게 헛 생각 하던 차에 날벼락을 맞았다. 데스크로부터 전화를 받고 현장에 도착하니 완전히 구겨진 16번 버스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 버스는 부러진 교각 상판에 운전적이 대롱대롱 매달렸다 뒤쪽부터 떨어져 희생이 컸다.  주변에 핏자국, 신발, 옷 가지가 널렸다. 역시 망가진 베스타 승합차와 세피아, 프라이드 승용차 등도 흩어져 있었다. 이날 32명이 사망했고 그중 9명이 여중, 여고생이었다. 왜 꽃같은 그들을 우리는 항상 앞세우나. 성수대교 북단에 위령탑을 세웠으나 오히려 허망했다. 사고 5년 후(1999년) 어느 여름날 사망 여고생의 한 아버지가 바로 위령탑 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서해페리(1993년 10월 10일) 침몰은 기자 입문 후 첫 번째 큰 사건이었다. 그 때는 현장에 접근 못하고 사고 해역 바닷가에서 우왕좌왕했다. 유족들의 오열에서 비극을 실감했다. 사망자 숫자를 정확히 파악하라는 데스크 지시가 빗발쳤으나 경찰, 병원, 재난본부, 유족이 다 제각각이어서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압도적인 슬픔 속에서 숫자, 팩트에 매달리느라 쩔쩔맸다. 그리고 이제사 고백한다. 서해페리 고 백운두(당시 56세) 선장께 죄송하다. 사고 후 육지 모처에서 백선장을 봤다는 루머가 돌았고 당국은 급기야 그에게 지명수배까지 내렸는데 이를 기다렸다는 듯 기사화했다. 다른 신문도 다 그랬으나 그렇다고 내가 던진 돌의 무책임이 경감되는 것은 아니다. 백서장을 비롯해 선원 7명 모두 나중에 인양된 선박 안에서 발견됐다. 그들은 최후까지 승객구조 작업에 힘썼다. 다시 그들에게 사죄한다.




대구지하철 참사는 2003년 2월8일 아침 9시53분에 났다. 192명이 사망했다. 사고 현장에 이튿날 도착해 맨 먼저 한 게 마스크를 산 일이다. 먼저 도착한 동료가 권했는데 그대로 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참담했다. 대구 중앙로역에 빽빽이 붙은 가족, 친구들의 손글씨 사연을 옮겨 적다보니 취재노트에 눈물이 떨어졌다. 최후의 순간에 그들은 휴대전화를 붙잡고 사랑하는 이들을 불렀다. 결혼 1년째인 한 신부는 깜깜한 지하철 안에서 남편에게 숨가쁜 목소리로 “오빠, 사랑해”란 말을 남겼다. 한 초로의 부부에게는 지하철 안의 막내아들이 “불효를 용서해주세요.”라고 했다. 그들이 남긴 마지막 통화, 문자는 ‘사랑해’, ‘미안해’, ‘용서해’가 대부분이었다. 슬픔에 몸을 가누지 못하는 유족들에게 나는 이런 걸 묻고 다녔다.




아침부터 세월호를 말하긴 정말 싫다. 하지만 그것 말고는 당분간 아무 것도 할 게 없다. 말을 해도 건성건성이고 음악을 들어도, 밥을 먹어도 그렇다. 세월호를 주제로 별 칼럼을 다 쓸 수 있을게다. 안전 불감증, 노블리스 오블리주, 지도자 선택의 중요성, 나아가 오는 6월 총선이 그래서 더 중요하다는 등 등. 그러나 나는 그게 왠지 다 거짓말 같다. 누구에 대한 분노도 아니고 지금은 한탄 뿐이다. 제발 몇이라도 생존해 있길. 그것만을 빌고 빈다. 전직 기자 건 누구건, 대통령이건 유족이건 다 한 맘일 게다. 제발.




새전북신문 칼럼(5월29일자 11면), ‘동학혁명, 그분의 유골’ 




지난 1995년 7월 한승헌 당시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이사장(변호사)의 눈길이 일본 아사히 신문을 인용한 한 국내 신문 기사에 붙박히듯 멈췄다. 동학군 장군으로 보이는 인물(‘그 분’이라 하자)의 두개골이 일본 홋카이도서 발견됐다는 내용이었다. 한 이사장은 즉시 일본에 확인하는 한편 천도교, 동학혁명 유족 관계자 등과 함께 봉환위원회를 꾸려 모셔오길 서둘렀다. 위원회 사무총장은 신순철 씨가, 실무 사무국장은 문병학 씨가 맡았다. 이들의 노력으로 1년만인 1996년5월 30일김포공항에 그 분 두개골이 도착했다. 같은 날 경찰 차량 에스코트로 예를 갖춰 전주에 도착, 오후에 덕진농합예술회관에서 진혼제가 열렸다. 흰 국화가 식장을 덮다시피 했고 1백여 년 적지를 떠돌던 선각 열사를 되 모신 행사에 온 고을 뜻있는 자들이 숙연했다. 이로써 동학은 실재했다. 이태조 어진을 한양서 모셔오던 지난날 전주는 왕권의 고향이었다. 수 백 년 후 그 분의 귀환으로 이제 민권의 고향이 됐다.




그 분은 홋카이도 대 문학부 창고 종이상자에서 발견됐다. 홋카이도 원주민인 아이누 족 6명의 두개골과 함께였다. 홋카이도 대학은 일본 제국주의 시절 인골학 연구 특성화 대학으로 지정된 곳이다. 말이 연구지, 남의 혼을 잘라 통치 목적으로 들여다 본 무뢰한의 만행에 불과했다.




그 분 두개골 왼쪽 아래편엔 ‘한국 동학당 수괴. 사토 마사지로에게서’란 글씨가 씌여있고 1906년 전남 진도에서 거뒀다는 쪽지도 함께 발견됐다. 유골 봉환을 추진한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가 국립과학수사원 등에 의뢰해 수 년 간 신원 확인을 위해 노력했으나 아직까지 누군지 밝히지 못하고 있다. 진도에서 그를 거뒀다지만 진도는 장흥 전투, 해남 전투 등에서 밀린 동학의 마지막 패전지로 팔도 용장이 모인 곳이다. 그 분은 황토현 대승에 참전했을까? 우금치 패전에도 변심치 않고 진도까지 왔다 결국 한을 남겼을까? 김구처럼 황해도 접주인가, 아니면 최시형처럼 경상도 출신인가? 고향도, 이력도 알 수 없다. 수많은 위대함처럼 익명일 뿐이다.




최근 시민단체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 혜문 스님이 전주역사박물관에 보관중인 동학군 장군(=그 분)의 두개골을 조속한 시일안에 안장해야 한다고 촉구하면서 그 분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다시’라고 함은 그간에도 간헐적, 주기적으로 지적된 사항이기 때문이다. 지난 2010년 6월30일자 한겨레 신문에도 ‘96년 봉환 동학군 지도자 유골 15년째 안장 미뤄’란 제목이 보인다. 기사 요지는 비슷하고 ‘몇 년 째’라는 숫자만 달라지니 주기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혜문 스님 등은 ‘역사적 의의가 큰 유물을 박물관 창고에 방치하고 있다, 이는 우리 시대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라며 법적 책임까지 물을 태세다. 그 분을 모셔오긴 했으나 이후 후손들 처사가 영 시원찮다. 찾는 이 없는 컴컴한 박물관 수장고에 19년째 보관만 했으니 동학을 역사에 매립한 격이다. 이래서야 홋카이도 대 창고 종이상자와 다를 게 뭐 있을까.




하지만 전주역사박물관은 보관을 위탁받았을 뿐이다. 동학혁명기념일도 정하지 못했고 혁명 당시 산화한 수많은 열사들이 공식적으로 누울 곳도 마련하지 못한 것이 그분을 방치, 유전(流轉)시키고 있는 진짜 이유다. 왜 그걸 못 정했나? 이른바 동학의 후예, 관계자, 전문가들이 서로 평행선으로 우겼기 때문이다. 동학을 무슨 훈장처럼 소유하고 빼앗기지 않으려 하다 아무런 결정도 못한 채 동학의 진짜 의미를 방기했다.




유골 봉환 추진단계서부터 실질적인 관리 책임을 맡고 있는 곳이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다. 이 기념사업회는 그간 백방으로 노력했다. 진도나 정읍시 등과 여러 차례 진지하게 논의했으나 번번히 안치가 틀어졌다. 대의는 분명하되 실제에선 당자간 또는 지방끼리 이해가 엇갈려 책임지려는 자가 없으니 기념사업회로선 유구무언이되 부글부글 속이 끓을 노릇이다.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는 어제(28일) 이사회를 갖고 동학 장군 유골에 관한 현안을 논의했다. 그간 노력할 만큼 했고, 올해 내 어떻게든 결말을 짓겠다는 결기도 강하다. 관련자들끼리 협조해 이번엔 꼭 가슴 뿌듯한 결정을 내려주시길 바란다. 그게 목 없이 구천을 떠 돈 수많은 ‘그 분’들 뜻 아니겠는가? 모레(31일)는 혁명군이 동학 깃발 아래 전주에 입성한 지 120년째 되는 날이다.




새전북신문칼럼 온누리 – ‘작불납’(作不納) 2014.6.19. 


조선은 관리를 어떻게 뽑았나? 왕 마음대로 임명했나? 경국대전 등에 보이는 다음 몇 가지 용어들은 생소하지만 재미도 있다. ◾원의(圓議) : 둥그렇게 모여 의논한다는 뜻이니 서양 ‘원탁의 기사’처럼 민주적인 느낌이 든다. 실제 민주적이다. 사헌부, 사간원 벼슬아치들이 관직 후보를 대상으로 두루(=圓) 심사(=議)한다. 어떤 실력자가 추천했건, 심지어 왕의 교지일지라도 살벌하게 단점을 들춰내는 끝장심사. 보통 3회를 반복하니 엔간한 전력이 다 드러난다. ◾작불납(作不納) : 이상 둥그런 심사 결과 부적격자임이 드러날 경우 도저히 “임명(=作)을 못(=不) 받아들이겠나이다(=納)”고 강력히 저지한다. 엄정하고 분명한 사유가 따라 붙는다. ◾정조외(正曹外) : 역시 부적격 표시. 단, 의정부,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 예문관 등 바른(=正) 부서(=曹) 말고 딴 곳(=外)에만 채용하시라는 조건부 승인이다. 현실정치에선 품성보다 능력도 필수적임을 인정할 만큼 그들은 꽉 막히지 않았다. 승진(=品) 한도(=限)를 둔 채 조건부 승인하는 ‘한품’(限品)이란 말도 있다. ◾서경(署經) : 위 여러 가지를 통틀어 이르는 조선식 관직(=署) 심사(=經) 제도. 감찰기관인 사간원과 언론기관인 사헌부 대간들이 모여 5품 이하 관리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서경은 절대적 권위를 가졌다. 비공식 인사청문회 격인 ‘원의’에서 한 번 ‘작불납’ 등으로 찍히면 왕일지라도 바꾸기 힘들었다. ‘서경’은 관리들의 친필 싸인을 뜻하기도 한다. ◾고신(告身) : 임명장이다. 관직 심사에 통과한 이가 몸(=身)을 고(告)하도록 하는 이 종이 한 장 얻기가 힘들어 역대 조선 왕들은 무수히 역정을 냈다. 요즘 같으면 5급 사무관 정도에 불과한 대간들의 싸인 때문에 하급관리 하나 맘대로 임명 못 했으니 고 노무현 대통령 어법을 빌자면 이럴 법도 하다. “왕 노릇 힘들어 못 해 먹겠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기자를 좋아하는 듯하다. 임기초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도, 최근 총리후보로 전국을 떠들썩하게 하는 중인 문창극 씨도 기자출신이다. 나는 지난날 두 사람 모두와 같이 근무했다. 윤 씨는 아예 논외지만,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은 얼핏 인간적으로나 재산상 흠결이 그닥 없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그는 조국의 지적 역사적 저력을 ‘게으르다’는 식으로 지나치게 낮춰 봤다. 그것이 그의 ‘서경’에 ‘작불납’이다. 현대판 ‘원의’인 인터넷은 문창극 씨 본인에겐 참극이지만 보는 이에겐 한바탕 소극(笑劇)이다. ‘고신’에 눈 먼 사회, 정말 웃긴다. (임용진 논설고문) 




새전북신문칼럼(6월24일자 11면) – 경기전의 추억 


나는 전주 한옥마을 한 복판에서 1956년 태어나 1972년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살았다. 당시 풍남동 3가 67의 18번지, 경기전 담길이 내 태자리고 생애 첫 16년 동안 산 곳이다. 내가 너댓 살 시절만 해도 경기전엔 담이 없었다. 좀 있다 철사줄로 얼기 설기 쳐 출입관리를 하더니 초등학교 5학년 땐가 시멘트 담이 생겼다. 그냥 맨 시멘트가 아니라 좁쌀처럼 작은 돌을 박아 당시로선 멋을 냈는데 담 중간중간엔 경내가 보이도록 철제 빔으로 격자 공간을 만들었던 게 기억난다. 그런데 담 완공 후 며칠도 지나지 않아 등굣길에 보니 그 눈부시게 하얀 표면에 검은 색 스프레이로 뿜어 쓴 커다란 글씨가 확 눈에 띄었다. ‘판토마’. 이튿날엔 또 같은 크기로 경쟁하듯 ‘나바론’이란 붉은 색 글씨가 담벼락에 뿌려졌다. 어린 나이에 어딘가 섬칫한 이 말들은 나중에 알고 보니 모두 당시 열혈 어깨들이 자기 존재를 알린 거였다. 재미있는 것은 전주 한옥마을 아이디어를 내고 실천한 초기설계자 고 이동엽(1948~2013) 전 한옥체험관 관장이 ‘나바론’의 초대회장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동엽 전 관장은 타계 전까지 문화사회적 기업의 대표 모델인 ‘이음’ 회장으로 전주 문화예술계를 이끌었다. 아직까지도 그가 평화동의 한 전통 주점에서 북채를 잡고 남의 판소리에 고수 겸 추임새를 넣어주던 모습이 생생하다. 이동엽은 갖은 신산에도 불구하고 방송인 신동엽처럼 밝게, 시인 신동엽처럼 의미있게 살다 간 진짜 전주사람이다. 그 시절 경기전에 담이 없다 보니 수많은 전주인들이 바람처럼 드나들고 모였다. 어린 내 눈에 경기전 여름 나무는 지금보다 훨씬 크고 그림자도 짙었다. 그 녹음 아래 모시 적삼 노인들이 살살 부채 부치며 유장하게 뽑던 시조 가락이 들리고 장기 말 놓은 소리도 ‘탕탕’ 울렸다. 경기전 모퉁이 지금 조경묘 있는 자리 독립 한옥은 항상 수수께끼였다. 또래끼리 실컷 떠들다 닫힌 문틈으로 들여다보면 어찌 알았는지 나이 드신 할머니 한 분이 그 집 대청 마루 깊숙히 앉아 손사래 치며 우릴 물리쳤다. 하도 허락지 않던 그 할머니에 관해 우리 꼬마들은 “미쳤다, 애기 잡아 먹는다”고 수군댔다. 나중 알고 보니 그 분은 조선 마지막 상궁으로 거기 스스로를 유폐시킨 것이었다. 하루 몇 차례 씩 경기전을 들랑거리면서도 나는 한 번도 그분을 가까이서 보지 못 했다. 경기전 주변 인물 중 또 다른 이가 ‘홀테박사’다. 내 외할아버지는 “홀테박사가 공부를 너무 많이 해 돌았다”고 했다. 풍남동 주민들은 그가 명문대 철학과를 중퇴했다고도 했다. 당시 40대처럼 보이던 홀테박사는 늘 거의 맨몸 맨발에 미제 군용담요를 어깨에 휘감고 다녔다. 키가 크고 말랐다. 박박머리와 검은 살결 때문에 간디처럼 보이기도 했다. 우리가 말을 안 들으면 어른들은 “홀테박사가 잡아간다”고 겁줬다. 사뿐사뿐 조용조용 걷던 그 철인은 어느 가을엔가 경기전 주변에서 자취를 감췄다. 항상 입가에 말이 맴돌았으나 한 번도 말을 않던 그는 진종일 경기전 담길을 걷곤 했다. 내 외할버지께선 1950년대 전주 대사습놀이 심사위원장을 지냈다. 그 분은 외손자가 경기전서 어깨 넘어 배운 시조토막이라도 할라치면 “잘 한다”고 칭찬해 줬다. 전주 활터인 다가산 아래 ‘천양정’ 고참회원이기도 한 그의 전통(箭桶 = 화살집)에서 꺼낸 진짜 시누대 화살을 쏴 옆집 높직한 굴뚝 너머로 날린 게 무릇 기하리요. 요즘 구경도 할 수 없을 그 화살이 아깝고 아깝다. 그 굴뚝 높은 옆집은 지난날 백양 메리야쓰(현재 BYC) 공장이며 지금은 경기전 건너 교동아트미술관이다. 지난 1979년 경기전 옆에 생긴 조류상이 지금도 있다. 새 사가는 이 매우 적으나 아직도 아침부터 지저귀는 새 소리로 귀가 즐겁다. 같은 시각 성심여고 세라복 소녀들도 재잘대며 경기전 옆을 지난다. 새와 여고생은 수십년 째 변하지 않은 이곳 아침 풍경이어서 흐뭇하다. 변한 것도 있다. 요즘 경기전은 월담해 들어갈 수 없고 시조 하던 노인들 자취종적 없으며 무엇보다 주말엔 무척 시끄럽다. 난 이동엽, 상궁, 홀테박사, 시조창, 화살, 새소리 기억이 있는데 요즘 한옥마을 어린이들은 훗날 경기전에 관해 어떤 스토리를 쓸 것인가. 임용진(전 언론인) 






새전북신문 칼럼 온누리(2014.7.17.) – 로린 마젤 로린 마젤




글을 쓸 땐 토끼도 되고 사자도 된다. 토끼처럼 가슴 졸이며 전전긍긍 할 때도 있고 사자처럼 게으름 피우다 단숨에 달릴 때도 있다. 오늘은 어슬렁거리고 있다. 먹이를 찾으러 새전북신문 등을 뒤적거리고있는데 인터내셔널 뉴욕타임즈 2면 아래 부음기사(=오비추어리)가 확 눈에 들어온다. ‘로린 마젤, 강력하고 수수께끼같은 지휘자 84세로 영면하다’




마젤은 말그대로 수수께끼 천재다. 세 시간 정도 되는 오페라를 통째로 수십개 씩 외웠다. 또 다른 마에스트로인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역시 눈 감고 교향곡을 지휘하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오페라는 피아노, 현악, 관악 등 뿐 아니라 성악파트까지 마구 튀쳐나와 복잡하기 이를 데 없다. 나 같은 이는 평생 외워도 한 두 개나 가능할까?




다른 천재들처럼 그도 복합적, 모순적이다. 곡해석이 아름답고 섬세한가 하면 어떨 땐 무섭도록 완벽하고 딱딱하다. 청바지를 즐겨 입었지만 권위와 실력으로 항상 누굴 압도했다. 9세 때 슈베르트 ‘미완성 교향곡’을 지휘해 공식 데뷔했지만 대학(미국 피츠버그 대)에선 철학과 수학을 전공했다. 영어는 물론 불어, 독어, 포루투갈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를 완벽히 구사했다.




수십년 전 클리블랜드 교향악단을 이끌고 내한한 마젤을 세종문화회관(1978년)에서 본 적 있다. 열 띈 지휘 도중 바턴(=지휘봉)이 부러지자 파손된 손잡이를 상의 속주머니에 얌전히 갈무리한 채 침착히 연주를 계속하던 그를 수천관중이 숨죽이고 주시했다. 첼리스트 장한나의 스승이며 전주엔 못 왔으나 평양 공연을 포함 수차례 내한했다. 그는 지난 13일 타계했다. 거장 한 사람을 또 떠나보냈다.






새전북신문 칼럼(7월23일자) : ‘친구’ 어찌 해야 친구가 되나? 




나이가 같아야 하나, 또는 다른 게 있나? 새삼 이를 묻는 건 요즘 친구가 전날 친구와 다른 듯 생각되기 때문이다. 중고등 학교 동문끼린 1~2년만 기수 차이 나도 깎듯이 선후배를 따지는데 어떤 경우엔 직장 입사 동기란 이유로 4~5년 생물학적 나이차를 무시하고 예사로 반말을 한다. 어떤 게 옳은가. 과연 옳은 게 있나. 담헌 홍대용, 연암 박지원, 형암 이덕무, 초정 박제가가 모두 실학파다. 실학파 중에서도 이용후생을 강조한 이들이어서 각별한 사이를 유지했다. 나이가 제각각인데 담헌이 1731년, 연암이 1737년, 형암이 1741년, 초정은 1750년 생이다. 생물학적인 나이만으로 보면 같은 이용후생학파 내에서도 담헌이 고문, 연암이 회장, 나머지 두 사람은 후배 회원 또는 제자 격이다. 그런데 이들이 공통적으로 사용한 말이 있다. 바로 ‘벗’(=友)이다. 형암이 중국에 사신으로 가 북경의 명사들을 만났다. 그들이 ‘조선 학자 연암 박지원을 아느냐?’고 묻자 형암은 ‘그는 내 벗’이라고 했다. 그 다음엔 연암이 중국에 갔다. 역시 북경 학자들이 물었다. “형암과 초정을 아십니까?” 연암이 자랑스레 답했다. “잘 알죠. 제 제자들입니다.” 연암과 형암은 4년 차이다. 형암은 연암의 제자면서 친구고, 연암은 형암의 스승이면서 친구였다. 언뜻 보면 형암이 불경한 듯하지만 연암은 그의 ‘벗’ 발언을 문제삼지 않았다. 고작 4년 아래 형암을 제자라 칭한 연암도 요즘 눈으로 보면 이상하지만, 형암은 실제로 연암을 스승으로 모셨다. 벗이란 그렇게 광범위한 개념이다. 임금과 신하 사이도, 스승과 제자 사이도 벗이 될 수 있었다. 요즘처럼 한 두 해만 차이 나도 지시, 복종 관계가 자동 성립되는 건 옛 선비들은 상상도 못했다. 그렇다고 생물학적 연령을 무시하지도 않았다. 초정은 9살 연장인 형암조차 거의 스승으로 대했으니 한참 위인 연암이나 담헌에겐 말할 나위도 없다. 연암은 ‘불과’ 4살 연장인 담헌과 친구로 지내면서도 존경의 도에선 제자처럼 지극했다. 한 마디로 그들은 멋쟁이였다. 엄격하게 각 잡힌 선비들임이 분명하나 가끔 북한산 삼각산 계곡에서 서로 벌거 벗고 키득댔으며 선배, 후배, 스승, 제자가 한꺼번에 만나 낙수물 떨어지는 북촌 처마밑에서 당시 암담한 조선 현실을 고민하고 울분 토하던 멋진 동지이자 친구들이었다. 조선은 이들 친구 그룹 덕분에 적어도 지적(知的)으로는 후인에게 실망만을 주진 않고 있다. 언제부터인지 억지 규범이 세상을 지배한다. 동기는 나이에 상관 없이 ‘까고’ 지내도 된다는 건 대체 누가 알려준 것인가. 또 나이에 상관 없이 기수가 한 해만 높아도 선배고, 일년만 낮아도 후배란다. 진짜 웃긴다. 내가 누구를 존경한다거나 부린다거나 친구로 지내야 할 이유를 내 양심과 상관없이 규정해주는 사회는 도대체 수백년 전보다 발전한 것인가, 아닌가. 친구는 수평적 관계다. 사회 전체가 수직적일수록 친구의 중요성, 희소성이 더한다. 최근 나는 게스트하우스를 하면서 이를 절실히 느낀다. 대부분 25세 이하인 여행객들과 30년 이상 나이 차가 나지만 그들과 친구를 ‘먹으면’ 닫힌 게 열리고 막힌 게 뚫린다. 신기한 조화다. 닫고 막는 걸 당연시 하고 그 질서에 모범적으로 순응한 지난 수 십년이 그렇게 어색한 것이었던지, 지시와 복종이 아닌, 이해 협력이 사람을 이리 편하게 만드는 것을 왜 이제사 알았을까. 그래서 나는 결심한다. 친구 범위를 넓히자. 일단 십년은 너무 하고 한 구 년 쯤 어린 이들에게도. 나를 트고 젊은 친구를 허락하면 우리는 연암과 형암이 될 것이다. 이 얼마나 좋은가. 






온누리(2014.7.23.) – 음모론 




뉴욕의 택시 운전사 제리 플레처는 매사를 뒤집어보는 인물이다. 뒷자리 승객이 듣건 말건 그는 쉴 새 없이 입을 놀린다. “뉴욕 수돗물엔 불소가 들어있는데, 충치 예방이 목적이라고? 천만에. 수돗물을 먹는 뉴욕시민(주로 유색인)의 의지력과 사고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것이지” 하는 식이다. 하도 음모 타령을 해 정신병자 취급을 받지만 결국 그는 국가권력의 거대한 음모를 밝힌다. 영화 ‘컨스피러시’(1997, 주연 멜 깁슨 · 줄리아 로버츠)의 줄거리다. 한국이 지난 1998년 IMF(국제통화기구) 외환위기로 백척간두에 섰을 때 국내 신문들은 외부 금융세력의 개입을 의심했다. 요지는 ‘태국에서 시작한 동남아 경제 위기는 미국 초국적 유태계 자본이 아시아 경제를 길들이기 위한 것이다. 한국 다음은 중국이다. 홍콩 반환 다음날부터 동남아 위기가 본격 시작됐다. 외국 투기자본이 2천억 달러를 동남아에서 빼갔다’(한국일보 1998년 2월 13일자) 등등. 음모의 메뉴는 무척 다양하다. 예수와 마리아가 결혼했다는 설(영화 ‘다빈치 코드’)부터 윌리엄 세익스피어가 가공인물이며 히틀러, 엘리스 프레슬리 등이 실제론 살아있다, 9·11 테러는 미국정부 자작극이다, 등등. 멀리 갈 것도 없이 KAL기 테러 한국정부 자작설, 이스라엘 잠수한 천안함 폭침설 등도 있다. 유병언 씨 사체 발견 발표를 두고 말이 많다. 의료민영화 반대를 잠재우기 위한 맞불 발표라느니 재보선지역 사전투표 참여율을 낮추기 위한 것이라느니. 다 신빙성 낮은 낭설이지만 문제는 유포되고 재생산된다는 점이다. 음모는 진실에 약하다. 진정엔 더 약하다. 애초부터 세월호 침몰이 ‘내 탓’이라며 진정어린 반성과 사후대처를 했으면 좋을 걸, 국무총리와 해경과 유병언 등에 책임을 지우려다 보니 일이 걷잡을 수 없게됐다. 음모는 대통령 뿐 아니라 온국민을 다치게 한다. 가련할진저. 






온누리(새전북신문, 7월31일자) – ‘돌 윷판’ 




울산 태화강변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는 1971년 발견됐다. 호랑이, 늑대, 거북이 뿐 아니라 고래 그림이 사실적으로 새겨져 이곳이 선사시대 고래잡이의 고향이었음을 알게 해줬다. 동양학 권위자 라이샤워 교수는 고대 한국인이 알래스카 지나 캐나다 서해안까지 배 타고 다니며 무역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반구대 암각화가 그 유력한 증거이다. 그때 건너간 것일까. 한반도 전역에 있는 암각 윷판 유적이 알래스카와 남·북미 대륙에서도 발견된다. 미국 인디언들이 땅 바닥에 윷판처럼 생긴 것을 그리며 노는 모습은 이미 서부 영화 등에서 익숙한 장면이다. 파라과이와 볼리비아 인디언들은 우리처럼 윷을 ‘윷’이라 부른다. 넓디 넓은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도대체 고대에 어떤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윷놀이가 심상찮은 놀이임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환단고기’엔 “신지 현덕에 따르면 천부 원리로 만든 윷판으로 달력 원리를 강의하였다”고 돼 있다. 해·달·별의 운동 규칙, 사계 운행, 고대 세계관과 종교관을 담은 상징체계란 분석이 유력하다. 지구촌 전체 고인돌의 70%가 한국에 있고 그중에서도 전북 고창이 그 밀집(2,600여기)지다. 윷판 유적 많기로도 전북이 으뜸이다. 국내 200여 곳이 있다고 알려졌는데 최근 임실 가덕리에서 역대 최다인 돌 ‘윷판’ 39개가 무더기로 발견됐다. 고창 고인돌과 임실 윷판 유적 등으로 미뤄 전북은 한반도의 뿌리임이 확실하다. 무분별한 개발 등으로 사라지기 전에 ‘윷판’ 보존 연구가 시급하다. 그것은 민족의 원형일뿐더러 고대 인류사로 통하는 문이다. 






온누리(새전북신문 8월7일) – ‘얼차려’ 




율곡 이이는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이다. 과거에서 아홉 번이나 장원 했다. 그러나 선비들간에 악명 높은 신고식은 인재라고 봐주지 않았다. 얼마나 심했으면 이이가 초임지인 승문원에서 신고식을 거부하다가 쫓겨났을까. 이 소식을 들은 대선배 퇴계 이황이 “아니 그것도 못 참고” 하며 혀를 찼다고 한다. 선비들은 신고식을 면신례(免新禮)라 했다. 하지만 관직사회에서 신참(=新)을 면(=免)하는 게 과거보다 어렵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면신례는 힘들었다. 먹물을 얼굴에 바르고 진흙탕에 구르고 심지어 오물을 먹어야 했다. 군기가 세기론 예문관이 으뜸이었다. 중종 땐 예문관 면신례 비명 소리가 왕 침소까지 들렸다 한다. 사헌부의 면신례는 ‘줄 빳다’ 형이었다. 신참을 세워 놓고 고참들이 돌아가며 그의 무릎을 주먹으로 쳤다. 율곡 이이는 홍문관 교리 재직중 임금에게 ‘면신례 금지’ 상소를 낼 정도로 폭력을 싫어했다. 나중에 그가 병조판서가 되자 병조에선 면신례가 없어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판서가 바뀌자 또 시작됐다. 신고식이나 군기 잡기는 어느 규범사회건 있다. 프랑스에서도 신입생을 진흙탕에 빠트리는 ‘비쥐타주’가 있다. 그러나 최근 육군 포병 28사단의 윤일병 사망사건은 너무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는다. 행동 느리고 말 어눌하단 이유로 부대 하사, 병장, 상병 등이 동료를 지속적으로 학대해 사망에 이르게 했으니 이건 ‘얼차려’가 아니라 집단 살해다. 권오성 육군참모총장이 윤일병 사건에 책임지고 전격 사임했다. 김관진 국방장관도 윤일병 사망 다음날 이를 보고받았다 한다. 율곡 이이의 면신례 금지 이후 수백년이 흘렀어도 병조(=국방부)의 가혹 구타는 끊이지 않고 있다. 효종 땐 과도한 신고식을 시킨 ‘기총’(=소대장)을 목 베 효수했다고 했다. 그같은 일벌백계라도 필요할 것인지, 참 답답하다. 






온누리(8월14일자) – 필즈 메달




 ‘내시 균형이론’으로 유명한 존 내시(86·미국)는 괴짜다. 프린스턴 대학 재학 시절 결강을 밥먹듯 했는데 이유는 교수 강의가 자신의 자유로운 사고를 방해하기 때문이란 것이었다. 기존 이론을 깨며 제2의 아인슈타인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정신분열증으로 중년에 혼란을 겪었다. 조숙한 천재인 그는 1958년 수학계 노벨상인 필즈 메달 수상후보로 추천되나 ‘너무 젊다’는 이유로 이를 받지 못한다. 대신 그는 한참 후인 1994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는다. 내시 스토리는 ‘뷰티풀 마인드’로 영화화 됐다. 러셀 크로가 천재의 고뇌와 환상을 연기했다. 수학은 골치 아프다. 하지만 난제와 씨름하는 게 인생 축도여서일까. 좌절과 환희를 오가는 수학자들 이야기는 영화 소재로 환영 받는다. ‘굿 윌 헌팅’에선 교수들도 쩔쩔 매는 문제를 한 청소부가 간단히 풀어버린다. 맷 데이먼이 미국 MIT(매사추세츠 공과대학) 청소부로, 로빈 윌리엄스가 이 불우한 청년을 감싸는 심리학과 교수로 나온다. 수학을 이용해 카지노에서 떼돈을 버는 영화 ‘21’은 MIT 졸업 수재들의 실화에 바탕했다. 13일부터 서울에서 세계수학자대회(ICM)가 열리고 있다. 어제 개막일엔 대회 사상 최초로 여성 수학자가 필즈 메달을 받았다. 필즈 메달은 지난 1924년 캐나다 수학자인 ‘존 찰스 필즈’가 제안해서 만들었다. 필즈 상은 주최국 대통령이 수여하는 게 관례다. 지금까지 수상자는 모두 52명. 미국, 프랑스, 러시아 등이 많고 일본도 3명을 배출했으나 한국엔 아직 없다. 서울 대회에 앞서 지난 7일부터 전북대에선 국제 응용수학 워크샵이 열렸다. ICM보다 규모는 작지만 세계 석학들이 모처럼 전북에 모였다. 수학자들은 바둑을 좋아한다고 한다. 바둑 잘 두는 전북. 뒤집으면, 수학 잘 하는 전북이 될 법도 하지 않은가. 






새전북신문 칼럼(8월20일자) – 동학은 흐른다. 




동학은 흐른다. 얼마 전만 해도 동학이 거룩한 흙덩어리 인형 아닌가 걱정했다. 동학 2주갑(=120주년)이라고 대학강단과 지자체 강당, 기념관, 신문특집면에 언급이 잦지만 대부분 역사적 회갑잔치며 초장수 노인을 기념하는 듯 해 감동은 적었다. 그런데 뜻밖에 한옥마을에 동학이 살고 있었다. 지팡이 아이스크림과 얼음맥주, 떡갈비 꼬치와 동등한 자격으로 120살 된 노령 동학이 젊은이들과 어울린 현장을 발견했으니 그것은 놀랍고 즐거운 일이다. 젊은 동학을 처음 만난 것은 지난해 9월초 한옥마을 부채문화관 앞마당에서다. 한낮을 약간 넘긴 토요일 오후 4시 좋은 햇살 아래 마당극 ‘녹두장군 한양 압송차(次)’가 공연되고 있었다. 관객은 수십명, 대부분 20대초반 배낭 여행자들. 관군에 사로잡혀 서울로 압송되는 동학 ‘수괴’ 전봉준과 당시 황해도 ‘애기접주’ 김구의 만남을 픽션화한 이 마당극에 그들은 ‘신기하다’, ‘재미있다’를 연발했다. 임시정부 주석 김구가 한때 동학당이었단 사실이 신기했을 것이다. 전봉준이라면 아득한 조선조 사람인데 근대 인물인 김구와 연결되니 신기했을 것이다. 전라도 충청도만의 동학난인 줄 알았는데 황해도 경상도 등 전국 혁명이었음을 마당극이 알려주니 신기했을 것이다. 기진맥진 피폐한 전봉준 장군에게 전주 비빔밥 한 그릇 대접하겠다는 주모가 등장하고 일본 순사와 젊은 동학 투사의 싸움에 주먹을 쥐게도 하니 재미 있다. 판소리 한 바탕처럼 여러 시간도 아니고 40분짜리 마당극이어서 젊은이들이 지루해 하지 않았다. ‘재미있다’, ‘짱이다’, ‘짱짱맨’ 등은 요즘 젊은이들에게 가치 언어다. 좋다, 멋있다, 아름답다, 최고다 등과 통한다. 반면 ‘구리다’, ‘오글오글하다’는 이와 반대 가치다. 유행에 뒤지거나 지나치게 폼 잡고 비장하고 장중하고 위대해 보일 때 ‘오글오글’ 등이 동원된다. ‘병맛’이라 하면 ‘밥 맛 떨어진다’와 같으므로 아주 나쁜 경우다. 이 중 동학은 어떤 표현이 적당할까. 실패한 혁명, 흙 냄새 나는 농민집단 동학이 현대 도시 젊은이에게 ‘짱’(=최고)일리 없고 ‘병 맛’만 아니어도 다행이다. 학자들이 역사적 의미를 강조하면 듣는 척 하지만 이 경우에도 동학은 ‘오글오글’하다. 경원동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한 친구는 젊은이들에게 동학이 ‘5000분의 1’이라고 했다. 지난 한 해 그의 집에 묵은 게스트 약 5000명 중 단 한 사람이 동학에 관해 물었다 한다. “한옥마을 동학기념관이 어딥니까?” 이를 들었을 때 그는 놀라 자빠질 뻔 했다 한다. ‘먹방’(= 먹을 거리 관광) 일색인 젊은이 중에 그걸 묻는 이도 있으니 놀랄 만하다. 그 ‘5000분의 1’ 세대로부터 동학은 최근에도 재미있다는 상찬을 받았다. 작년 여름 이후 두 번 째 젊은 동학과 만났다. 역시 한옥마을에서. 지난 일요일(17일) 저녁 8시 태조로 공예품전시관 주차장. 비가 오는 가운데 야외 마당극 ‘가보세 갑오년, 전주성’이 공연됐다. 처음엔 실실 내리더니 빗방울 점점 세진 속에서도 사람들이 모여 마당 의자 백여개가 꽉 찼다. 이번엔 지난해보다 대규모 공연. 제작비만 1억원이 들었다 한다. 출연자가 훨씬 많고 농악대 버나 놀음, 씻김굿, 깃대 놀음, 밤 어둠을 이용한 큐빅 레이저 영상 등 보고 듣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러나 이번엔 무엇보다 감동이 더했다. 지난해와 달리 전봉준 김구 등 영웅 뿐아니라 민초들이 극을 이끌었다. 민초를 대표한 개똥엄마가 정읍 신평 출신 남편을 황토현에서 잃고 울부짖을 땐 비 내리는 게 다행이었다. 비와 눈물이 줄줄 흘러 관객 얼굴을 훔쳤다. 에필로그에서 전봉준이 어린 소녀 손을 잡고 등장 수많은 민초를 이끌며 관객석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빗줄기는 폭우로 변했다. 그 속에서 결연한 나레이션으로 “다만 한 줄기, 우린 영웅이 아니었다. 갈라진 상생의 틈새에 오직 백성이었고, 한 가지 사람이었다”(서철원의 시, ‘달빛 처연’)가 선언처럼 고백처럼 읊조려질 때 나도 울었다. 아주 오랜만에, 재미있게 울었다. 한옥마을서 일 년 새 펼쳐진 이 두 동학 마당은 소설가 이병천 등의 손을 거쳤다. ‘동학 2주갑’이라고 백 마디 강의 열변을 토하면 뭐하나. 젊디 젊은 ‘5000분의 1’ 세대에 재미를 주고 한옥마을에 흐르도록 하지 않으면 동학은 죽은 영감이다. 동학을 전주천처럼 되살려 흘려준 그들의 노력에 박수 보낸다. 






온누리(새전북신문, 8월20일자) – 마이클 브라운 




미국 흑인과 경찰은 구원이 깊다. 유명한 로드니 킹 뿐 아니라 여럿이 두들겨 맞고, 총 맞고, 심지어 개에게 물렸다. #1. 지난 2013년 10월 8일. 도박으로 유명한 캘리포니아주 아틀란틱 시티 카지노에서 도박연령(21세 이상) 미달로 쫓겨난 스무살 청년 데이빗 카스터라니는 길 건너 경찰에게 한동안 욕을 해댔다. 1분 40초 간 이를 지켜보던 경찰이 K9에게 제압을 명령한 뒤 카스터라니를 마구 때렸다. 경찰용어로 K9은 경찰견이다. 카스터라니는 개에게 목을 물려 200바늘 이상 꿰맸고 만신창이가 됐으나 해당 경찰은 아무 제재도 받지 않았다. #2. 지난 2009년 1월1일엔 역시 캘리포니아 주 오클랜드 시 지하철 역에서 한 교통경찰이 수퍼마켓 직원인 오스카 그랜트(당시 22세)를 범인으로 오해, 사살했다. 그랜트는 무기가 없었고 경찰 지시에 ‘오케이’를 외치며 바닥에 엎드렸으나 변을 당했다. 어이 없는 죽음에 분노한 흑인 시위로 오클랜드 시내 차량이 불타고 가게 부서지고 100명이 체포됐다. #3. 흑인구타 피해 원조인 로드니 글렌 킹(당시 26세)은 1991년 3월2일 로스앤젤레스 인근 고속도로에서 과속 도주 혐의로 체포돼 경찰에게 무차별 구타를 당했다. 땅에 엎드린 피의자를 경찰봉으로 난타, 거구의 킹이 지면에서 여러 차례 튀어오르는 장면이 동영상으로 전파돼 LA흑인 폭동을 촉발시켰다. 지난 9일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 인근 퍼거슨 시에서 비무장 흑인청년 마이클 브라운(18)이 백인경찰에 의해 사살됐고 어제 세인트루이스에서도 흑인 한 명이 또 죽어 난리다. 그 불똥이 딴 데 튀지 않길 빈다. 두 도시의 한인 교포 수가 5000여명, 게중엔 전주 출신도 많을 것이다. 






온누리(새전북신문, 8월27일자) – 종군기자 




로버트 카파, 마거릿 히긴스, 마리 콜빈의 공통점은? 다 전쟁터에서 사망했다. 그들은 군인인가? 아니다, 종군기자다. 마리 콜빈은 현대 들어 가장 유명한 분쟁지역 전문기자다. 그녀는 지난 2001년 스리랑카 내전 취재 도중 수류탄 파편에 잃은 왼쪽 눈을 잃었다. 이를 검은 안대로 가린 채 기자가 아니라 장군처럼 포연을 누비던 그녀는 2012년 시리아 내전 취재 중 정부군 폭격으로 사망(56세)했다. 마거릿 히긴스는 금발에 바비인형 타입의 젊은 여성이지만 온 얼굴에 검댕을 묻힌 채 한국전쟁의 참상을 알렸다. 그녀가 오성장군 맥아더와 수원 비행장에서 대등하게 인터뷰하는 모습은 50년대 전세계 독립여성의 아이콘이 됐다. 히긴스 역시 콩고 등에서 얻은 풍토병으로 1966년 사망(46세)했다. ‘귀신 잡는 해병’이란 한국 해병 찬사는 그녀가 쓴 기사에서 비롯됐다. 로버트 카파는 더 말할 게 없다. 스페인 내전에서 총에 맞아 쓰러지는 병사 등 수많은 사진으로 전쟁의 비인간성을 고발했다. 더 생생하기 위해 더 가까이 있던 그는 1954년 베트남에서 지뢰를 밟아 사망(41세)했다. 한국에서도 지난 2004년 이라크 전쟁 당시 모 방송국 종군 여기자가 생생한 영상을 현지 보도해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분쟁지역 전문가랄 만한 진짜 종군기자는 아직 우리에게 없다. 남의 전쟁터에 목숨을 내놓을 만한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한국 현대사 자체가 위험천만 격동했으므로. 지난주 이라크 수니파 반군 IS가 미국의 프리랜서 종군기자 제임스 폴리(40세)를 참수해 전세계를 경악시켰다. 아직도 분쟁지역에서 실종, 납치, 억류된 기자가 수십명이라고 한다. 펜이 아니라 목숨으로 보도하는 세상이다.(임용진 논설고문) 






온누리 ‘가을비’(새전북신문 9월5일자) 




요 며칠 또 비가 왔다. 비에도 종류가 있다. 시기적으로 가장 빠른 게 매화우(梅花雨). 매화가 춘풍에 흩날리는 것이니 아름다운 꽃비지 진짜 비는 아니다. 일본에선 4월 쯤 사쿠라 꽃이 비 한 번에 져버리면 그걸 매화우라고도 한다. 두 번 짼 녹우(綠雨)다. 늦봄에서 여름 사이에 내려 녹음을 더 짙게 하는 고마운 비다. 고산 윤선도 고택인 해남 녹우당에선 비자나무(천연기념물 제241호)와 대나무 숲 주위로 녹색바람 불고 녹색 비가 온다. 실은 이는 임금의 은혜인 비와 이슬(=우로·雨露)을 빗댄 말이기도 하다. 녹우당은 효종이 세자시절 스승인 윤선도를 위해 수원에 지어준 것인데 윤선도가 나중에 효종 승하 후 낙향할 때 그 은혜를 잊지 못해 해남으로 옮겨 세우고 녹우당이라 이름지었다. 가을엔 찬비가 온다. 지난날 멋쟁이 백호 임제가 평양기생 한우(寒雨=찬비)를 만나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얼어잘까 하노라’ 한 마디 건네자 그녀가 ‘어이 얼어 자리, 원앙침 비단금을 어디 두고 얼어 자리’라고 받았다. 이 때 찬비는 멋스런 사랑비다. 이밖에 가수 자우림(紫雨林)의 보라색 비, 흑우(黑雨) 김대환의 검은색 비도 있다. 가을장마는 짖굿다. 시기가 일정한 여름장마와 달리 예측이 힘들고 폭우를 동반하기도 한다. 추석을 앞둔 수확 농가 심정이 조마조마하고 도내 레미콘 업계 등은 이미 발을 동동 구른다. 폭우가 바다 수온을 낮춰 가을 전어 값도 배나 올랐다. 곧 예년 날씨를 회복하긴 할 것이지만 갈수록 아열대화를 실감하고 있다. ‘가을 하늘 공활하니 맑고 구름 없이’(애국가 3절)가 그립다. 임용진 논설고문 






온누리 ‘추석 이후’(새전북신문, 9월10일자) 




추석 돼지가 됐다. TV 등에서 ‘송편 두 개면 밥 한 공기 칼로리’ 등으로 아무리 위협해도 추석은 먹는 계절이다. 기후 좋고 밥 맛 좋기로 이만한 때가 없다. 하지만 이번 연휴엔 왠지 속에 뭐가 얹힌 기분이다. 더부룩하고 거리끼고 개운찮고 심지어 온 몸에서 송신이 나는 듯했다. 이번 추석은 개인적으로 힐링과 거리가 멀었다. 왜일까. 죄송함 때문이다. 나처럼 ‘추석 돼지’를 경계할 경황조차 없는 이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다. 어린 중학생을 비롯한 302명의 세월호 사망, 실종자들. 말도 안 되는 그 사고로 인해 제 목숨 같은 이를 잃고, 서러움마저 잃고 공포와 분노와 의심과 증오만 남은 유족들. 추석이 그들에게 뭘 힐링해줬을 것인가. 박 대통령은 추석 당일인 지난 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청와대를 거니는 사진과 함께 글을 올렸다. 글 내용은 이렇다. “오늘, 추석 명절 잘 보내셨습니까? 보름달을 보면서 소원을 비셨는지요? … 나라 경제와 국민 여러분들의 행복을 위해 모두 함께 소원을 빌어 그 꿈이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국가 최고권력자가 개인 미디어로 서민과 소통하는 것은 참 괜찮은 풍경이다. 하지만 뭔가 대단히 중요한 게 빠졌다. 국민을 이끄는 것도 정부의 할 일이지만 어루만지는 것도 할 일인데, 국회의원이고 누구고 제 추석만 있지 남의 억장 무너지는 아픔엔 별 도움이 못 됐다. 남의 가슴을 찢는 일은 세계적으로 쌔고 쌨다. 시아파 반군에게 납치돼 참수당한 두 미국 기자의 부모는 또 얼마나 가련한가. 하지만 이들과 우리의 차이는 피해자들이 국가권력에 얼마나 기댔는가에 있다. 그들이 오바마와 껴안고 흐느끼는 새 우리 유족들은 쉰 목소리로 농성 중이다. 한가위를 보냈으니, 제발 한가위처럼 두렷이 안아주자. 눈이 부시게 푸르른 가을 날,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 할 자유라도 돌려주자. 임용진 논설고문. 






온누리 ‘석정과 동학’(새전분신문, 9월25일자) 




한 달 전, 동학 120주년 모악대동제를 준비하는 자리에서 임수진 씨(전 농어촌공사 사장)가 내게 물었다. “아니 석정 선생이 이런 시도 썼어?” 그 시는 이렇다. “징을 울려라 죽창도 들었다./ 이젠 앞으로 앞으로 나가자./ 눌려 살던 농민들이 외치던 소리 / 우리들의 가슴에 연연히 탄다.”(‘갑오동학혁명의 노래’ 1절) 석정 신석정(1907~1974)은 영월 신 씨다. 그들은 아전을 생업으로 삼았는데 동학혁명에 대거 참여했으며 동학 패망 후 의병에 투신했다고 한다. 위 노래는 정읍 덕천면에 있는 ‘갑오동학혁명기념탑’ 건립 당시(1963. 10.) 건립위원장인 가람 이병기의 위촉으로 석정이 시 쓰고 김성태(당시 서울대 음대 학장)가 곡을 붙인 것이다. 원래 피가 뜨거운 집안이던 만큼 석정이 동학을 노래해도 당연하다. 최근 석정의 현실참여 시 13편이 새로 발견됐다. 그간 ‘목가적’, ‘전원적’ 단서가 붙던 그의 면모와는 전혀 달라 놀랍다. “연약한 너의 아버지 이 감방에서/ 산송장으로 하고 있을지라도/ 인민의 나라 세우는 날 새나라 세우는 날/ 이 작은 피는 온몸으로 흘리리라/ 비처럼 사뭇 줄줄 흘리리라”(‘피’, 1946.5.6.), “건넌마을 ‘영이’네 아버지가 떠나자/ ‘순이’의 오빠가 뒤이여 자쵤 감추고/ 동네 젊은 사람들은 시나브로/ 뉘 원수를 갚아야 하기에/ 지리산으로 지리산으로 들어가는 것일까.”(‘지리산’, 1949. 1. 8.) 등이다. 한 달 후 부안에서 석정문학제가 열리고 올해는 특히 제1회 신석정문학상이 시상된다. 새 시 발견 계기로 거인 신석정의 고뇌가 확인됐다. 그것은 전북의 고뇌, 전북의 그릇이기도 하다. 임용진 






온누리 – ‘사제’(師弟), 새전북신문 10월2일자 




조훈현이 1963년 바둑유학 차 도일하자 일본 바둑계가 열 한 살 짜리 신동에게 매료됐다. 일본 바둑의 스승 세고에 겐사쿠가 그를 내제자로 받아들여 직접적으로는 ‘괴물’ 후지사와 슈코로 하여금 가르치도록 한다. 세고에는 조훈현보다 무려 64세나, 후지사와는 28세나 많으니 말이 스승이지 할아버지, 아버지 뻘이다. 그들은 조훈현을 ‘진주’라고 부르며 분신처럼 아꼈다. 조훈현이 1972년 군복무를 위해 한국으로 돌아가자 넉 달 후 노스승 세고에는 “조훈현이 보고싶다”는 말을 남기고 자살한다. 후지사와는 이후 제자가 그리울 때마다 술 한 병 달랑 차고 불현듯 서울로 날아와 조훈현을 만나고 돌아갔다. 실존주의 소설가 알베르 카뮈는 그보다 15년 연장인 ‘방랑의 철학자’ 장 그르니에를 10대에 만나 평생 스승으로 섬긴다. 두 사제 사이에 20년간 235통의 편지가 오갔는데 거기 이런 말이 있다. “저는 선생님의 발자취 속에 제 발자취를 남기는 겁니다”(카뮈), “그는 내게 뭘 배웠는가? 그는, 가르쳐야 하는 책임을 졌으면서도 제자에게 오직 제 꿈만 털어놓았던 한 인간의 주위에 있었을 뿐이다”(그르니에). 제자와 선생이 모두 공치사 한 마디 없이 겸손하다. 사제(師弟)는 인생 동지와 같다. 연암 박지원은 13년 아래 제자인 초정 박제가가 먼저 타계하자 상실감에 못 이겨 몇 달 후 역시 세상을 떴다. 먼 데 갈 것도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식장에서 오열하던 김대중 전 대통령을 보지 않았던가? 정읍의 한 고등학교에서 제자가 수업 도중 선생에게 철의자를 집어던졌다(1일자 새전북신문 1면). 좋은 제자를 만나 교육시키고 싶다는 선생의 공통된 바램은 진정 ‘공자왈 맹자왈’이 되버린 것인지, 입맛이 쓰다. 






온누리 ‘재조법관’(10월9일자 새전북신문) 




김병로(1887~1964)는 순창 복흥 사람이다. 초년에 최익현, 김동신 등의 의병군이 되어 일본과 전투했으며 일제강점기엔 독립운동가 전문 변호사를 했다. 광복 후 초대 대법원장으로 9년3개월간 재임하면서 이 나라 사법기초를 세웠다. 그는 대통령 이승만을 ‘폭군적인 집권자’로 칭하며 “이를 억제할 수 있는 길은 사법부의 독립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평생 한복만 입었고 후배 법관들에게 정의와 청빈을 강조했다. “모든 사법 종사자에게 굶어 죽는 것이 영광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부정을 범하는 것보다는 명예롭기 때문이다.” 1957년 말 그가 대법원을 떠나며 남긴 말이다. 최대교(1901~1992)는 익산 출신이다. 1949년 당시 ‘이승만의 양녀’라 할 만큼 권력과 가깝던 상공부 장관 임영신을 수뢰 혐의로 기소해 권력의 미움을 받아 서울고등검찰청장 직에서 물러났다. 1960년 4·19혁명으로 서울지검장에 복직되나 1963년 군인 출신 박정희가 대통령이 되자 또 미련 없이 옷을 벗는다. 당시 검사 월급만으로 가계를 꾸리기 어려워 그의 아내가 편지봉투를 만들어 팔기도 했다. 도시락을 쌀 형편이 못 돼 점심시간에 누룽지를 밥 대신 먹다 ‘누룽지 검사’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의 또 다른 별명은 ‘대쪽’이다. 검찰 내부에서 가장 존경받는 역대 검사 1위로 꼽힌다. 최근 국감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임용된 전국 판, 검사(총 3,465명) 중 전북 출신은 2.3%(79명)다. 새삼스레 적다고 여겨지진 않는다. 인구(3.6%)나 총생산(3.1%) 등 전국 대비 전북의 사회·경제적 수치가 어차피 그 정도니까. 하지만 권부로부터 기피된 김병로, 최대교 등 전북 법조인의 올곧은 기백이 최근까지 ‘적은 숫자’로 이어진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해본다. 어차피 ‘재조’(在朝) 법관이나 검사 숫자가 중요한 것도 아니다. 정의는 양보다 질이니까. 






온누리 ‘동학, 모악, 대동’(새전북신문 10월23일자) 




주말인 지난 18일 오후 5시 사람이 많이 모인 가운데 경기전 문 앞에서 ‘동학농민혁명 120주년 모악천하대동제’가 열렸다. 전주 시민농악대가 이층 높이의 긴 장대에 무거운 대형 깃발을 매달아 힘차게 펄럭이며 대동제 서막을 열어 젖혔다. 이어 카리스마 넘친 전통 춤꾼 진현실이 도살풀이를 추며 120년 전 스러져간 수많은 동학꾼의 넋을 부르고 민족서예가 여태명은 큰 붓으로 ‘자주, 평화, 생명’ 큰 글씨를 단숨에 썼다. 지난 두 달 간 대동제를 지휘한 추진위원장 임수진(전 진안군수)은 하얀 두루마기 늘씬하게 입고 꿇어 앉아 하늘에 고했다. “평등의 이름 높이 달아 하늘에 고하노라. 상생의 물결 저무는 땅에 엎드려 고하노라. … 어두운 세상 녹두의 꽃으로 살아온 자들아. 그날 불의 뜨거움을 기억하시는가. … 전봉준, 김개남, 손화중 그리고 이름 없이 쓰러져간 동학의 전사들 … 모두 달빛 따라 밝은 데로 어서 나오시라.” 임수진은 얼굴은 호상이고 목소리는 힘찬 바리톤이다. 그는 이미 죽은 동학이 아니라, 그날 모인 관중 가슴에서 생생한 동학을 불러냈다. 이후는 진혼(鎭魂)이다. 지성철 검무, 장순향 춤, 여성농민합창단과 ‘노찾사’의 노래, 연희단 팔산대 풍물굿 등이 동학의 혼을 달랬다. 올해 동학 120주년 행사가 전국에 많다. ‘동학농민혁명 120주년 기념대회’가 2주 전 서울서 열렸으며 오는 28일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기념 학술대회도 열린다. 하지만 정부 돈으로 여는 이런 행사들은 매년 오는 광복절이나 한글날과 크게 다르지 않아 유감이다. 경기전의 이번 동학 120주년 대동제는 이런 점에서 의미 깊다. 순수한 민간모금(4천5백만원)과 민간 재능기부로 열렸다. 적은 돈으로 작은 마당에서 열렸으나 그 울림은 훨씬 컸다. 전북에서만 가능한 진짜 ‘대동’(大同)을 거기서 봤다면 과찬인가. 






온누리 – ‘화가’(새전북신문 10월30일) 




화가 박수근과 이중섭의 가난은 가히 설화적이다. 박수근(1914~1965)의 학력은 양구 공립보통학교가 전부다. 가난 탓에 상급학교 진학이나 유학은 꿈도 못 꾸고 독학으로 그림을 배웠으며 남들 다 하는 개인전을 생전 단 한 차례도 열지 못했다. 이중섭(1916~1956)은 일본유학까지 했으나 그것도 청년시 유복일 뿐 이후엔 돈이 없어 유화 물감 대신 페인트와 유채 에나멜로, 캔버스(=그림천) 대신 종이·장판지·담배 은박지 위에 그림을 그렸다. 그는 한국회화 사상 캔버스에 작품을 남기지 않은 단 한 명의 화가다. 그 이유는 궁핍 때문이었다. 가난으로 인해 그들은 공통점이 많다. 평생 찢어지게 가난했으면서도 그것을 따사롭거나(=박수근) 맑게(=이중섭) 형상화했으며 결국 가난 속에서 죽었다. 장소도 비슷하다. 박수근이 말년에 입원한 곳이 청량리위생병원이며 이중섭은 청량리정신병원이다. 둘 다 한국전쟁 피난 시절 각각 군산(=박수근)과 부산(=이중섭)에서 부두노동자를 했으며 아들 하나씩을 뇌염, 디프테리아로 잃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들은 사후 최고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평가로 우편엽서 크기 한 장(=1호)당 평균 그림값 1위가 박수근(2억원 이상)이고 2위는 이중섭(1억1천만원 이상)이다. 우리 고장 젊은 미술학도들의 졸업전시회가 여기저기서 열리고 있다. 그러나 화가의 길을 택하는 건 소수일 뿐 대다수 미술학도들에겐 졸업작품이 마지막 작품이 되고 만다고 한다(본지 29일자 1면). 예술가는 평범한 월급쟁이와 다르지만 먹고 입는 생활인으로선 또한 보통사람과 다를 바 없다. 화가를 택한 젊은 예술가들에게 힘찬 박수를 보낸다. 아울러 전북인의 뛰어난 안목이 안목에만 그치지 않길 바란다. 그림은 ‘형편에 맞게’ 돈 주고 사는 것이다. 혹시 아나? 나중에 이들 가운데 박수근, 이중섭이 나올지. 온누리, ‘추안 급 국안’(새전북신문 11월6일자) 오늘은 출판이야기다.










한달 여 전 ‘추안 급 국안’(推案及鞫案)이 전주인의 힘으로 나왔다. 전주대학교 한국고전학연구원이 번역했고 전주 소재 ‘흐름’ 출판사가 펴냈다. 이 책은 선조 임진왜란 이후 고종 대한제국 전까지 약 3백년의 죄인 심문 기록이다. 죄인 중에서도 역모, 변란, 천주교 등에 관련된 중죄인 심문기록이니 요즘으로 치면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조서를 수백년 동안 모은 것이다. 


완역된 분량은 글자수 672만 6,000자, 평균 404페이지 짜리 책 아흔 권이나 되는 거질이다. 책 아흔 권은 보통 크기 책장 다섯 개를 꽉 채우는 분량이고 무게는 합쳐 60kg, 값은 한 세트 300만원이다. 이를 완역 했다 하니 첫째, 내 고장 전북의 지적 역량과 근기(根氣)에 놀랐고, 둘째 이 거질을 서울도 아닌 지역 출판사가 발행해 수지 맞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자는 자부심이고 후자는 안타까움이다.


하지만 판매는 무난하다고 한다. 초판 300 세트 가운데 두 달이 안 된 지금 기관, 단체, 대학 등에 반 정도 팔렸으며 미국 등 외국에서도 관심 문의가 오고 있단다. 300만원이면 적잖은 돈이지만 개인 구매자도 있다. 원로 사학자 조광 씨가 1호로 구입 신청했으며 소설가 김훈 씨도 샀다고 한다.


전주는 오래 된 출판 도시다. 완판본(完板本) 성가를 생각하면 지난날 전주는 요즘 파주 출판문화단지 쯤 된다. 지금은 다 쭈그러져 전주 소재 출판사 100여곳 중 전단이나 홍보 위주가 아닌 전문 도서출판은 단 몇 곳 되지도 않지만 그나마 조선왕조실록 버금 가는 거질 ‘추안 급 국안’이 전주 사람 힘으로 만들어졌다니 위안이다. 또는 희망이기도 하다. 오는 8일(토요일) 한옥마을 완판본문화관에서 연주와 전시회 ‘완판본 삼매경’이 열린다. 가서 한 번 즐겨보자. 전주 출판문화 부흥을 염원하며. /임용진(논설고문)








온누리 – ‘미나리 꽝’(새전북신문, 11월13일자) 미나리깡의 표준말은 미나리꽝이다.










미나리꽝은 깡촌까진 아니지만 변두리의 대명사다. 개발되기 전 1960년대 서울 왕십리, 중랑천 일대 및 용두동 경동시장 등이 대표적인 미나리꽝이다. 조선 천지 어디든 땅 걸고 물 많은 곳은 미나리 키우기 좋았다. 인천에선 서구 신현동·원창동 일대, 남원에선 관왕멀(현재 금동), 전주에선 선너머 예수병원 일대(현재 중화산동)가 지난날 미나리꽝이다.


미나리는 겨울에도 청청하다. 나락을 벤 빈 논에 물을 대면 그곳은 겨울에 푸른 미나리 밭, 미나리꽝으로 변한다. 지난날 꽁꽁 언 미나리꽝에서 썰매를 지치노라면 얼음 아래 푸릇푸릇한 식물이 휙휙 지나치곤 했다. 미나리는 그렇게 얼음 속에서 커 우리에게 톡 쏘는 향미를 선사한다.


왕골이 자라는 웅덩이도 ‘왕골꽝’이라 한다. 왕골꽝, 미나리꽝의 ‘꽝’은 구덩이를 뜻하는 한자 ‘광’(鑛) 또는 ‘광’(壙)에서 왔을 것이다. 미나리나 왕골 모두 물이 고이는 웅덩이, 구덩이에서 자란다. 그것이 된소리가 돼(=硬音化) ‘꽝’으로, 다른 소리가 돼(=異音化) ‘깡’으로 변했을 것이다.


전북도가 내년 예산에 미나리꽝 조성 사업비 4억원을 편성했다(본지 12일자 2면). 익산 왕궁 등 오염도 높은 곳에 미나리꽝을 시범 조성해 정화 효과가 좋을 경우 새만금 권역으로 확대할 계획이란다.


미나리는 대표적인 디톡스 식물이다. 중금속 해독 및 수질 정화 기능이 뛰어나다. 매연 먼지가 많은 곳에서 일하는 이들에게 특효이며 가래를 삭히고 기관지, 폐를 보호한다. 복국에 미나리를 듬뿍 넣어주는 것도 맛 뿐 아니라 독을 중화시키기 위해서다. 새만금 호 수질정화를 위해 지자체들은 지난 10년간 1조 3,000억원을 썼다. 하지만 성과가 시원찮다. 미나리 해독 정화 효과가 입증되면 새만금 너른 호수에 푸르고 늘씬한 미나리 향기 바람에 날리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임용진(논설고문)








온누리 – ‘카트’(새전북신문, 11월 26일자) “낙숫물이 정말 바위를 뚫을 수 있을까요?”(동준)




“죄 없는 사람 잡아가고 돈 있는 사람 지키는 게 경찰이가!”(순례)


“저희가 바라는 건 큰 게 아니에요. 저희를 투명인간 취급하지 말아달라는 거예요”(선희)


현재 상영중인 영화 ‘카트’(감독 부지영)의 대사들이다. 이는 지난 2003년 발생한 이랜드 계열 대형마트 홈에버의 비정규직 해고사건에 관한 영화다. 선희 씨(염정아 분)를 비롯해 비정규 직원인 순례(김영애), 혜미(문정희), 옥순(황정민) 씨 등은 회사 해고 통보로 하루 아침에 일터를 잃는다. 그 이후는 공황, 눈물, 호소, 분노의 스토리다. 노조의 ‘노’ 자도 모르는 아줌마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매장 시위를 하지만 생각만큼 불편하지 않다. 오히려 영화관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릴 듣게 된다. 그녀들의 삶이 곧 내 삶이기 때문이다. 매장 안에서 ‘갑’인 고객들도 사실 대형마트만 나서면 대부분 ‘을’이기 때문이다.


선희 아들(도경수)은 영화 초반 ‘핸드폰 바꿔달라’고 조르는 평범한 고등학생이지만 나중에 실직한 어머니에게 제가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을 내민다. 동준(김강우)은 정규직임에도 선희 씨 등의 노조에 합세했다 괘씸죄로 잘린다. 더 이상은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말하지 않겠다.


‘카트’를 본 국내관객은 현재 49만 5,000여명(영화진흥위 집계)으로 국내 박스오피스 2위다. 1위(‘인터스텔라’, 525만 6,000여명)와 차이가 크지만 아무튼 순항이 대견하다.


‘카트’는 하필 지난 13일 개봉했다. 1970년 11월13일 청계천 피복 노동자 전태일이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고 외치며 분신 절명한 바로 그날이다. 그 후 44년, 과연 세상은 얼마나 평등해졌을까. 영화 ‘카트’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임용진(논설고문)








온누리 – 박병선(새전북신문, 11월27일자) 그는 전주 사람이다. 제9대 전북 도지사인 고 박정근의 2남3녀 중 셋째 딸이다. 서울대 역사교육과를 졸업했고 프랑스 소르본느 대학과 고등교육원에서 역사학과 종교학으로 각각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 여성으로 프랑스 유학생 ‘1호’(1955년)다. 프랑스 국립도서관 사서로 근무하며 그곳에 보관된 ‘직지심체요결’(1377년)이 인류사상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책임을 세계에 알렸고 역시 프랑스 국립도서관 베르사이유 별관 창고에서 폐기 위기에 놓인 조선왕실 ‘외규장각 의궤’를 발견, 모국 송환에 평생을 바쳤다. 바로 재불 사학자 고 박병선(1923~2011)이다.


박병선은 평생직장이 보장된 프랑스 국립도서관 사서직에서 기밀누설 괘씸죄로 1980년 해고된다. “베르사이유 창고 고문서 더미 속에 방치된 ‘의궤’가 국보급이며 프랑스가 그 가치를 알기 전에 빨리 반환요청 하라”고 1979년 한국 정부에 알렸기 때문이다. 이를 밉게 본 도서관장이 사표를 종용했다. 이로써 책 열람을 봉쇄당한 후에도 그는 개인 자격으로 이 책 보기를 거듭 신청했다. “오조흐뒤 온네페빠?”(오늘도 안 됩니까?). 거듭된 냉대와 거절을 아랑곳하지 않고 한 달 간 매일 이렇게 물어 마침내 열람을 성공시켰다. 이후 10년간 누가 월급도 주지 않는 도서관에 나와 종일 책을 베끼고 세상에 가치를 알렸다.


‘직지심체요결’과 ‘외규장각 의궤’ 때문에 한국은 문화강국이 됐다. ‘의궤’는 2011년 5월, 병인양요 당시 강화도에서 빼앗긴 지 145년만에 고국에 돌아왔다. 그 반년 후인 11월23일 박병선은 필생의 노력을 마감한 듯 직장암으로 타계한다. 말년엔 병원치료비가 없어서 고생했다.


그제가 박병선 박사 3주기다. 아쉬운 것은 ‘네이버 인물’이나 ‘위키피디아’ 등에 그의 출생이 서울로 돼있다는 점이다. 태어난 해도 1923, 1928, 1929년으로 제각각이다. 박병선 호적 바로잡기가 시급하다. 특히 인터넷 상 혼란이 심하다. 박병선은 ‘가장 자랑스런’ 전북인이다. /임용진(논설고문)








온누리 – ‘눈’(새전북신문, 12월4일자) 꽁꽁, 펄펄. 사흘째 춥고 눈이 온다.




눈에 관한 수상(隨想)으로는 김진섭 ‘백설부’를 따를 게 없다. 어설픈 잡설로 눈을 오염시키느니 ‘백설부’를 그대로 옮기는 게 최선이다.


“무어라 해도 겨울이 겨울다운 서정시는 백설(白雪), 이것이 정숙히 읊조리는 것이니, … 백설이여! 잠시 묻노니, 너는 지상의 누가 유혹했기에 이 곳에 내려오는 것이며, 그리고 또 너는 공중에서 무질서의 쾌락을 배운 뒤에, 이 곳에 와서 무엇을 시작하려는 것이냐? 천국의 아들이요, 경쾌한 족속이요, 바람의 희생자인 백설이여! 과연 뉘라서 너희의 무정부주의를 통제할 수 있으랴!”


이 글은 고등학교 국어 책에서 배웠다. 그래서 읽으면 기억이 눈처럼 춤추며 나를 지난날로 되날린다. 김진섭(1903~?)은 목포 출신 수필가다. 서울대 초대 도서관장을 지냈으나 6·25 때 납북돼 말년엔 종적 없이 눈처럼 스러졌다.


김수영(1921~1968)의 ‘눈’도 빠뜨릴 수 없다. 이 열혈 시인은 눈에 기침 하고 가래침을 뱉는다. 순결한 눈에 고해성사하듯 자신의 비겁과 울분을 토한다.


“눈은 살아 있다/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 기침을 하자/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눈을 바라보며/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마음껏 뱉자”


아, 김수영! 고운 눈에 침 뱉는 젊은 시인의 패기가 느껴지는가? 시대의 부조리, 몰염치, 위선에 괴로워 하던 그는 어느 새벽 술에 취한 채 버스에 치여 죽는다. 바람보다 빨리 눕고 바람보다 더 빨리 일어난다는 ‘풀’이 그의 유작이었다.


12월초에 이런 눈은 드물다. 기습폭설로 도내 초등학교들이 휴교했고 비닐하우스와 노지 작물들 피해가 예상된다. 하지만 난 눈이 오면 언제나 즐겁다. 아침 눈발 속에서 이웃에겐 경쾌한 목례를, 저녁엔 또 “눈을 털며 주막에 들고 싶다”(김동명, ‘눈’). /임용진(논설고문)






온누리 – ‘갑(甲)질’(새전북신문, 12월11일자) ‘갑(甲)질’이 뭔데 이리 우리를 허탈하게 하나. 단어풀이나 해보자.




◾정의 : 권력과 돈 있으면 아무거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생각 또는 행동. 하지만 종종 삽질, 또는 헛발질로 연결된다. 힘의 껍질(=甲)만 벗으면 별 볼일 없는(=乙) 저질들의 전유물. 아파트 경비원에게 침을 뱉는 소시민 조무래기 갑질로부터 운항 중 비행기를 돌리는 으뜸 권력형 갑질까지 한국에 급속히 만연되고 있다.


◾증상 : 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은 설명서 집착형 ‘매뉴얼 갑질’이다. 기내 땅콩 서비스 규칙이 승객 전체의 안전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불균형한 판단이 특징. 현대중공업 오너로서 대한민국 ‘갑중의 갑’인 정몽준은 아무 때나 누구에게나 화 내고 반말하는 중증 버럭질형 갑질이다. 그는 대한축구협회장 시절 자신보다 한참 연상인 모 상근부회장에게 기자들이 보는 앞에서 “이××야, 네가 뭔데 나서?” 하고 말해 주위를 아연케 했다. 몇 년 전 국회 통일외교위원회에서도 한 전문위원에게 “네가 너한테 물어봤냐? 너한테 물어봤어?”라고 막말하는 등 이 증상은 호전될 기미가 없다.


◾치료전망 : 소시민형 갑질은 그들이 자주 을을 경험한다는 점에서 치유 희망이 있으나 재벌 등 대물림 갑들의 유전병은 치유 불능이다. 에볼라보다 심각하다는 우려도 있다. 자신의 갑질을 정당하게 여기는 것, 실제론 어처구니 없는 삽질이란 점을 모른다는 것이 으뜸갑의 최대 문제이다.


◾종합소견 : 박 대통령은 최근의 십상시 파동이 ‘지라시’에 불과하다고 했다. 정윤희 씨는 이 파동이 ‘불장난에 놀아난 것’이라고 했다. 국정 희화화를 걱정하는 전 국민의 탄식을 ‘지라시’ 또는 ‘불장난’이라고 일축하는 것은 심각한 갑적 사고 아닌가? 대통령의 언동을 차마 ‘갑질’이라고까진 못하겠다. 그래도 출범 이래 변치 않는 이 정부의 태생적인 ‘갑 DNA’는 매우 절망적이다. 이나라 슈퍼 울트라 갑 대통령은 대체 누굴 위해 봉사하나? / 임용진(논설고문)






온누리 - 사투리(새전북신문 12월18일자)








  소석 이철승(93)이 현역 국회의원 시절 대정부질의에서 모 장관을 질책했다. “장관. 기다, 아니다를 분명히 하시오.” 이 경우 ‘기다’는 ‘아니다’의 반대말이다. ‘그렇다’의 뜻이다. 소석 특유의 낮고 또렷한 톤으로 국회의사당에서 ‘기다’를 들었을 때의 그 상쾌함이라니! 




   완주군 용진면 시천리가 고향인 소설가 이병천(59)은 창작 판소리 ‘쇳대도 긴디’를 썼다. 전라도 출신의 한 병사가 6·25 때 암구호인 ‘열쇠’를 잊고 그 방언인 ‘쇳대’라고 했다가 봉변 당한다는 내용이다. 최후 순간까지 ‘쇳대도 긴디(=맞는디)’를 반복하는 이 촌 병사의 사연이 안쓰럽고 우습게 구연된다. 이 경우 ‘기다’는 ‘틀리다’의 반대말이다. 




   전라도 사투리 중 ‘거시기’ 만큼 복합적이고 편리하고 자주 쓰이는 말이 ‘기다’이다. ‘맞다’, ‘옳다’, ‘그렇다’, ‘그것이다’ 등의 뜻을 가진다. 혹자는 표준말이라고도 하는데 나는 서울 생활 수 십 년 동안 서울 사람들에게서 자연스레 ‘기다’가 나온 걸 들은 적이 별로 없다. 혹자는 영남인들이 ‘이것이’를 ‘이기~’로, ‘저것이’를 ‘저기~’로 하는 걸 예로 들어 영남사투리라고도 하지만 이 경우엔 말이 줄었을 뿐 독립 품사로서 ‘기다’ 역할을 하지 못한다. 국어사전에도 올라있지만 ‘그것이다의 준말’이란 풀이 하나여서 우리가 쓰는 ‘기다’ 만큼 복합적이지 않다. 한문투에서 ‘그런가, 그렇지 않은가?’를 ‘기연(其然)가 미연(未然)가’라 하고 여기서 ‘긴가민가’가 나왔다. ‘기다’도 그 ‘기’(其=그렇다)에 나왔을 것이란 추측도 가능하다. 사투리인 듯 하고 표준말인 듯 하고, 뜻도 여러 가지여서 참 긴가민가한 게 ‘기다’이다. 




   사흘 전 국립국어연구원이 표준말 18개를 새로 인정했다. ‘허접하다’, ‘개기다’ 등 그간 다소 허접히 여긴 말들이 교양어, 표준어가 됐다. 말도 생명이 있어 자주 쓰면 살고 안 쓰면 죽는다. 전라북도 말 많이 쓰자. 우리에게 표준은 결국 지역 사투리 아니겠는가. ‘기여, 안 기여?’ /임용진(논설고문)




온누리 - 청양 세화(靑羊 歲畵)






  한옥마을 고하문학관은 전북이 낳은 대표적인 시인 고하(古河) 최승범(85)의 개인 서실이다. 여기 출입구를 열면 현관에 큰 책상이 있고 그 위 각종 책과 문방구가 어지러진 가운데 작은 양 몇 마리를 발견할 수 있다. 헝겊으로 만든 것, 검은 돌로 된 것, 플라스틱 뿔이 꼭 진짜 산양을 닮은 것 등등 형태도 가지가지다. 그래서 언젠가 고하께 물었다. “왜 양이 이리 많습니까?”. “허허, 내가 양띠잖아”. 1931년 생인 최승범은 양의 덕이 “외유내강, 순하고 강인하다”고 했다. “지킬 것 지키는 게 선비답다”고도 했다.




   올해는 을미(乙未)년, ‘푸른 양’의 해라고 한다. ‘을’(乙) 자 들어간 해가 오행으로 ‘목’(木)에 해당하고 ‘목’은 푸른색이니 그래서 ‘푸른(=乙) 양(=未)’이란다. 푸른색은 청결과 평화, 지조의 상징이다. 옛부터 선비의 색이다. 중국에선 선비의 옷에 푸른 색 깃을 댄다 해서 맑은 선비를 ‘청금(靑衿=푸른 옷깃)’이라 불렀다. 지난 2012년엔 유럽전역에서 푸른 색 양이 눈길을 끌었다. 베르사이유 궁전 등 유명 궁전과 공원에 푸른 양 조형물 수 십 마리가 연중 전시됐다. 더불어 전시장엔 ‘모두 평등하고 모두 중요하다’(=All are equal, everyone is important)는 구호가 걸렸다. 이 역시 평화, 평등의 상징, 푸른 양이었다.




   지난날 설 풍속 중 세화(歲畵)가 있었다. 액을 막기 위한 용이나 장수를 뜻하는 도인, 복이 넘친 선녀 등을 그려 연초에 서로 선물하면 이를 대문 등에 붙이는 것이다. 요즘 카드나 연하장처럼 성행했으니 조선 때 도화서 그림쟁이들은 연말 한 달 이상을 세화 그리느라 바빴다는 기록도 있다. 




최승범은 오랜 지기인 서양화가 오승우(86)로부터 매년 정초 판화 한 장씩을 받는다. A4 크기 종이에 그해의 띠를 그린 것이다. 지난해엔 말 그림, 그 지난해엔 뱀 그림 등을 십여년 째 받고 있다. 올해 오승우는 또 양을 그려 보낼 것이다. 하지만 그들만 그럴 것도 아니다. 보통 사람인 우리라고 못할 것 없다. 올핸 파란 색 싸인펜으로 양이라도 한 마리 그려 친구 지인에게 선물하자. 평등, 평화, 청렴의 소원도 담아서. / 임용진(논설고문)




   새해 소망은 모두 양이다. 다음 양들을 바란다. 




  




  ▲ 세상은 평화로운 거양 : 이슬람 원리주의 무장집단 탈레반이 지난해 파키스탄 페샤와르 군인자녀학교에서의 만행(어린이 등 150명 사살)을 반성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IS(이슬람 국가) 역시 참수 공포에 떨던 서방인질 수십명을 풀어줬다. 러시아는 체첸반군과, 중국은 달라이 라마와 화해했다. 




  ▲ 전북, 부자 될 거양 : GDP(국내총생산) 등 수치에서 언제나 전국 대비 2% 안팎이던 전북 경제규모가 두 배 가까이 신장했다. 전주 한옥마을 관광객은 1천만명을, 전북 도내 관광객은 1억명을 바라볼 만큼 급증했다. 




  ▲ 따스한 학교 될 거양 : 김승환 교육감이 학교폭력방지에 손발 걷고 나섰다. 지난해 우림중 여중생 폭행사건 등은 더 이상 전북에 없다. 지난해 전국 꼴찌(5.7%)던 도내 중학교 3학년 기초학력 미달 비율도 크게 나아졌다. 전북 교육에 미래가 생겼다. 




  ▲ 결혼할 거양 : 박근혜 대통령이 결혼 발표를 했다. 대번에 청와대에선 비선이 없어졌다. 십상시도 없어졌다. 비선이 없어지자 국가에 비전이 생겼다. 




  ▲ 광복 고희(古稀)양 : 광복 70주년을 맞아 국제정세 호전되고 통일에 서광이 비쳤다. 연초 남북정상회담을 했고, 한국과 갈등 빚던 극우 아베의 일본 내 입지가 약화됐으며 미국, 북한 갈등도 약화됐다. 




  ▲ 안전한 세상이양 : 세월호 3법 국회통과 후 국정조사 등으로 대한민국이 리셋됐다. 책임, 안전, 노블리스 오블리주 등이 가치가 됐다. 세월호 1주년인 4월16일은 속물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기일, 전국적인 참회와 애도의 날이 됐다.


이 모든 게 태반 꿈일 거다. 그러나 올해 연말 이중 단 몇 %라도 남았으면 하는 희망에서 과거형으로 썼다. 세상은 늑대 투성이지만 그래도 양 몇 마리는 살아남지 않던가? / 임용진(논설고문)






온누리 - 주진우










  오늘은 기자 얘기다. 왜 하필 기자 얘긴가. ‘그가 일 개 월급쟁이 기자가 아니라 권력을 감시하는 시민정신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그가 어디 사람인가. ‘전북 사람이다’. 




   바로 주진우(43세·시사IN 기자) 씨 얘기다. 그는 한국에서 가장 몸값 비싼 기자다. 지난 1992년 언론계 투신 이후 그 일신에 걸린 소송이 100여건(누적), 민사 소송액이 한때 70억원에 달했다. 소를 제기한 자는 모두 종교, 정치, 경제계의 슈퍼 갑들이다. 구체적으로 순복음교회, 청와대, 삼성그룹 등 이 나라 ‘갑 중의 갑’이다. 




   주진우 씨는 박근혜 대통령과 5촌 간인 용수 씨와 용철 씨 사망사건에 대통령 친동생 지만 씨가 연루됐다는 의혹을 보도했다고 기소(명예훼손 및 공직선거법 위반)됐으나 지난해 1심 무죄에 이어 최근 2심(고등법원)서도 무죄 판결 받았다. 재판부는 “권력에 대한 감시, 국민에게 정치적 의사 결정에 필요한 정보 제공으로 이뤄진 만큼 언론활동은 이를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지난 2002년 모 일간지 사회부 데스크 시절 주진우 당시 신참기자를 첨 봤다. 장발, 가죽 재킷 차림, 날씬한 몸매에 눈매 날카로운 그는 사회부 사건 담당이지만 축구도 박사였다. 당시 한일 월드컵 취재를 체육부기자보다 잘했다. 신문기자에게 기사관련 소송은 일종의 필화다. 귀찮커니와 때로 소송액도 엄청 나 될 수 있으면 재판 걸릴 기사는 피하려 한다. 하지만 신참 주기자는 그때 이렇게 말했다. “힘있다고, 무섭다고 피하면 누가 씁니까. 제가 한 번 열심히 써 보렵니다.” 




주진우 씨는 고창 출생, 전주 전일고를 졸업했다. 그가 몸 담고 있는 시사주간지는 삼성그룹이 광고 댓가로 기사 삭제를 요구하자 여기 반발한 기자들이 모여 만든 독립언론이다. 이 회사 전임 사장(백승기·61), 전임 편집국장(김은남·49), 현임 편집국장(이숙이·50)이 모두 전주 출신이다. 전주인들은 동학혁명 이래 천생 올곧은가보다. 다른 언론사 얘기이지만, 최근 주진우 기자 ‘무죄’가 통쾌해 써봤다. 임용진/논설고문






온누리- 담합, 유출,반말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 인준 청문회가 요란하다. 소동 중 압권은 한 기자의 취재녹취 파일 유출이다. 이 후보와 식사 도중 대화를 녹음한 것이 유출 돼 후보자의 언론관, 김영란 법에 대한 생각, 기자와의 관계 등이 생짜로 노출됐다. 가장 곤란한 게 이 후보 본인이지만 대한민국 언론도 고개를 못 들게 됐다. 몇 가지만 짚어보자. 


   ▲ ‘반말 하는’ 관계? : 공개된 녹취록대로라면 이 후보는 방송사 국장, 부장과 전화 한 통화로 시사프로 출연자(=패널)를 교체하고 담당 기자 인사에 개입하는 등 언론사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힘이 세거니와 어투도 무척 고압적이다. 언론사 간부에게 ‘야’ 호칭을 쓰고 동석한 기자들을 ‘너희’라고 부르고 있다. 신문사에 입사해 제일 먼저 배우는 게 권력자에게 ‘기죽지 않기’이다. 특히 취재원과 사적으로 밀착해 ‘형님, 동생’ 하는 게 금기시된다. 보도의 객관성, 공정성을 확보하려는 편집국 특유의 문화이다. 그런데 말투에서부터 ‘야’, ‘너희’를 허용하고 보니 이 후보의 언론사 인사 개입 등이 사실이었으리란 오해를 받아도 할 말 없게 됐다. 




   ▲ 담합? 판단 잘못? : 문제의 녹취 당일 이 후보와 식사한 기자는 모두 넷. 문화일보, 한국일보, 중앙일보, 경향신문 정치부 기자다. 이 중 경향신문 기자만 빼고 나머지 셋은 모두 녹취를 한다. 그러나 이 세 신문은 모두 기사화 하지 않았다. 발언 사안으로 볼 때 언사 마디마디가 ‘기사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게 보이지 않았다면 기자와 데스크의 자질 부족이고, 보였음에도 기사 밖의 다른 이유로 쓰지 않기로 담합(= 속칭 ‘당고’)했다면 그들은 기자랄 수 없다. 속류(俗流)집단에 불과할 뿐이다. 




   취재를 위한 녹취는 요즘 비일비재니 그게 적법이냐를 꼭 따져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녹취 파일 제3자 유출은 심각하다. 취재노트조차 독자를 위한 것이거늘, 녹취 파일을 제 재산마냥 남에게 그냥 건넨다면 그것은 기자 도리가 아니다. 목숨 걸고 취재했다면 그랬을까? 취재 ABC부터 다시 배워야겠다. /임용진(논설고문)








요우커(2015.1.26.)   




나그네가 돼 돌아다니는 것을 일본은 ‘여행’(旅行), 중국은 ‘여유(旅遊)’라 한다. 우리도 여행이라 쓰지만 이는 일본에서 왔을 가능성이 크다.




나그네 ‘여’(旅)까진 같은데 그 다음 글자가 다르다. 일본이 ‘다닐 행’(行)을 쓰는 건 뭔가 행위 지향적이고 절도 있는 일본식 단체관광을 연상시킨다. 중국이 ‘놀 유’(遊)를 쓰는 건 이에 비해 여유있고 소란스럽고 건들거리는 듯한 느낌이다. 문화 차이가 양국 사용 단어에도 나타나는 듯해 흥미롭다. 조선조 양반들의 여행기록이 ‘유산록’, ‘유산기’ 등의 이름으로 남아있는 걸 보면 한국도 전엔 여행에 ‘놀 유’를 많이 썼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인 관광객을 뜻하는 ‘요우커’는 ‘노는’(= 遊) ‘손님’( = 客)이다. 이들 놀러온 ‘요우커’ 때문에 지난주 설 명절 서울이 북적댔다. 명절 닷새 동안 사상 최대인 13만명이 몰려 서울 백화점 매출고를 신나게 올렸다고 한다. 




하지만 중국은 아직 놀기를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소득별 소비 발전단계에서 해외여행은 1인당 국민총소득 10,000달러를 기점으로 는다는 게 정설이다. 한국도 지난 199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외국여행이 폭증했다. 중국은 현재 7,000~8,000달러 수준이다. 




전주 한옥마을에도 중국 관광객이 자주 보인다. 얼마나 오는지, 와서 무슨 활동하는지, 뭘 먹는지에 관한 통계는 아직 없다. 한국 관광객 마중도 힘드는데 그럴 겨를이 어딨나 할지 모르나 요즘 중국 ‘요우커’들은 서울 명동에만 몰리지 않는다. 한국 사람들 가는 덴 다 간다. “한국에 왜 가나?” “전주 ‘빤판’(= 비빔밥) 먹으러 한옥마을 간다” 곧 ‘요우커’들 사이에서 이런 말이 나올 수도 있겠다. 서울은 갈수록 그들이 놀기에 너무 낯익은 곳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갈수록 여유가 본격화할 ‘요우커’ 맞이 채비를 한옥마을이 서둘러야겠다. / 임용진(논설고문)








온누리, ‘김영란’ (새전북신문 2015.2.26.)   




지난 주는 한국 법 문화사의 한 에포크라 할 만하다. 지난 2월 27일 부정청탁 금지법(‘김영란 법’)이 국회 본회의 통과됐으며 반세기 이상 완강하던 간통죄는 3월 3일 헌법재판소 위헌판결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부패청탁 방지를 액수까지 세세히 법으로 규정한 건 한국이 세계 처음이란다. 간통죄가 남아있던 건 이슬람 국가들을 제외하고 한국이 세계 마지막이었단다. 




‘김영란 법’은 김영란(60) 전 대법관이 국민권익위원장 시절 발의했기 때문에 그 이름을 붙였다. 김 전 대법관은 여성 최초로 대법관이 됐으며 재직시 소수 의견을 많이 냈다. 호주제 폐지, 사형제 폐지 등에 적극적이었으며 대법관 14명 중 진보 색채가 강한 박시환, 김지형, 이흥훈, 전수안, 김영란 대법관을 당시 언론에선 ‘독수리 5형제’라 부르기도 했다. 




똑 부러지는 소신 때문에 그런 별명이 생겼지만 김 전 대법관은 사석에선 ‘독수리’와는 전혀 먼 인물이다. 지난 2006년 가을 김 전 대법관이 여 판사들과의 한 회식 석상에서 그 흔한 인사말이나 건배사도 사양하고 까마득한 후배들과 거의 수다 차원의 대화를 하는 걸 상쾌하게 바라본 적 있다. 이게 뭐 대단할까 싶지만 대부분 판사, 특히 검사들은 회식자리에서 선배 ‘한 말씀’ 없이는 밥 숟갈도 들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한국의 여성 대법관은 지금까지 총 4명이다. 김영란, 전수안이 전직이고 박보영, 김소영 법관은 현직이다. 1954년 황윤석 판사가 최초 여성 법관으로 임관한 이래 현재 한국의 여성 판사 비율은 20%가 넘는다. 프랑스가 55%를 넘는 등 한국도 조만간 여성 판사 다수파 시대가 올 것이다. 




미국에선 종신제 연방 대법관을 ‘저스티스’(=정의)라 한다. 별명이 아니라 공식 호칭이다. ‘김영란 법’은 한국 ‘저스티스’의 시금석이 될 것이다. 여성은 대개 정의에 민감하면서도 부드럽게 경색된 곳을 풀어준다고 한다. 대법원에서 시작했으니 청와대까지도 퍼지길. /임용진(논설고문)






온누리 ‘흙의 날’(새전북신문 2015.3.5.)




  




나는 대지의 살이다. 애초 단단했으나 바위에서 떨어져 나와 수백년 동안 으깨지고 밟히면서 작은 입자가 돼 이 행성을 포근히 덮고 있다. 부드러움은 내 상징이다. 모든 게 나로부터 나와 결국 나로 돌아온다. 황금도 내게서 나고 백골도 내게로 안긴다. 단 한 줌의 나로써 생명을 발아하고 영면을 감싸기 충분하다. 이국을 떠돌다 이국에서 죽은 프레더릭 쇼팽이 조국 폴란드에서 가져온 작은 컵 속 흙을 제 무덤에 뿌려달라 했듯, 나는 모든 생명의 이부자리다. 




천원지방(天圓地方). 하늘의 덕은 두렷하지만 내 덕성은 단정하다. 언제나 씨 뿌리면 싹 나고 열매 맺고 사시절기가 어김 없이 딱딱 맞아 떨어지도록 해준다. 경칩에 단단한 속 마음 열어 주고 춘분에 햇볕 받고 청명, 곡우엔 훈풍과 비바람으로 갈무리해 내 자양분은 머잖아 천지에 푸름을 뿌릴 것이다. 




그러나 내 속은 실은 만신창이다. 갖은 화학비료, 농약, 수은, 카드뮴, 니켈 등 이 오래 전부터 후벼 파 이미 농 흐르고 진액 찐득여 겉만 번드르르하다. 옆 나라 중국은 이미 그 거대한 땅 16%가 오염됐다고 한다. 모두가 돈 욕심 때문이다. 산을 산으로, 숲을 숲으로 보지 않는 인간 욕심에 나 역시 땅이 아니라 ‘땅 값’이 됐다. 오랜 세월 남을 정화시키고 남을 기르는 데 바쳤으나 이젠 내가 아파 그럴 여유가 없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 터질 듯하다. 




마침 올해가 국제연합(UN)이 정한 2015년 ‘흙의 해’이다. 한국도 어제인 3월11일울 국가기념일 ‘흙의 날’로 정하는 법이 국회 통과돼 곧 발효된다. 이 날을 정한 건 ‘하늘(天)+땅(地)+사람(人)’에서 ‘3’월을, 한자 10(十)과 1(一)을 합하면 ‘흙(土)’이 되기 때문에 거기서 ‘11’일을 택한 것이라 한다. 작위적이건 아니건, 아무튼 기특하다. 지금부터라도 흙을 되살려야 할 것이다. 4년 전 3월11일은 공교롭게도 동일본 대지진 악몽이 터진 날이다. 농도(農道) 전북이 제안한 ‘흙의 날’ 제정은 자연에 대한 고마움과 외경을 되새기도록 해준다. /임용진(논설고문)






‘금요일엔 돌아오렴’ 몇 구절을 옮긴다.   




● 그들




“(복원된 핸드폰) 동영상에서 구명조끼 입는 장면이 나오더라구요. 그런데 우리 아들이 거기서 친구들에게 구명조끼를 챙겨주고 있더라구요. 하나 날라다주고 손 털고, 또 하나 날라다주고 손 털고, 앞에 있는 여학생이 구명조끼가 작아 안 맞으니까 다른 것 가져다 비닐 뜯어서 주고 그래요. 그 모습을 보니까 우리 아들이 이렇게 하고 있었구나, 친구들을 도와주고 있었구나 싶었어요. 또 배가 기울어 떨어지려는 아이가 있었는데 … 우리 애가 체격이 작아 못하니까 옆에 친구랑 같이 둘이서 끌어 올리는 모습도 있고… 아이들이 이렇게 무섭고 힘든 상황에서도 서로 챙겼구나 싶었어요. … 다른 애들은 문자도 전화도 했는데 어떻게 우리 아들은 전화도 문자도 안 했을까 되게 의문을 많이 가졌었어요. 그 순간에 우리 아들은 그렇게 하고 있었던 거예요. …지금도 사무치게 아픈 게, 생존자 아이들이 전하는 말이 아이들이 서로 밀치지도 않고 구해줄 줄 알고 줄 서서 있었다고 그래요.”(4반 김건우 학생 어머니 노순자 씨)




“우린 미지가 어떻게 죽었는지 몰랐어요. … 근데 생존 학생이 안산법정에서 증언을 했데요. ‘반장(미지) 때문에 살았다. 반장이 선장 역할 다 했다. 반장이 지금 우왕좌왕하지 말고 조금 있다가 나가자. 지금 문을 못 여니까 물이 좀 찬 다음에 나가자, 한 사람씩 한 사람씩 나가자’ 이랬다는 거야. 미지는 아마 위에 있다가 다시 배 밑으로 들어간 것 같아. 밑에서 한 사람씩 올리고. 근데 이 아이가 올라가려고 하는데 물에 쓸렸데요. 그래서 자기도 죽는구나 생각했는데 마침 봉을 잡고 있어 간신히 살았대. 자기까지만 살고 밑에 있는 애들은 쓸려 들어가 버리고. …미지는 맨 밑에서 걔까지 올려주고 물에 쓸려서 소식이 없었던 거지. 생존자 말이 없으면 우리 딸이 그랬는지 몰랐을 거야.”(1반 유미지 학생 아버지 유해종 씨)




  




● 남겨진 이들




“친한 친구 둘의 동생들하고 승희가 절친이었는데 그 동생들도 이번에 (사고로) 잘못됐어요. …한 친구는 (신호등) 빨간 불인데도 차도로 뛰어들어 차가 치면 바로 인생 끝인데 왜 그게 어렵지라고 생각한대요. 저도 여기(아파트)에서 떨어지면 인생 끝인데 왜 그게 안 될까 그런 생각 많이 하고. …제가 잠수부가 되어 애들 찾으러 가는 꿈도 꾸고, 제가 거인이 돼서 배를 끌어올리는 상상도 많이 하고.”(3반 신승희 학생 언니 승아 씨)




“오일짼가 육일짼가. 진도 할머니들이 집에서 만든 식혜를 가져와 돌아다니면서 주는데, 처음에는 안 먹는다고 그랬어요. 그런데 할머니들이 막 우시는 거예요. 애 찾아가려면 먹으라고. 그래야 산다고. 잘 못 되면 안 되니 한 모금이라도 먹으라고. 할머니들이 이제 우리 걱정하면서 막 우시니까한 모금 넘겼는데 그게 사고 나고 처음 먹은 음식이에요. 한 모금 넘기면서 나도 울고, 할머니들도 울고.”(신승희 학생 어머니 전민주 씨)




  




벌써 세월호 참사(2014년 4월 16일) 1년이다. 이걸 참회와 정화의 1주년이라 해야 할지 가슴에 묻은 내 자식들의 1주기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간 일이 참 많았다. 도망, 변명, 잠깐 비친 눈물, 진실 침몰 그리고 이어지는 막말, 막말, 막말. 무엇보다 그 장본인들이 점점 몰염치해진다는 게 우리를 절망하게 한다. 유족 슬픔에 바리게이트를 치고 라면을 먹은 교육부 장관에서부터 무개념 유명 목사와 고위 언론인, 서울대 교수 및 최근 세월호특별조사위를 ‘탐욕의 결정체’라 한 청와대 정무특보까지. 지난 1년간 확인한 것은 우리 사회의 세월호 선장이 이준석 씨 단 한 사람에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진도 할머니들이 유족들에게 식혜를 권하며 울 때 나는 혹시 속으로 그들에게 단 한 번이라도 ‘고통앞에 중립’을 요구하지 않았던가? 




가슴 아프지만, 세월호도 필경은 세월이 약일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절대 아니다. 잊을 수 없고 관대할 수도 없다. 당신과 나에겐 눈물이 더 필요하다. 그걸 위해 팽목항을 순례하거나 안 된다면, 책 한 권 권한다. ‘금요일엔 돌아오렴’(창비, 1만2천원). 수학여행 마치고 금요일에 온다는 그들 약속을 앞으로도 평생 기다려야 할 남겨진 이들의 육성기록이다. / 임용진(논설고문)








온누리 - 도핑(새전북신문 3월25일자)










  한때 랜스 암스트롱은 인간승리의 아이콘이었다. 그는 죽음의 경주라는 ‘투르 드 프랑스’ 사이클 대회를 7번 제패했다. 고환암을 앓고 이혼하는 등 심신의 역경을 겪었으나 그는 그때마다 오뚝이처럼 일어났다. 암을 이겼다는 의미에서 국내 스포츠신문 제목은 그를 ‘암(癌) 스트롱(= strong · 강하다)’이라 부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재단을 통해 암환자들에게 4억달러 거액을 기부해 자선 천사가 됐다. 암스트롱 재단이 만든 노란색 ‘리브 스트롱’(=강하게 살자) 팔찌는 희망과 투지의 상징으로서 전 세계 젊은이들의 팔에 걸렸다. 한국에서 몇 천원에 팔린 그걸 심지어 나도 찬 적 있다. 




   그러나 모든 게 ‘허영의 시장’이었다. 암스트롱은 2013년 1월 미국 유명 토크쇼인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해 자신의 ‘도핑’ 사실을 시인했다. 우승을 위해 근육 강화제 등의 금지약물을 정기적으로, 수년 간 투약했다고 털어놨다. 이미 세계사이클연맹 등이 압박하고 루머가 기정사실화된 터이긴 했으나 그의 ‘배신’은 전세계를 경악케 했다. 그간 그를 우상처럼 믿었던 이들의 희망이 날아갔다. 암스트롱 본인은 그간 받은 메달, 상금을 모두 반납했으며 연봉과 광고계약을 통한 연간 2800만달러의 수입도 끊겼다. 하루 아침에 그는 ‘기만의 아이콘’이 됐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실망스러운 건 암스트롱의 변명이다. 남들도 다 하지 않느냐, 약물투입은 이미 사이클링 계에 만연해있기 때문에 필요악이다, 심지어는 “나는 도핑이 반칙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세계에선 경기의 일부”라고까지 했다. 이에 비해 같은 사이클 팀 동료인 타일러 해밀턴은 혐의를 인정하고 진심으로 참회하는 스포츠맨 십을 보였다.




   한국최초의 올림픽 수영 금메달리스트(2008년 베이징 올림픽, 자유형 남자 400m)이자 아시안 게임 2연속 3관왕인 ‘마린보이’ 박태환이 국제수영연맹(FINA)으로부터 24일 도핑으로 인한 자격정치 및 메달수상 취소 처분을 받았다. 이로써 박태환이 내년 리우 데 자네이루 올림픽에 출전할지 미지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다. 박태환이 랜스 암스트롱이 될 것인가, 타일러 해밀턴이 될 것인가. 그의 스포츠 맨십은 지금부터다. 우린 ‘마린보이’가 양심마져 도핑하지 않았길 간절히 바란다.








1200억원(새전북신문, 4월9일자)










  정부가 진 빚이 얼마나 빨리 증가하는지를 보여주는 걸 국가채무시계라 한다. 한국의 나라 빚은 지난해 총 500조원이 넘었고 매초당 136만원씩 재꺽거리며 늘어난다. 하루엔 1천200억원 가까이 늘어난다. 




   현대그룹 정몽구 회장은 지난해 개인 고액 납세자 2위이다. 현대글로비스매각 차익으로 인한 양도세와 기타 배당 소득세, 근로소득세 등으로 그 혼자 세금 1천200억원을 냈다. 국내에 벤츠 자동차를 파는 메르세데스 벤츠코리아는 지난해 총 매출액 2조2천45억원을 올려 영업이익 1천2백억원을 남겼다.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클로드 모네의 작품 여섯 점이 다음달 뉴욕 경매에 나온다. 총 예상 낙찰가는 1억1천만 달러(약 1천200억원)이다.




   1천200억원이 어느 정도 돈인지 알아보기 위해 열거했다. 개인으로서야 연봉 1억원을 받는 고소득자가 1,200년을 모아야 하는 거액이지만 산업, 사회, 나라의 덩치로 보면 또 달리 보인다. 1천2백억원은 한국 2015년 정부 예산액(258조 5천856억원)의 0.046%며 같은 해 서울시 예산액(35조 1천897억원)의 0.34%이다. 올해 전북교육청 예산(2조 6천485억원)의 4.5%이기도 하다. 




   세월호 참사(4월16일) 1년이 다가오는 판에 정치권이 급하긴 급한가 보다. 박근혜 대통령의 ‘인양 적극 검토’ 발언 이후 하루도 안 돼 여야 국회의원 158명이 인양 촉구를 결의했다. 남의 고통엔 중립을, 권력자의 일거수일투족엔 여, 야를 떠나 신속무비하게 튀는 그 운동신경이 놀랍기만 하다.




   세월호를 건져 올리려면 1천200억원 정도 들 것(해양수산부 조사)이라 한다. 부장검사 출신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은 이를 ‘혈세 투입’이라고 비난했다. 대통령 최측근인 김재원 청와대 정무특보는 세월호 진상규명위원회 사무처를 ‘세금도둑’이라고 나무랐다. 하지만 그들이 보지 못하는 돈도 있다. 감사원 조사결과 전임 이명박 대통령 시절 한국 정부가 해외자원개발에 투자해 손해 본 액수가 3조 4000억원이다. 세월호 28대를 건질 수 있는 큰 돈이 적자의 심해에 빠져 인양 불능이란다. 과연 뭐가 ‘혈세’고, 누가 ‘세금 도둑’인지. /임용진(논설고문)










온누리 - 살고싶은 도시(새전북신문 4월19일자)






‘말은 태어나면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서을로 보내라’고 했다. 다산 정약용은 1836년 74세로 타계하며 아들 정약유에게 “뭔 일 있더라도 사대문 밖으로 이사 가지 말라. 서울을 벗어나는 순간 기회는 사라지고 사회적 재기하기 힘들다”고 일렀다. 요즘도 검사 등 고위공무원 인사 철에 누가 서울로 들어왔나, 지역에 하방됐나가 관심인 것을 보면 ‘큰물’이 좋긴 좋은가보다. 




하지만 서울이 크긴 여전히 크나 ‘좋은 물’로서 위치는 많이 약해졌다. 지난 주 한국갤럽이 발표한 ‘한국에서 가장 살고 싶은 도시’ 설문(13세 이상 남녀 1,700명 면접조사, 신뢰도 95%) 조사에서 서울은 여전히 1위였으나 선호도는 10년 전보다 크게 하락(22%→16%) 했다. 제주, 부산, 춘천, 대전 순으로 2~5위며 전주는 6위(2.6%) 했다. 나머지 순위인 대구, 광주, 경주도 모두 2%대여서 차이는 ‘도찐개찐’이지만 10년 전 전주가 순위 밖으로 밀렸던 것과 비교하면 무척 고무적이다. 




‘살아 진천, 죽어 용인’이라 적은 이중환은 역저 ‘택리지’에서 사람이 살 만한 4대 조건으로 ‘지리, 생리, 인심, 산천 경계’를 꼽았다. 전주는 이 넷이 모두 들어 맞는다. 최근 KTX 고속열차 개통 등으로 교통이 확 뚫렸고(=‘지리’) 산물 풍부한 곡창(=‘생리’)이며 ‘인심’이야 말할 나위 없다. 경치도 여느 곳 못지 않으려니와 최근 일년에 6백만명을 넘는 한옥마을 관광 ‘대박’은 그 ‘산천 경계’의 현대판 정점이다. 




영어권 경제 잡지인 ‘이코노미스트’는 매년 ‘살고 싶은 세계 10대 도시’를 조사 발표한다. 전주도 그런 국제 조사에서 주목 받았으면 좋겠다. 아무튼 전주가 강릉, 대구, 광주, 일산, 경주, 인천, 청주, 수원, 포항, 원주, 울산(이상 7~17위)보다 살고 싶은 도시라니 반갑다. 하지만 도시 성적보다 더 중요한 건 대한민국 성적이다. 세월호와 성완종 리스트 태풍 속에서 아무리 전주에 숨은들 얼마나 쾌적할 것인가. 그런 생각하니 또 부질 없고 씁쓸해진다. / 임용진(논설고문)






녹두장군의 귀환(임용진 칼럼. 새전북신문 4월17일자)










  전주시가 한옥마을에 전봉준 동상을 세운단다. 기념식화 한 세월호, 성원종 리스트 파문, 대통령 출국 등으로 심사 산란하며 날씨조차 꾸물대던 차 이 소식을 들으니 한 모금 감로수 같다. 새전북신문 4월15일자 1면에서 이 뉴스를 봤다. 마침 세월호 1주기 하루 전날이었다. 




   기사에 따르면 김승수 전주 시장이 “추경 예산 확보를 계획하고 있다. 전봉준 장군 동상 건립을 통해 전주가 동아시아 최초의 민주주의 실험장이었음을 알리겠다”고 했다 한다. 경비 마련과 목적, 명분이 구체적인데다 지자체 장의 의지이니 곧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기대된다. 참, 잘한 일이다. 이를 바라던 시민이나 추진 중인 공무원들 모두 박수감이다. 전주 아니면 어느 도시가 이런 일을 할까? 은근히 자부심도 든다. 




   동상이 생기면 어떤 모습일까, 한옥마을 어디에 설까, 크기는, 높이는? 등등을 상상하며 우울한 가운데 그래도 잠시 생각을 달린다. 우린 이미 전주 덕진공원에 ‘전봉준 선생상’을 가지고 있다. ‘전봉준 선생상’은 시골 훈장 출신답게 머리에 중인이 쓰는 좁은 갓을 쓰고 왼손은 가슴에 얹고 오른손에 종이 문서 하나를 높이 치켜들고 있다. 표정 결연하고 돌돌 말린 종이가 먼 데서 보면 횃불 형상인 것이 아마 1894년 6월11일 체결된 ‘전주화약(和約)’ 문서인 듯하다. 농민군과 정부군 사이에 체결된 이 평화 약속은 ‘탐관오리 엄벌’, ‘토지 균등 분배’ 등 폐단이 많은 12가지 정치(‘폐정12조’)를 고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전주 청년회의소와 풍남청년회의소 공동으로 제작했으며 조각가 배형식의 작품인 이 동상도 좋다. 그러나 덕진공원 외진 곳 수목에 가려 찾는 이 적은 것이 제일 아쉽다. 실패한 서민의 꿈, 처연한 녹두장군이라기보다 갓 쓴 지식인처럼 보여 가슴이 덜 뭉클한 것도 티이다. 




   또 다른 동상은 정읍 황토현 전적지 동학농민혁명기념관 내에 있다. 덕진공원처럼 역시 다글다글한 얼굴, 오른손은 치켜들었고 왼손에 문서를 움켜쥐었다. 아마 ‘고부기포’ (1894.3.) 선언 문서거나 관군과 벌인 황토현 전투 대승(1894.4.) 직후의 어떤 문서일 것이다. 이 동상은 덕진공원 것과 달리 갓을 벗은 맨머리 민상투에 단구지만 균형잡힌 몸매 등 전체적으로 수십만 농민군의 혁명 지도자답게 훨씬 힘찬 인상을 준다. 좌대와 동상 높이까지 합쳐 6m가 넘어 우러러 볼 수 밖에 없으며 동상 주변을 돌며 벽에 새긴 농민군의 함성 등으로 인해 전체적으로 다이나믹하다. 하지만 여기에도 영웅서사의 비극적 감동은 없다. 감동은 그게 사실이고 내 일 같아야 오는데 우리는 1894년 11월 동학군 4만명이 우금치에서 관군에게 궤멸돼 산하를 피로 물들이고 전봉준은 12월2일 순창 피내리에서 부하 김경천의 밀고로 잡혀 서울로 잡혀가 고문과 재판 끝에 이듬해인 1895년 4월24일 한강 마포 절두산에서 망나니에게 목이 잘렸단 것을 알 뿐이다. 동학 이후엔 을사보호조약과 35년의 일제 강점, 분단, 동족상잔, 기나긴 독재, 신자유주의가 있을 뿐이어서 그 이기적, 맹목적 군상 속에서 황토현 승전지 전봉준 동상의 힘찬 포즈를 현실적 승리로 느끼기 힘들다. 




   전봉준을 알려주는 가장 유명하고 유일한 사진은 그가 서울 일본 영사관에서 한국 법무부(‘법무아문’)으로 압송되기 직전 들것에 앉아 찍힌 것이다. 일본인 사진작가 무라카미 텐신(村上天眞)이 1895년 2월27일 일본영사 우치다의 사전 허가를 얻어 촬영한 것이라고 최근 고증됐다. 체포 후 약 석 달에 걸친 고문과 심문에도 불구하고 그의 안광은 여전히 꿰뚫듯 형형해 대혁명가의 기개를 전한다. 가무잡잡 마른 얼굴과 텁수룩한 수염, 두드러진 태양열과 광대뼈는 그간의 시린 고통 탓이리라. 이미 거동을 못해 들것에 얹혔으나 작은 이 사나이가 옆에 선 호송 병사를 위압하는 듯 보이는 것은 나만 그러한가? 




   개인적으로 나는 전봉준 최후의 이 사진이 가장 좋다. 무명 잡역부 둘이 그를 들 것에 태우고 칼찬 병사 둘이 호위하는 이 장면은 멸시와 고문에 탈진한 조선의 꿈을 은유한다. 작은 체구의 이 사나이가 한옥마을 어디선가 들것에 앉아 우릴 쳐다보는 걸 상상해본다. 수많은 젊은 관광객들과 함께 동학도 수백년째 전주에 앉아 한옥마을에 흘렀던 것임을 새삼 느끼고 싶다. 그것은 동학의 오랜 꿈을 역사에서 건질 것이다. 마치 세월호 인양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 모든 건 그냥 개인 생각이다. 어떤 모습으로 세워지면 어떠랴. 녹두장군 전봉준이 돌아오신단 것만 해도 가슴 벅차다. 그의 귀환은 전주가 한국문화 뿐 아니라 정신과 용기, 정의의 중심이란 걸 뜻한다. 한옥마을 전봉준 동상 제작 결정에 다시 박수를 보낸다. /임용진(논설고문)






지난 2008년 이 온누리 난에 ‘전북의 보물’을 30회 가량 연재하다 사정상 중단했다. 오늘부터 다시 시작한다. 첫 회는 ‘꽃동산’이다. 




   세상엔 예쁜 정원도 많다. 덴마크 티볼리 파크는 개장(1843년)한 지 170여년이나 되는 세계 최고(最古) 테마파크다. 각종 탈 것 뿐 아니라 정원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이를 본받아 만든 게 국내 용인 에버랜드이다. 지난 1975년 개장 당시 이름은 용인자연농원이다. 요즘도 매년 5월부터 벌이는 에버랜드 장미축제엔 수백만 송이 장미가 아찔한 향기와 자태를 경염한다. 이밖에 경기도 가평에 아침고요수목원이 있고, 캐나다 뱅쿠버엔 ‘부처트 가든’이 있다. 특히 부처트 부인이 오랜 석회암 광산에 식물을 심어 1904년부터 조성한 부처트 가든은 세계인의 정원으로 사랑받는다. 또 싱가포르 가든스 바이더 베이의 클라우드 포레스트와 일본 하코네 국립공원 등 정원 아름답다는 델 많이도 가봤지만 제일 아름다운 보석은 제일 가깝게 있다. 바로 내고장 전주 완산칠봉 ‘꽃동산’이다. 




   비 그치고 활짝 개인 그제(20일) 전주시립도서관 뒷산 완산칠봉 ‘꽃동산’을 찾았다. 불과 2분이면 오를 수 있는 작은 동산. 첨에 그저 무심히 오르지만 곧 누구나 화들짝 놀란다. 안전에 전개되는 붉은 피들. 연산홍, 자산홍, 겹벚꽃, 수사 해당화 등이 갑자기 벌떡 일어서 상춘객의 눈을 습격한다. ‘세상에 뭐 이런 데가’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난다. 도원경, 파라다이스가 따로 없다. 




   ‘꽃동산’은 조선 때 중죄인 목을 베던 초록바위 뒤켠에 있다. 그들의 피와 한이 배어 그리 붉은가. 원래 이곳은 시민 김영섭(71) 씨가 사재를 털어 조성한 철쭉 동산이다. 박봉에 시달리며 그의 선친이 좋아하던 철쭉을 심느라 부부싸움도 수태 했다 한다. 이곳을 전주시가 사들여 15억원 들여 단장하고 5년전에 시민들에게 개방했다니 실은 시민들도 아는 이가 반도 안 된다. ‘꽃동산’은 지금 활짝 피었다. 아침엔 사람 없어 좋고 밤에도 전등 불 아래 화사 화려하기 지극무쌍이다. 이건 전주 시민의 복. 며칠 내 꼭 가시길 권한다. /임용진(논설고문)






온누리 - 전북의 보물2.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서울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 호남선 매표소엔 전주 전용 창구가 없다. 광주행만 전용 매표소가 있고 전주 표를 사려면 ‘전노선 발매’라고 적힌 데서 줄을 서야 한다. 광주만 고유명사고 전주는 꼭 ‘기타 등등’인 듯해 씁쓸했지만 요즘엔 그렇지도 않다. 표를 사 가지고 승강장 홈쪽으로 우회전하면 단연 전주 일색과 마주친다. 널찍한 터미널 통로를 사이에 두고 승강장 맞은 편 한 가운데서 ‘삼백집’, ‘베테랑 분식’, ‘한국집’ 간판이 눈에 확 들어온다. 승객들을 위한 끼오스크와 편의점 등 가게 수십 개가 있으나 눈에 확 띄는 건 이 전주 출신 ‘삼총사’다.    몇 해 전만 해도 그만그만한 분식집, 패스트 푸드가 터미널 음식의 대명사였다. 하지만 강남 고속터미널 호남선에 관한 한 이젠 전주 음식이 대명사다. 콩나물 국밥(=삼백집), 칼국수와 쫄면(=베테랑 분식), 비빔밥(=한국집) 등 ‘전주 표’가 서울 강남을 평정했다. 터미널 내엔 송추 가마골 갈비탕, 명동 칼국수 등 유명 음식점도 있으나 베테랑 분식 앞에 곧잘 긴 줄이 늘어서는 걸로 봐 전주의 한 판 승이 역연하다. 갈 길 바쁜 승객들이 뭐 먹겠다고 음식점 앞에 장사진을 치는 것 자체가 진풍경이다.




   삼백집은 이미 세종청사점 등 전국에 26개 분점이 있다. 한국집 역시 고속터미널 말고 강남에만 직영점 두 곳(현대백화점 강남점, 롯데백화점 잠실점)을 뒀고, 베테랑 칼국수는 고속터미털이 서울 1호점이라지만 약진할 게 분명하다. 이뿐 아니다. 터미널 내 전주 한식집 ‘고궁’이 있고, 전주 콩나물국밥 대명사 중 하나인 ‘현대옥’은 전국에 무려 160개, 서울에만 18개(강남 7개소) 점포가 있다. 




   여름날 초코파이 구입을 위해 땡볕 아래 땀 뻘뻘 흘리면서 기다리던 행렬을 기억할 것이다. 좋건 싫건 초코파이와 ‘풍년’은 이미 전주 그 자체가 됐다. PNB풍년제과가 현대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에, 풍년제과가 롯데백화점에 각각 입점해 서울 속 전주 땅을 구축하고 있다. 음식은 손끝 창조, 입맛 창조다. 이로써 전주는 부동의 대한민국 음식수도, 창조 수도가 됐다. 전주사람인 그대,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어깨가 으쓱할 만하지도 않은가? /임용진(논설고문)






온누리 - 홍준표










  그는 서울 명문 K대 법과대학 행정학과 72학번이다. 재학중 학교 인근 제기동 지점에서 시중은행 창구직원으로 근무하던 한 외모반듯한 처자에게 반했다. 그는 당시 대학 등록금 10만원을 매일 2천, 3천원씩 쪼개 찾는 전법으로 한달 간 그 여자 직원 창구앞에 줄을 섰다. 그러나 일방적인 ‘눈도장’일 뿐 정작 그녀는 이 명문대 생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줄서기 작전이 별무효과이자 그는 연줄과 학연을 동원하는 네트워크 구애로 작전을 바꿨다. 대학선배인 그 은행 지점장을 찾아가 중매를 간청했다. 상사인 지점장의 권고 겸 지시로 소개팅에 성공, 둘은 교제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 소식을 들은 처자의 시골 아버지가 당장 불호령을 내렸다. “연애하려고 서울 갔냐? 은행 그만 두고 내려와라.”




   처자의 고향은 부안 줄포. 고깃배도 갖고 있는 바닷가 유지의 딸로 군산여상을 졸업하고 선망의 은행원이 돼 큰 도시 서울까지 갔으나 정작 어른의 완강한 반응 앞에 그녀는 하릴없이 귀향했다. 그러나 거기서 그만들 사내가 아니었다. 경남 창녕이 고향인 그는 주민등록상 주소지를 전북 줄포로 바꿔 군(=방위병) 생활을 줄포에서 하며 아예 눌러 앉기 상주 작전으로 한층 더 다가섰다. 




   1970년대면 약 반세기 전이고 무대는 좁은 면단위 지역이다. 지역 텃세는 물론 경상도, 전라도가 엄연한 시절이어서 경상도 사투리 뚝뚝한 젊은이가 비우호적인 지역 한 가운데로 사랑을 위해 뛰어든 것은 용감하긴 할지언정 성사 가능성이 지극히 낮아 보였다. 그러나 머리 좋고 뚝심 좋은 젊은 방위병은 복무 틈틈이 주경야독해 고시에 합격했고 둘은 해피엔딩, 결국 결혼에 골인한다. 그 후 젊은 남편은 승승장구해 검사, 국회의원, 도지사가 됐고 젊은 은행원 출신 처자도 여사님이 된다. 여기까진 좋다. 남편 이름은 당시엔 홍판표, 지금은 홍준표(61) 경남 도지사다. 부인은 이순삼(60) 씨다.




   홍준표 경남 도지사가 ‘성완종 리스트’와 관련, 총선 공천헌금 1억2천만원 출처를 “처의 비자금”이라고 발언해 파문이 일고 있다. 남편도 모르게 비자금을 만들어 줬으니 홍지사 장가 한 번 잘 간 것 같다. 전라북도 처자를 얻으려 노력한 그의 선견지명이 빛난다. 하지만 위기에 처를 들먹이고있으니 왕년 모래시계 검사의 기개는 오간 곳 없게 돼버렸다. /임용진(논설고문)








세월호는 누가 건지는가(새전북신문 칼럼 - 5월15일)










  세월호 얘기 또 하자. 지난달 정부의 세월호 인양 결정은 적절했다고 본다. 돈, 시간, 위험한 작업 등 이유로 반대 의견이 많았지만 “실종자 가족과 전문가의 의견과 국민 여론을 수렴해 세월호 선체 인양을 적극 검토하겠다”(4월6일)는 대통령 한 마디에 반대론은 쑥 들어갔다. “아이들은 가슴에 묻는 것”(국회의원 김진태), “세월호 너희 돈으로 건져라”(어버이연합회)던 막말 수준의 인양 반대론자들은 자라목이 돼 최고 권력자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뭔가 많이 찜찜하다. 왜 거금을 들여 그 배를 건져야 하냐는 불만도 분명 이유가 있다. 그 대변자들이 권력 앞에 ‘알아서’ 일시에 입을 다물었지만 앞으로 인양과정에서 크고 작은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것 봐라, 내 뭐라 했냐’는 식의 비아냥을 내놓을 게 충분히 예상된다. 무엇보다 먹고 살기 어려운 이 세상에서 민초들간에도 인양 합의가 충분치 않은 듯해 아쉽다. 그래서 꼭 건져야 하는 이유 두 가지만 말하겠다. 




   첫째, 개인 슬픔 치유다. 295명이 사망했고 9명이 실종됐다. 그 유족들 슬픔이 극점에서 하향곡선을 그리도록 하는 실질적, 제의적 조치로 인양이 필수적이다. 인양의 진행은 사회가 슬픔에 동참하는 과정이다. 인양을 계기로 유족 슬픔은 클라이막스에서 완화될 것이다. 특히 아직 시신이 발견되지 않은 9명의 유족들에게 인양은 절대적인 출구이다. 520명이 사망한 JAL 점보기 추락사고(1985년8월12일) 등 많은 대형참사를 기록한 ‘슬픔 전문가’ 노다 마사아키(71·일본) 씨에 따르면 “뜻밖의 재해로 소중한 이를 잃은 유족들의 심리는 ‘쇼크→부정→분노→우울→재사회화’의 경로를 밟는다“고 한다. 시신 발견은 이중 죽음을 ‘부정’하는 유족들에게 그 다음 단계로 이행토록하는 결정적인 포인트다. 부당한 죽음의 공간인 세월호 인양 역시 같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세월호가 저 어둠에 있는 한 우리 슬픔은 부정, 분노 단계에서 나아가지 못한다. 그것은 치유되지 않는 슬픔, 한, 거부, 자기 파괴이다. 세월호 유족의 자살충동률은 일반인보다 10배나 높다(55%, CBS 조사)고 한다. 유족 반 이상이 자살 충동을 느꼈거나 기도하고 있다. 세월호 희생자인 고 권순범(단원고 2학년6반) 군의 아버지 권상혁(58) 씨가 지난 8일 스스로 목을 맸다. 어버이날이었다. 




   둘째, 한국의 절망 치유를 위해 반드시 세월호를 건져야 한다. 이건 집단과 역사와 비전의 문제다. 역사적, 집단적 ‘부정의 단계’를 넘어서야 한다. 미국 뉴욕 ‘그라운드 제로’는 911테러 10주년인 2011년 9월11일 개장했다. 공식이름이 ‘국립911추모관’(The National September 11 Memorial)이다. 911테러로 2,843명이 사망했다. 그 미증유 비극의 현장에 사망자 모두의 이름을 동판에 새겨 영구보관하고 미국에서 가장 높은 1,776피트(541m) 104층 짜리 건물을 세웠다. 모든 것이 사라진 슬픔의 빈 자리에 지난날보다 높고 빛나는 기념물을 세운 건 ‘꺾어진 꿈’에 대한 반어다. 1,776피트는 미국 독립기념의 해(1776년)를 상징한다.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또 어떤가. 유대인 150만명을 학살한 인간 야수성을 증거하는 이곳은 197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이곳은 피해자인 유대인 뿐 아니라 가해자들도 단골로 찾아 숙연히 반성한다. 아우슈비츠에 수학여행 온 독일 초등 학생들의 심각한 표정을 보다가 뭔가 세상엔 희망이란 것도 있겠구나 하고 느낀 적 있다.




   개인적으로, 인양된 세월호는 탐욕과 무책임, 불성실의 기념관이 됐으면 한다. 배안에서 기다리라는 무책임한 안내방송을 듣고 질서정연히 따른 학생들, 위기 순간에도 급우 먼저 내보낸 뒤 그곳에 남은 아이들을 영원히 기억하는 곳이었으면 한다. 세월호 이후 수많은 국민이 느꼈던 절망감, 배신감을 치유하기 위해선 다시 거기서 눈물을 흘려야겠다. 슬픔도 종류가 있다. 지금 우리가 느끼는 슬픔은 치명적, 자멸적이고 건전치 못한 감정이다. 이를 딛기 위해선 손을 잡고 통곡할 세월호의 공간이 다시 필요하다. 무기력한 이 나라가 그때 한 번 아름답게 울기 위해 난 세월호를 건져 보관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해양수산부가 14일 오전 정부 세종청사에서 세월호 후속조치 추진본부 및 세월호 선체 인양 추진단 현판식을 가졌다니 이제 일이 본격화 됐다. 하지만 진짜 세월호는 대통령 지시나 해수부가 건지는 게 아니다. 빠뜨린 건 기득권이지만, 건지는 건 민초가 한다. 지겹다 말라. 세월호 얘기는 그들 울음이 다이아몬드 될 때까지 한다. /임용진(논설고문)








조희연(새전북신문, 5월21일)






   조희연(60) 서울시 교육감은 전북 사람이다. 정읍 출신이고 전주에서 풍남초등학교와 전주 북중학교를 나왔다. 중학 때 그의 집은 동문 사거리 근방이었다. 가냘픈 체구에 여성스런 외모, 목소리 톤 높은 모범생이었다. 당시 전주 북중은 고교평준화 정책으로 폐교가 예정된 명문이었다. 조 교육감은 그곳 수재들 속에서도 학급 1등을 거의 빼앗기지 않았다. 




   그의 집은 평범한 중산층, 아버지는 공무원이었다. 기독교를 열심히 믿었다. 개구쟁이들이 참기 힘든 점심 도시락 앞에서도 그가 식전 기도 빼먹는 걸 보지 못했다. 하지만 모범생 예수꾼 조희연도 노는 덴 열심이었다. 음악, 미술 쪽 재능은 생각나지 않으나 체육시간엔 발군이었다. 날래게 축구 잘했고 당시로선 논다는 중학생들이 다니는 탁구장 출입도 빈번했다. 넓이 1cm의 하얀 색 비닐 띠가 둘린 교모를 쓰고 얼굴 붉어질 때까지 힘껏 공을 받아치던 그의 스매싱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약골 조희연이지만 워낙 운동신경이 뛰어나 그를 이기는 이가 드물었다. 




   내가 아는 조희연의 면모는 두 가지다. 모범생과 투사. 얼핏 얍실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콧날과 턱선이 분명하다. 의지의 사나이다. 목소리가 높고 약간 떨리지만 음색은 청청하다. 힘 앞에 갈등할지언정 결국엔 양심과 소신을 굽히지 않아 1970년대 말 서울대 사회학과 재학시 제적돼 감옥에 갔다. 




   이 시대의 진보적 학자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에게 법원이 이달초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지난해 5월 보궐선거 중 상대 후보 고승덕 변호사에 관한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혐의다. 하지만 조 교육감은 인터넷에 이미 널리 퍼진 고 후보의 미국 영주권자 의혹을 해명하라고 요구했을 뿐이다. 당시 경찰도 무혐의,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경고로 끝낸 사안을 검찰이 시효 만료 하루 앞두고 기소했다. 세간의 지적대로 ‘훈방’으로 끝낼 사안에 ‘사형’을 선고하도록 국가권력이 부추긴 셈이니, 서울시 교육감 조희연 재판을 전북이 ‘서울 일’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임용진(논설고문)








경기전(온누리, 5월28일)










   경복궁은 조선 개국(1392년) 이태 뒤인 1394년 터를 다듬어 이듬해 390칸 대궐로 일차 완공한다. 이후에도 중건을 계속해 경회루 연못과 광화문 등으로 번듯해진 것은 1420년대 들어서이다. 




   창덕궁은 1405년 조성 시작해 1412년 정문인 돈화문이 건립됐고 창경궁은 1483년에사 완공됐다. 덕수궁은 그 한참 후인 조선중기 건물이다. 난데 없이 궁전 건립을 나열하는 것은 경기전이 1410년 완공됐기 때문이다. 순서로 경복궁, 창덕궁과 거의 비슷한데 이는 경기전이 그만큼 중요했단 얘기다. 함경도 시골 무장이던 이성계의 혈통이 실은 유서 깊은 고을에 뿌리를 두고 있단 걸 강조하기 위해 조선 초부터 경기전 건립을 서둘렀다. 경기전은 새 왕조 집단이 혈통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땅 위에 지은 ‘용비어천가’이다. 




   지난 1970년대 초까지 경기전엔 담이 없었다. 일제강점기 때 생긴 중앙초등학교가 경내 서쪽 반절을 쓰고 있었고 이태조 진영을 모신 본전도 관리부재로 누추했다. 그러다 담이 생기고 입장료도 소액과 무료를 오락가락하다 지난 2012년부터 1천원씩(어른)을 받고 있다. 지난 30년 새 중앙초등학교를 바깥으로 내보내고 전각 관리동, 창고, 조경묘, 사고(史庫) 등을 복원시켰으며 어진 박물관을 신설했다. 




경기전 입장료가 다음주 월요일(6월1일)부터 3천원으로 오른다. 규모가 비할 데 없이 좋아졌으니 3천원을 받아도 가치는 있다. 또 경복궁, 창덕궁(이상 3천원)은 물론 가까운 남원 광한루(2천5백원)와의 입장료 ‘품격’ 균형도 필요하다. 한옥마을 주말 인파는 3천원 아니라 그 이상을 내고라도 경기전에 줄을 설 것이다. 하지만 최근 콩나물국밥 값 등이 경쟁적으로 오른 후여서인지 뭔가 아쉽다. 하루 아침에 경기전 입장료가 세곱배기 되고 보니 한옥마을 관광 ‘대박’ 통에 지자체 인심마져 박해진 느낌이다. /임용진(논설고문)




온누리 - 메르스(새전북신문, 6월11일)


메르스는 중동호흡기 증후군이다. 하지만 그 이름을 무능력, 무책임 증후군으로 바꿔야 할까보다. 다음 사례를 보자.




  




  △ 문형표의 저주 : “메르스는 전염성이 낮다. 일반 국민들에게는 전파 가능성이 없다”(5월20일)고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말했다. 그러나 ‘사망 9명, 확진 108명, 격리 3천4백39명’이 현재(6월10일) 상황이다. 월드컵 우승국을 예언할 때마다 그 나라가 초반 탈락하는 이른바 ‘펠레의 저주’다. 




  △ ‘15명’ : 지난 1일 국무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우리나라에서) 지금까지 15명의 환자가 확인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때 이미 ‘18’명이었다. 




  △ ‘유체이탈’ : 박근혜 대통령이 “그동안 여러 문제점들에 대해, 또 국민 불안 속에서 어떻게 확실하게 대처 방안을 마련할지 이런 것을 정부가 밝혀야 한다고 생각한다”(6월3일)고 말했다. ‘정부’에서 대통령 자신이 빠지는  ‘유체이탈’식 화법으로 나머지 각료를 질타하자 보건복지부가 그 유명한 포스터를 대처방안으로 내놓는다. 




  △ ‘포스터’ : “낙타와의 밀접한 접촉을 피하세요.” “멸균되지 않은 낙타유 또는 익히지 않은 낙타고기 섭취를 피하세요.” 이같은 보건복지부 포스터에 누리꾼들은 다음 댓글을 달았다. 




  △ ‘퇴근 할 때 당분간 낙타는 타지 말아야겠다’ / ‘휴, 정부의 조치 아니었다면 낙타유를 마실 뻔 했지 뭐야?’ / ‘낙타고기 먹는 재미로 살던 한국인들 큰일 났네’ 등등 : 아이러니하게도 지난 3월 중동 순방시 두 차례 낙타고기를 시식했다고 자랑한 사람이 바로 박대통령이다.




  △ ‘동무들이 돌아옵네다’ : 뉴욕타임즈가 최근 만평(6월8일)에서 한국을 희화화했다. 김정은이 만면에 희색을 띈 가운데 몇몇 탈북인들이 메르스가 무서워 다시 북한으로 회귀하는 그림이었다. 그 순간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격’ 때문에 메르스 대응등급을 상향조정 못했다고 변명하고있었다. 




   메르스도 미구에 잦아들 것이다. 그러나 무능과 무책임의 역병은 치유 난망이어서 더 무섭다. / 임용진(논설고문)






임용진 칼럼 - 백릉 채만식(새전북신문 - 6월 12일)    “철없는 아저씨는 차라리 죽는 게 나아요.” (‘치숙’, 1938)    “이 태평천하에 그런 짓을 하다니, 쳐 죽일 놈. 죽일 놈.”(‘태평천하’, 1938)




  




   채만식(1902~1950) 소설의 명 대사들이다. 일본 강점기를 태평성대로 생각하는 ‘치숙’의 소년이나, 미래의 경찰서장 감인 손자가 동경(=토쿄) 유학 도중 사회주의 운동가로 체포됐다는 소식에 절망하는 ‘태평천하’의 윤직원 노인이나 모두 웃기는 인물이다. 소설 속에서 그들이 비웃는 대상이 사실은 정상이고 자신을 정상이라고 여기는 소설상 화자가 사실은 조롱받아 마땅하니 독자와 작가는 공모해 세상의 무지에 맘껏 검은 웃음을 보낸다. 칼날을 품은 웃음. 위선과 악덕을 찌르는 풍자는 채만식의 장기였다. 




   어제가 백릉 채만식 타계 65주기다. 그는 전북 군산에서 태어나 서울에 살다 익산에서 돌아간 전북인이다. 한국 리얼리즘 문학의 고봉인 그를 기려 군산시 내흥동에 채만식문학관이 있다. 우여곡절을 겪었으나 지난 2003년부터 채만식 문학상도 수상된다. 우여곡절이란 바로 그의 ‘친일’ 논란이다. 지난 2005년 ‘친일 청산을 위한 시민연대’는 백릉의 친일 이력을 문제삼아 문학상 중단을 촉구했다. 한 때 그쳤던 문학상이 작년부터 재개됐으나 ‘친일’은 여전히 채만식의 아킬레스 건이다. 과연 그 상처가 어디까지인가. 




   문학사가 임종국, 김윤식 등은 채만식이 친일단체(=조선문인보국회)에 가담했고, 친일문건(=연설문 등)이 있으며 친일작품(=‘여인전기’·1944)을 썼기 때문에 명백한 친일작가라고 한다. 이에 대해 최근 국문학자 최유찬, 방민호 등은 채만식이 암흑기 최고의 저항작가, 리얼리스트라고 재평가하고 있다. 논쟁은 논쟁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자신의 언설일 것이다. 




  




   “많은 수의 영리한 사람들이 저의 이익과 안전을 도모하기 위하여 진심으로 일본 사람을 따랐다. 역시 적지 아니한 수효의 사람이 핍박을 받을 용기가 없어 일본 사람에게 복종을 하였다. 복종이 싫고 용기가 있는 사람은 외국으로 달리어 민족해방의 투쟁을 하였다. 더 용맹한 사람들은 외국으로 망명도 않고 지하로 숨어 다니면서 꾸준히 투쟁을 하였다. 용맹하지도 못한 동시에 영리하지도 못한 나는 결국 본심도 아니면서 겉으로 복종이나 하는 용렬하고 나약한 지아비의 부류에 들고 만 것이었었다.”(‘민족의 죄인’·1948)




  




   ‘본심도 아니면서 겉으로 복종이나 하는’ 어정쩡한 협력이었다 하더라도 채만식은 자신에게 매질을 그치지 않았다. 




  




   “한번 살에 묻은 대일협력의 불결한 진흙은 나의 두 다리에 신겨진 불멸의 고무장화였다. 씻어도 깎아도 지워지지 않는, 영원한 '죄의 표식'이었다. 창녀가 가정으로 돌아왔다고 그의 생리(生理)가 숫처녀로 환원되어지는 법은 절대로 없듯이”(‘민족의 죄인’)




  




   채만식 인생과 문학의 엑기스는 바로 이같은 자성이다. 자신도 용서 않는 리얼리즘. 친일파 자손이자 일본육사를 졸업한 이종찬(1916~1983) 장군은 “일제에 부역한 게 부끄럽다“며 광복 후 창군에 합류하지 않았다. 이종찬만 참 군인이고, 채만식이 참 소설가 아닌 건 아닐 게다. 통영 청마문학관엔 아저씨 시인 유치환(1908~1967)과 젊은 처자 시인 이영도(1916~1976) 사이에 오간 수십 년 간의 연서가 전시돼있다. 사랑이건 불륜이건 있는 걸 고스란히 드러내는 게 인생이고 역사다. 채만식 문학이 저항과 현세적 굴종, 지적 고뇌, 반성, 후회를 민낯으로 보여준다면 채만식문학관도 그처럼 리얼리스틱 했으면 좋겠다. 




   현재 채만식문학관엔 친일 이력에 관한 도큐먼트나 전시물이 없다. 이게 내 불만이다. 정작 채만식이 이를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 대법관도 국무총리 후보도 ‘아 몰랑~’ 시침 뚝 떼고 벼슬만 바라기 때문에 이 시기 ‘자성의 기념물’은 더욱 절실하다. / 임용진(논설고문)








온누리 - 삼성(새전북신문, 6월18일)    한 기업이 청와대와 맞먹는 규모의 별도 기자단을 운영하고 매주 수요일 정례 기자회견을 여는 곳은? 한 기업의 일년 매출액이 대한민국 일년 예산(2015년 375조 4천억원)과 맞먹는 곳은? 삼성그룹이다. 




   삼성그룹으로부터 보도자료를 받는 국내 언론은 80군데 정도다. 이들은 2년 전 기자단을 결성했다.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경쟁에서 벗어나 원활한 취재한경을 만들기 위해서”다. “삼성그룹과의 건전한 파트너 쉽”을 만드는 것도 목적중 하나다. 이들은 매주 수요일 삼성그룹 사장단 회의 후 그룹 홍보팀장(부사장 급) 주재로 기자회견 또는 간담회를 갖는다. 삼성 그룹은 사장단 회의에서 걸러진 정보, 주제, 담화를 기자단을 통해 국민에 알린다. 온 나라를 강타하고있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에 대해 삼성은 ‘석고대죄’ 말고 할 게 없는 듯하다. 삼성그룹은 지난주 수요일 기자회견을 걸렀으며 어젠(17일) “고개를 못 들 정도로 부끄럽고 참담한 심정이고 깊이 반성하고 있다”, “국민 앞에 송구하기 그지 없다”고 밝혔다. 그 말 말고 할 게 뭐 있을까. 




   현재 메르스 확진자 중 네 명이 서울 삼성병원 의사다. 서울 삼성병원 응급실이 질병관리본부에 ‘메르스 의심’ 환자를 최초 보고한 게 지난달 17일이다. 여기까진 ‘최고의 삼성’답다. 다른 병원이라면 그런 병을 의심조차 안 했을지 모른다. 문제는 메르스 진원지 ‘삼성’을 정부가 감싼 데 있다. 지난 4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병원 이름을 직접 언급하기까지 ‘삼성’은 기피단어였다. 명분은 국민의 혼란방지였지만 혹시 ‘삼성의 혼란 방지’가 진짜 이유 아니었을까.




   메르스는 역병이되 사람이 그걸 키운 셈이다. 바로 정경유착, 신자유주의의 인재(人災)다. 세월호도 그렇고 메르스도 그렇다. 혹시 반성한다. 언론과 자본유착은 없는지. 그걸 삼성그룹 기자단이 ‘건전한 파트너 쉽’으로 오해한 것 아닐지. 딴은 이런 오해가 가난한 지방신문의 걱정거리는 아니다. 하지만 부끄럽다. / 임용진(논설고문)








온누리 - 조선일보(새전북신문,6월25일)










  조선공산당은 조선일보 기자들이 만들었다. 1925년 4월 경성부 황금정(서울 을지로 1가) 중국집 아서원에서 조선공산당 창립을 주도한 이가 바로 그 유명한 박헌영, 김단야, 임원근 3인방이다. 모두 당시 조선일보 기자다. 박헌영은 뒷날 북한 정권 수립 초기 부수상 겸 외무상을 지냈으나 간첩죄로 몰려 1956년 처형된다. 김단야는 러시아 망명 활동 중 반혁명 혐의로 소련 비밀경찰에게 체포돼 1938년 사형된다. 임원근은 북한 제1기 최고인민회의 의장인 허헌의 사위고 역시 북한 요직을 두루 거친 허정숙의 첫 남편이다. 




   이밖에도 조봉암, 김재봉, 홍남표, 홍덕유, 신일용 등 쟁쟁한 공산주의, 사회주의자들이 모두 동시대 조선일보에 몸 담았다. 1920년대 한국 공산주의 운동은 크게 세 갈래다. 소련 이르쿠츠크파를 잇는 ‘화요회’(박헌영)와 중국의 ‘상해파’(신일용), 일본 유학생 계열 ‘북풍회’(조봉암). 이 셋이 모두 조선일보에서 만난다. 




   6·25발발 65주년을 하루 앞둔 어제 서울 인사동 한 경매장에 손바닥만한 크기(27×19cm)의 조선일보 호외(1950년6월28일자) 한 장이 거액에 나왔다. 무려 1억원대다. 호외는 ‘인민군, 서울 입성- 미국대사관 등 완전해방’ 제하에 “28일 오전 3시 30분부터 조선 인민군은 제 105군 부대를 선두로 하여 서울시에 입성하여 공화국 수도인 서울을 해방시켰다”고 대서특필하고있다. 이어 “오래 갈망하여 맞이하던 조선인민군대를 서울시민들은 열열한 환호로서 환영하였다”고 적고 있다. 




   이에 대해 조선일보는 “우리가 발행한 것 아니다”고 손사래친다. 1970년대 이후 우익논객 선우휘, 김대중, 류근일, 조갑제 등과 함께 국내 최강 언론으로 군림하고있는 조선일보로서 1920년대 박헌영 등이나 1960년 그날의 호외가 달가울 리 없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도 좌익은 '주홍글씨'였다. 그는 한때 공산당에 가입했던 전력을 없애고자 친형의 절친인 북한밀사 황태성을 사형하고 이후 반공 철권으로 내달았다. 기회포착, 얼굴 바꾸기, 강한 현세 추수(追隨)의지 등 조선일보와 박 전대통령은 많이 닮았다. / 임용진(논설고문)








온누리 -  이한열(새전북신문, 7월9일자)






   어제 20대 청년 다섯 명에게 물었다. 




   “이한열을 아나?” “…” “박종철은?” “…” “그럼 이름 뒤에 ‘열사’를 붙이면 아시겠나?” “어디서 들은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오늘은 내 머리 속에 이한열만 맴돌고 있다. 오늘은 28년 전 서울 시청 앞에서 고 이한열(1966~1987)의 노제를 치른 바로 그날이다. 




   이한열은 전두환 군부에 맞선 1987년 6월항쟁 도중 최루탄을 맞고 사망(당시 연세대 경영학과 2학년)했다. 당시 데모 진압용 최루탄 SY44는 30도 각도로 위를 향해 발사하도록 돼있는데 어떤 전경이 이를 총처럼 조준해 이한열의 뒤통수를 직격했다. 이한열을 비롯한 시위대는 교문 안으로 후퇴하는 중이었다. 의식 잃고 쓰러진 이한열을 동급생 이종창(당시 연대 도서관학과 2학년)이 발견하고 부축했으나 그는 이미 동공이 풀렸고 코와 뒷머리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이 장면을 잡은 로이터 통신 기자 정태원의 사진 한 장이 신문 1면에 실려 6월 항쟁 도화선이 됐다. “한열이를 살려내라!”




   이한열이 의식을 잃은 게 6월9일, 그후 딱 스무날 만에 전두환 후계자 노태우는 이른바 ‘6·29 선언’을 발표해 시민에게 항복했다. 사경을 헤매던 이한열은 7월5일 사망한다. 그 나흘 후인 7월9일 초대형 영정을 앞세운 ‘민주국민장’ 장례식이 연세대 본관 → 신촌로터리 → 서울 시청 앞에서 치러진다. 목사 문익환이 서울 시청 광장에 운집한 100만 시민 앞에서 ‘이한열!’을 피 토하듯 부르던 게 눈에 선하다. 




   그러나 어즈버 태평연월. 김주열, 전태일, 박종철, 이한열을 아무리 초혼(招魂)해도 대한민국은 답이 없다. 박종철 고문 치사(1987년1월)를 알고도 은폐 축소했다는 혐의를 받은 당시 검사가 현직 대법관이고 대표적인 공안통 검사는 국무총리가 됐다. 세상도 역사도 한 판 춤. 누군 잊기 위해, 누군 기억하기 위해 춤 춘다고 한다. 우린 지금 무슨 춤을 추는지. / 임용진(논설고문)




온누리 - 막걸리(새전북신문, 7월16일자) 










  요즘 구물구물한 날씨, 오늘은 막걸리 타령이다. 




   인걸만 지령이 아니고 막걸리도 땅을 따른다. 와인처럼 막걸리도 숙성주라 기후, 물맛, 손맛 따라 느낌이 제각각이다. 




서울 ‘장수막걸리’는 꼭 서울내기들처럼 세련됐다. 전국 800개 양조장 주 유일하게 인공탄산을 첨가해 맑은 첫맛, 쌈빡한 끝맛이다. 적당히 묽은 농도에 우유처럼 희디 흰 장수막걸리 한 두 병 차고 북한산 정상에서 한 잔, 내려오다 기슭 주막에서 또 한 잔 하던 걸 잊지 못한다. 수많은 이가 서로 부딪히지 않기 위해서인지 대도시가 시골보다 규칙을 잘 지킨다. 장수 막걸리는 서울 사람들처럼 질서 순응, 규칙 준수형이다. 점도와 탁도, 신맛·쓴맛·단맛의 균형이란 점에서 장수막걸리는 가히 국가대표급 ‘범생이’다. 




   전주, 전북에도 막걸리 수 십 종이 있다. 장수 번암막걸리, 진안 냉천막걸리, 남원막걸리, 완주 천둥소리와 뿌리깊은 막걸리 등 금세 생각나는 것만 십여종인데 게중 유통 강자는 ‘전주막걸리’다. 전주 막걸리 통칭이 아니라 (주)전주주조가 생산하는 고유 브랜드인 ‘전주막걸리’는 일단 첫맛이 서울 것보다 묵직하다. 걸쭉하다. 탄산이 일체 없고, 김치로 치면 아주 미세하게 군둥내가 난다 할까? 그래서 서울 등 외지인에겐 대번에 호불호가 엇갈린다. 하지만 잔을 거듭하다보면 이내 ‘인’이 박혀 그 ‘개미’를 잊지 못한다. 뭐라 딱히 표현 못하나 시원하고 혀를 잡는 것을 전북인들이 “개미 있다” 할 때의 바로 그 표현 ‘개미’다. 전주막걸리는 전국 공장 막걸리 중 유일하게 천연 암반수를 사용한다. 




   인천 ‘소성주’, 부산 ‘생탁’도 명주다. 소성주는 넓은 포용력과 쏘는 듯한 청량감을 동시에 갖췄으며 생탁은 마시노라면 부산사투리가 입속에서 충돌한다. 이밖에 지하수로 빚은 여수 ‘개도막걸리’, 장수막걸리와 소성주 중간 쯤인 경기도 표준 맛 ‘지평막걸리’ 등 대한민국은 넓고 마실 건 많다. 이상 모두 공장 제조품이 이 정도니 송명섭 막걸리, 금정산성 막걸리 등 누룩으로 빚은 수제(手製)야 말해 무삼하리요. / 임용진(논설고문)




온누리 - '수목 막걸리'(새전북신문, 7월23일자)










  전주 막걸리 집 전성시대다. 평화동, 효자동, 우아동, 인후동, 서신동, 삼천동, 경원동 등 막걸리 타운에 전국에서 수많은 손님이 몰린다. 이들에게 매혹은 막걸리 맛보다 안주다. 푸짐한 안주, 싼 값을 내건 시내 유명 막걸리 집에 입장하겠노라고 주말 장사진이 늘어서는 건 이미 익숙한 풍경이다. 그러나 아득한 옛날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전주 막걸리 시대 첫 장은 불과 20년 전도 안 되는 1997년에 열렸다. 삼천동 ‘수목 막걸리’가 효시다. 




   ‘수목’은 원래 막걸리 집이 아니다. 전남 화순 출신의 여성 정선희(62) 씨가 1994년께 삼천동 골목에 ‘수목’을 열고 첨엔 약주 청주 등을 팔았다. 손맛 있고 질 좋은 안주를 내 값도 비교적 쌌다. 그러나 1997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사태로 나라가 거덜 나자 서민술인 막걸리로 주종을 바꿨다. 하지만 내는 안주는 그대로여서 “값싸고 안주 끝내주는 집”으로 금세 소문 났다. 전주 식 표현으로 술꾼을 ‘똥꾼’이라 한다. 전주 최강 ‘똥꾼’인 양동주, 김덕중(60) 씨 등이 당시 팔팔하던 40대 초반 주력(酒力)으로 ‘수목’에 출퇴근 하며 주위를 끌어들여 이곳은 곧 명소가 됐다. 




   정선희 씨는 친절하기보다는 막걸리 집 주인답게 걸걸하고 의리파다. 혼자 하는 가게고 고객이 몰리다보니 한시 바삐 술이 고픈 단골들은 제집마냥 걸레 들고 술상을 치워야 했다. 양동주 씨가 말했다. “사람 하나 쓰지 그러냐”. 정선희 씨가 답했다. “그 돈(=인건비)으로 손님 안주 한 상 더 내겄다.” 




   ‘수목’의 철학은 최고급 재료와 즉석에서 만든 신선 안주였다. 미리 만든 안주를 밖에서 공급받아 너줄하게 늘어놓는 요즘 막걸리 집과는 차원이 다르다. 정선희 씨는 2000년대 중반 ‘번암 막걸리’를 경영했고 약간 공백을 거쳐 지난해 9월1일 ‘수목’을 다시 열었다. ‘수목’의 후예가 요즘 천하제일인 삼천동 ‘용진집’이다. 




  삼천동이건 서신동에서건 요즘 전주 ‘똥꾼’들은 찾을 수 없다. 대신 관광객들로 떠들썩하다. 족히 수백 곳은 넘을 지금 전주막걸리 집 봇물은 한 세대 전 ‘수목’에서 터뜨렸다. / 임용진(논설고문)










온누리 - '똥꾼'(새전북신문, 7월30일자)


  오늘은 아침부터 죄송하지만 똥타령이다.




지난번 막걸리 타령에서 ‘똥꾼’이란 말을 썼더니 ‘신문지상에 넘새스럽다’, ‘술꾼 놔두고 그게 뭐냐’는 불만이 들린다. 하지만 어쩌랴. 똥꾼이란 전주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쓰는 말인 것을. 분명 고상한 표현은 아니다. 싸구려 술집 골목에서 도는 상말이다. 




   소설가 이병천은 “ ‘똥꾼’엔 말 맛이 없다”고 질색한다. 하지만 똥을 좋아한 작가도 많다. 대표적인 분이 연암 박지원(1737~1805)이다. 그는 ‘열하일기’ 중 ‘일신수필’에서 “중국에서 가장 볼 만한 게 흙덩어리과 똥무더기”라고 말했다. 이때 똥은 쓰임을 날카롭게(= 이용·利用) 하는 문명의 상징이다. 또 소설 ‘예덕선생전’에선 동네 똥장수인 엄행수를 “군자답다”고 극찬한다. 엄행수는 아침이면 삼태기로 똥을 퍼나르는데 거기엔 말똥, 쇠똥, 입회령(돼지똥), 좌반룡(사람똥), 완월사(닭똥), 백정향(닭똥) 따위가 가득하다. 소설 ‘호질’에서도 위선자인 북곽선생이 호랑이 꾸짖음에 놀라 빠지는 데가 똥거름통이다. 연암의 글엔 온통 똥 향기가 그득하다.




   연암 등에게 똥은 메타포지만 아무 사심 편견 없는 어린이들에게 똥은 그 자체로 재미다. 그 이상 재미있는 말이 없어 이제 갓 말 배우는 아이들도 ‘똥!’이라고만 하면 자지러진다. 동화책, 그림책 이름도 그래서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베르터 홀츠바르크), ‘강아지똥’(권정생) 등 똥이 많이 들어간다. 애기똥풀이란 야생화는 ‘아기’ + ‘똥’이 결합된 가장 아름다운 작명 중 하나다. 똥으로 사람 재밌게 하는 건 담시 ‘똥바다’(김지하) 만한 게 없을 것이다. 임진택이 판소리로 만들었고 후에 무개념 ‘일베’(=일간베스트)족을 풍자한 ‘인터넷 똥바다’로도 진화한 이 담시엔 똥이란 말이 족히 천번은 나온다.




   나는 아무래도 철 없는 쪽에 가까운가 보다. 이병천 지적대로 ‘똥꾼’이란 표현에 말 맛 적은 건 알겠으나 그래도 갈수록 거부감이 없어진다. 막걸리를 ‘똥이 가게’ 마시는 전주 서민 ‘똥꾼’들과 어울릴 때 가장 즐겁다. 와인, 양주와 ‘똥’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 또한 맘에 든다. / 임용진(논설고문)




임용진 칼럼 - '게하'에서(새전북신문 8월7일자)    닷새 후가 말복(12일)이다. 청년 실업자수는 115만명, 가계부채 총액은 1천 100조원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모처럼 국민담화를 해 집권 후반기 구상을 밝혔다. 요점은 노동시장개혁을 통해 청년실업을 줄여야 한다는 것인데 임금 등에서 기성세대 양보를 강조했으니 이젠 창조경제가 아니라 ‘양보경제’ 시대인가 보다. 고용절벽이란 말을 써야할 정도로 절박한 건 공감하지만 앞으로 제 몫을 나눠야 할 기성세대에겐 연일 계속되는 폭염경보보다 대통령 말씀이 더 더위 나게 생겼으니 오늘은 객담이나 할까보다. 게하 이야기다. 




   게하란 게스트하우스 준말이다. 고속버스터미널을 고터라 하는 것처럼 젊은이들은 뭐든지 줄인다. 호구지책으로 게하를 한 지 2년째다. 매일 대하는 게 젊은이들이어서 온통 새 세상이다. 그간 실감한 걸 두서 없이 적으면 이렇다. 




  




  ● 여자와 남자는 얼마나 다른가.




   여성은 계획을 세우고 또 세우고 변경하고 가다듬는다. 한 두 달 전에 예약했다 입실 며칠전에 일정을 바꾸는 경우가 많다. 남성은 이에 비해 아무 생각이 없다. 성수기 방이 꽉 찼을 때 땀 흘리며 무거운 짐 메고 예약도 없이 불쑥 들어와 제 것 달라는 투로 “방 없어요?” 묻는다. “없어요”라고 하면, “알았어요”. 두 말 없이 나가 그들은 찜질방으로 직행한다. 




   여성은 양파처럼 겹겹이다. 퇴실 후 여성실엔 일반적으로 남성실보다 남긴 것, 떨어뜨린 것이 많아 개업초 ‘여성이 깨끗하다’고만 믿던 나를 당황케 했다. 게하에선 그날 만난 생면부지 젊은이들끼리 밤늦게 술파티를 벌이기도 하는데 여성은 남성과 같이 있을 때보다 동성끼리만 있을 때 훨씬 더 크게 깔깔 거리고 술도 엄청 마신다. 남성은 남들 다 가는 주말에 여행 떠나지만 여성은 싸고 한적한 주초를 선호한다. 그래서 월요일엔 여성 게스트가 남성보다 많다. 난 딸을 키웠지만 그저 건성이었을 뿐 여성의 ‘화장발’이 변장 수준인 줄은 몰랐다. 낮에 입실할 때와 저녁 취침 무렵, 다음날 얼굴 가다듬고 퇴실할 때가 그때그때 달라서 같은 이에게 “누구…” 하고 실수한 적도 있다. 이런 작은 것도 모르고 오십 구년을 지낸 나는 얼마나 인간에 무지했나 속으로 웃는다. 물론 모든 남녀가 다 그렇다는 건 아니니 오해 없으시길. 








  ● 내 친구는 어디까지인가.




   군대건 회사건 성인 사회는 보통 수직구조다. 지시, 이행의 계서적 관계에서 나도 수십년을 살았다. 이에 비해 게스트하우스는 완전 수평사회다. 입실하는 게스트의 연령, 출신, 나라가 제각각이지만 ‘여행’ 하나로 그들은 오픈된다. ‘여행객’ 하나로 그들은 수평이다. 호스트(=쥔장)인 나도 수십년 아래 젊은이들과 점점 친구가 되어가고 있다. 첨엔 날 부르는 게스트들의 ‘아저씨’ 호칭이 어색했으나 요샌 속으로 ‘할아버지라고만 하지 말아다오’ 주문한다. 




이십대 초반 멋을 낸 여성 게스트가 현관을 들어서자 마자 묻는다. “오늘 남성 게스트 많아요?” “별로 없는데, 난 어때요?” “제 스타일 아니에요” 우리는 깔깔거리며 웃는다. 




   게하를 하다보면 ‘이게 인생’이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인생 별 거 아니다. 사람 만나는 거고 사람 헤어지는 거다, 하고 생각한다. 인연이라 할 수도 있는데 그들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미쳐선 내가 임마누엘 칸트 만큼 고상하진 않지만 적어도 ‘수단’으로 만나진 말아야지 경계한다. 언젠가 스님 도법이 그랬다. “차이점 말고 공통점을 찾아라”고. 각지에서 와 진지하게 인생, 장래에 관해 이야기하는 젊은 게스트들은 어린 나이에도 공통점을 찾으려고 대견하게 노력한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페이스 북에서 이런 글을 공유했다고 한다. 




   “우리는 지구라고 하는 멋진 펜션에 잠시 왔다 가는 여행객들입니다. 적어도 지구를 우리가 만들지 않았고 … 다들 일정 기간 후에 떠나는 것을 보면 이곳에 여행 온 것이 맞는 듯합니다. 단지 여행의 기간이 3박4일이 아닌 70, 80년 정도일 뿐인데 우리는 여행 온 것을 잊을 때가 많습니다.…여행을 소중히 여겨주세요. 나에게도 딱 한번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도 딱 한 번 있는 여행이니까요.” 반기문 총장이 유엔이란 펜션(=게스트하우스) 주인이라면 박근혜 대통령은 대한민국 펜션의 주인이다. 제발 여행자의 철학이여, 저들을 교화시킬진저. 소소(笑笑). / 임용진(논설고문)








온누리 - 막걸리 전사(前史) (새전북신문, 8월6일자)    오늘날 전주는 대한민국 막걸리 수도라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전국 막걸리가 수백 종이나 되지만 전주처럼 막걸리 타운이 여럿 생기고 본토박이들의 사랑이 지극한 곳은 없다. 전주 막걸리 맛에 대해선 호불호가 엇갈리나 그 애주열기에 관한 한 논자들 간에 이견(異見)이 별로 없다. 인구대비 막걸리 집 숫자로 전주가 단연 전국 최다일 것이다. 




   1970년대 초 막걸리 집은 선술집 형태였다. 요즘처럼 상과 의자를 갖춘 펍 스타일이 아니라 주모와 고객 사이에 너비 두 자(60cm) 안팎의 긴 시멘트 대를 놓고 그 앞에 술꾼들이 일렬 횡대로 서서 마시는 그야말로 ‘선 술’ 집이다. 전주시내 주객 양동주(60) 씨에 따르면 “1970년대초 현 남부시장 앞 동양당약방 사거리에서 교동 옛 건강탕 사거리까지 170m 거리에 선술집이 12개나 됐다” 할 정도로 서민의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1970년대 중반부터 막걸리는 ‘조국 근대화’와 급속히 자취를 감춘다. 그나마 가장 늦게까지 버틴 건 구 도청 맞은 편 팔달로변에 있던 ‘정화집’이다. 생존 전략인지 또는 지난날 주막 전통인지 ‘정화집’에선 주인에 고용된 월급쟁이 색시 몇 명이 술시중을 들었다. 당시 한 되 값이 150원. 지금의 1.8L(막걸리 세 병) 짜리보다 작은 1.2L 정도 주전자 하나와 안주 여남은 가지가 나왔다. 하지만 정화집도 1979년 겨울께 문을 닫고 이후엔 약주시대다.




  중앙시장 옛 소방서 자리 ‘설화집’, 한국은행 사거리 골목 ‘버들집’, 대성동 옛 자동차운전면허시험장 부근 ‘하동집’ 등이 잘 나가던 약주집이다. 약주 한 되에 300원. 먹을 만한 안주에 역시 술시중 색씨가 가끔 동석했다. 약주집에 이어 스탠드 바, 오픈식 노래주점 등이 인기를 끌면서 막걸리는 아주 잊혀진 듯 했다. 삼겹살, 등심 등 호황기 고기 안주에도 맞지 않았다. 하지만 1990년대 말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가 뜻 밖에 막걸리 중흥 계기가 됐다. 어려운 시기 서민들은 값싼 막걸리를 벌컥벌컥 들이켰고 1997년 개업한 삼천동 ‘수목’이 거기 불을 댕겼다. 지금은 권토중래한 막걸리집들이 전주 대표 브랜드가 됐다. / 임용진(논설고문)








온누리 - 가맥(새전북신문,8월13일자)    지난 주말 화제는 가맥축제였다. 경원동 한국전통문화전당서 이틀간 열린 이 축제에 총 1만여명이 몰렸다. 애초 조직위원회 예상으로 하루 1천명 씩, 이틀간 2천명 들겠거니 예상했는데 이를 다섯배나 넘겼으니 문자 그대로 ‘대박’이다. 참가자들이 안주 사려고 한 시간씩 장사진을 쳤다. 그들은 의자가 모자라 행사장 잔디밭에 주저앉아 남녀노소 모르는 이끼리 서로 잔을 건넸다. 모처럼 한여름밤 시원하게 시끄러웠다. 




   애초 작당은 술꾼 서넛이 했다. 천상묵(호남한의원장), 소야(스님·동화작가), 임동식(하이트맥주 차장), 김정두(경제살리기도민회의 팀장) 등은 자주 잔을 맞대면서 전주 가맥을 지역명물화 하자는데 평소 의견일치를 본 사이. 경원동 영동가맥을 비롯한 업주들도 취지에 절대 찬성했다. 이들은 나이로 가장 연장이고 신망이 두터운 김영배(63·전 민족예술총연합회 이사장)에게 조직위원장을 맡으라 부탁했다. 김영배는 다음 셋을 조건으로 허락했다. 




   “첫째, 관 지원 안 받는다. 둘째, 가맥업소들이 물리적 위치나 행사내용에서 중앙에 위치해야 한다. 셋째, 정치인 등의 ‘갑질’ 간섭을 불허한다.”




   행사는 그대로 됐다. 전주시는 장소제공 등 행정지원만 했다. 한국관광공사가 3천만원 지원 조건으로 이것저것 요구했으나 조직위원회는 거절했다. 행사에 참여한 가맥업체 12개 부스마다 긴 줄이 늘어서 그들은 싱글벙글했다. 술자리에 밥맛 떨어진다는 이른바 3대 기피 직종, 정치인·공무원·기자도 눈에 띄었으나 어디까지나 그들은 명찰을 뗀 술꾼으로서 즐거워했다. 




   지난해 동학 120주년 모악대동제도 관 지원을 일체 피하고 민간주도로 이뤄져 호평받았다. 전주 사람들은 참 깐깐하다. 없는 도시, 가난한 곳이지만 남의돈 받을 데와 안 받을 데를 가린다. 올해 첫 가맥축제가 성공함에 따라 내년엔 더 확대될 것이다. 현재 유명한 대구치맥페스티벌, 인천송도비어페스티벌, 해운대송도맥주축제 등이 전주를 부러워 할 날이 곧 올 것이다. / 임용진(논설고문) 








온누리 - 백정기(새전북신문, 8월20일)










"나의 구국 일념 은 첫째, 강도 일제(日帝)로부터 주권과 독립을 쟁취함이요. 둘째는 전세계 독재자를 타도하여 자유․평화 위에 세계 일가(一家)의 인류공존을 이룩함이니 왜적 거두의 몰살은 나에게 맡겨 주시오.” 




   1933년 3월, 중국의 조선인 아나키스트 거물 백정기(1896~1934)는 주중 일본대사 아리요시 아키라를 암살키로 하고 동료들에게 이렇게 선서했다. 결행일은 3월17일, 장소는 상해 홍커우의 일본 요정 육삼정이다. 아리요시와 국민당 내 친일 중국 정객이 회동하는 것을 틈타 육삼정에서 그들을 몰살할 계획이었다. 




  백정기는 동지인 이강훈, 원심창과 육삼정에서 200m 떨어진 음식점 송강춘 2층에서 대기했다. 무기는 바로 전 해(1932년) 윤봉길이 홍커우 공원에서 사용한 것과 같은 대형폭탄. 윤봉길 의거 후 임시정부 주석 김구가 상해를 벗어나면서 오면직에게 맡긴 폭탄 2개를 그대로 쓰기로 했으며 이밖에 교전에 대비, 권총 2자루와 탄환 20발, 수류탄 1개를 더 준비했다. 백정기와 이강훈은 아리요시 등이 보이면 2층에서 던져 적중시킬 참이었다. 하지만 적의 출현만 초조히 기다리던 그들에게 일경이 들이닥쳐 모두 체포당하고 말았다. 아나키스트 중 밀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배신자가 누군진 물론 아직까지 자세치 않다. 




   영화 ‘암살’이 인기다. 일본군 사령관과 민족반역자 암살기도, 밀정의 등장, 실패 및 반전 등 재미도 있지만 관람 중 백정기 의사가 떠올랐다. 그는 재판에서 무기징역 받고 1934년 6월 5일 옥중 순국했다. 그는 재판장을 향해 “총살하든 교살하든 그것은 너희들 자유다. 정당한 행동을 하다 죽는 것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일갈했다. 서울 효창공원 삼의사(상해의거 윤봉길, 동경의거 이봉창, 육삼정의거 백정기)묘역에 안장됐으며 정읍군 영원면에 백정기의사기념관이 있다. “조국이 독립되면 내 무덤에 꽃 한 송이만 꽃아 주기 바란다”. 백정기의 유언이다. 그는 전북 부안군 동진면 하장리(현재 부안읍 신운리) 사람이다. / 임용진(논설고문)






온누리 - '잊지 않는다'(새전북신문, 8월27일)










  전주는 안 잊는 도시다. 전주에 오는 관광객들은 한옥마을을 걷고 연꽃향기에도 취하지만 시내에 널린 노란 세월호 현수막에 놀란다. 팔달로를 비롯해 기린로, 백제로 등 간선 도로 양쪽에 매달린 노란 개인 현수막 1천7백여개가 일년 오개월째 안타깝게 휘날리고 있다. 50cm × 120cm 정도 되는 길다란 노란 천에 시민들이 저마다 사연과 염원을 썼다. 오늘 아침 본 것 중 하나엔 ‘사람아, 아 사람아!’(채니, 주니)라고 써 있었다. 짧지만 금새 가슴이 먹먹해진다. 아, 사람아. 내 전주 사람들이여!




   세월호 현수막 덕에 전주는 충경로 은행나무 샛노란 가을 뿐 아니라 사철 황금 물결이다. 가슴이 너무 아프지만, 그래도 ‘하트 오브 골드’(황금마음)가 여기 있다. 전주에 온 외지인들이 말한다. “아니, 여긴 아직도 세월호가 있네!” 어떤 이는 움찔 깨닫고 어떤 이는 반대로 불편한 기색이다. 하지만 당신들 반응과 상관없이 전주는 계속 할 것이다. 잊지 않을 것이다. 




   한옥마을 건너편 풍남문 광장은 비운의 도시 안산과 함께 전국 세월호 추념의 중심이다. 세월호참사전북대책위원회 천막이 사건 발생 후 죽 열려있고 그 주변 매달린 수많은 노란 리본은 그들이 떠났던 봄날 개나리 울타리처럼 출렁댄다. 한 시민이 기증한 세월호 주목 나무가 있고 그 아래 최근 조촐한 세월호 농성 표지석도 만들었다. “잊지 않고 행동하겠습니다.” 이렇게 쓰여있다. 




   전주시도 대단하다. 비판의 현장인 개인 현수막, 천막 등 설치물에 대해 한 번도 ‘철거하라’는 등 시비를 걸지 않았다. 천막 옆에 지난달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평화의 소녀상’이 제막됐고 시간을 거스르자면 121년 전 전봉준 등 동학군도 바로 여길 통해 혁명수도에 입성했을 것이다. 전주가 그런 곳이다. 




   대책위는 풍남문 광장에서 개인 현수막 신청을 계속 받고 있다. 값을 물으니 한 장에 육천원이란다. 뭘 쓸까, 문구를 고심해 나도 하나 신청해야겠다. 내 염원도 천개의 바람으로 그들 심연에 닿길. / 임용진(논설고문)






온누리 - 팽목(새전북신문, 9월3일자)










  지난 8월29일 팽목항에 당일치기로 다녀왔다. ‘가야지, 가야지’ 진즉부터 맘만 먹다 마침 세월호 침몰 500일이란 계기도 있어서 몇 달 전 고등학교 영어 교사를 명예퇴직한 친구와 함께 오전 10시 10분 승용차로 출발했다. 전자지도에 ‘팽목항’을 입력하니 자동적으로 ‘진도항’으로 바뀐다. ‘아하, 지난날 이리시(현재 익산시)처럼 사고 후 이름을 바꿨구나.’ 거리는 230km. 전주서 서울 가는 정도다. 




   무안, 함평 거쳐 진도대교를 지나니 12시 40분, 팽목까진 약 30분이 더 걸렸다. 진도 대교 위에서만 봐도 벌써 물살이 하얗게 빠르다. 팽목에 도착하니 승용차들이 많다. 마침 주말이어서 인근 관매도, 조도 가려는 관광객과 세월호 추모객이 뒤섞였다. 바다가 보이고 자갈밭에 분향소가 있고 조금 더 가면 길이 50m 쯤 되는 방파제가 있다. 그것 뿐이다. 푸른 바다, 눈부신 햇살, 빨간색 등대와 정적이 전부다. 다 멈추고 조용한 가운데 방파제 난간에 달린 수많은 노란 리본만 바람에 요란하다. 이것이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세월호가 침몰한 곳은 여기서 30km나 떨어진 먼 바다니 보이는 건 다도해 섬 뿐이다. 유족들이 얼마나 애를 태웠을까. 




   등대 아래 빨간색 하늘나라 우체통 하나가 있다. 내 친구가 거기 편지를 써 넣는다. 나도 써 넣었다. ‘사랑한다, 그대들. 내 아들 딸만큼. 산 자들도 슬프다. 부끄러움은 이제 접자. 앞으로 할 일이 생겼다. 잊지 않으려 애쓸 것. 내가 인간임을 자각케 해준 너희들을 항상 사랑한다. 세월호 500일, 한 애비가’




   분향소에서 한 유족을 만났다. 단원고 재학중이던 아들 사진이 거기 있는 분이다. “진실요? 우리 생전엔 아무 것도 못 밝히고 아무 것도 바꿀 수 없을 겁니다. 저 사람들이 얼마나 강한데요.” 담담한 그 목소리가 절규하듯 들렸다. 전주에 돌아오니 나보다 먼저 팽목에 다녀온 다른 친구가 묻는다. “아무 것도 없지?” 나는 속으로 답한다. ‘아무 것도 없음이 있데’. 




   사람은 누구나 제 삶의 순례자지만, 많은 이들에게 팽목은 인생 순례의 정점일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 임용진(논설고문)






온누리 - 난민(새전북신문, 9월10일자)








  그 사진을 보셨을 거다. 




   그 꼬마는 빨간색 셔츠, 파란색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시리아 북부 코바니 출신의 3살 남아 에이란 쿠르디는 부모, 형과 함께 시리아 내전을 피해 배 타고 지중해를 건너다 파도에 휩쓸려 익사했다. 쿠르디 시신은 지난 2일 터키 해변에서 발견됐다. 바닷물에 시달렸음에도 작은 두 발은 운동화를 꼬옥 신고 있었다. 사고 현장에선 가장 먼저 주인 잃은 운동화가 눈에 띄는데 쿠르디는 생전 모습 그대로, 옷차림 그대로여서 더 가슴 아팠다. 죽음의 바다를 건너고 나서야 추위와 공포를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가슴 아픈가. 더구나 세 살 어린 것이. 




   백사장에 엎드려 자는 듯한 쿠르디의 얼굴과 머릿카락을 파도가 쉴 새 없이 어루만지고 있었다. 아직도 우윳살이 남은 두 손바닥은 하늘을 향해 반쯤 펴져 있었다. 지난날 가끔 취재 현장에선 ‘사진기자가 될 걸’ 하고 느낄 때가 있었다. 사진은 백 마디 말보다, 어떤 명문보다 훨씬 직정적(直情的)이다. 수사나 거짓이 없고 빛처럼 빠르다. 




   쿠르디의 사진은 전 세계를 각성시켰다. 시리아 내전에 관한 관심을 환기했다. 독일, 프랑스는 즉각 2만~3만명 씩 시리아 난민 입국을 더 허용했다. 쿠르디 죽음을 계기로 수 만 명에 이르는 시리아 어린이들에게 물과 음식, 주거 등 그나마 안정된 환경이 약속됐다. 




   국제난민의정서, 세계난민기구 등 법적인 장치가 있지만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외국인에 대한 난민지위 인정을 꺼린다. 경제적, 사회적 부담이 큰 까닭이다. 하지만 즉각 시리아 난민 입국을 발표한 독일, 프랑스에서 보듯 주권국의 의지가 결국 문제다. 어떤 인도적 사태에 대해 정부는 결정하고 국민은 성숙한 자세로 이를 지지하는 게 선진국이다. 한국은 어쩐지 모르겠다. 제 나라 청소년 100여명을 수장하고도 정부는 미적거리고 국민은 무관심해 자국내에서 자발적 난민계층이 생겨도 가슴 아픈 줄 모르는 희한한 나라는 아닌지. / 임용진(논설고문)








 온누리 - 수학여행(새전북신문 9월17일자)










    지난 1960년대 후반 육지 출신 김선생이 군산 선유도 국민학교(=초등학교) 교사로 부임한다. 그는 섬 어린이들이 자동차는 고사하고 자전거마져 구경한 일이 없음을 알고 안타깝게 여겨 서울 수학여행을 계획한다. 그러나 반대가 심하다. 어떤 부모는 집안 일손이 딸리니 학교가 돈 내고 어린이들을 데려가라고 한다. 하지만 방과 후 갯지렁이를 잡아 여비를 마련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서울 수학여행을 성사시킨 선유도 어린이들. 수학여행 마지막 날 김선생 친구 등이 마련한 리어카를 선물로 받으며 그들은 “내 고장을 꼭 잘 사는 곳으로 만들겠다” 다짐한다. 




     이는 영화 ‘수학여행’(1969·감독 유현목)의 줄거리다. 당시 한국일보에 실린 실화를 바탕으로 했으며 김선생 역을 고(故) 구봉서가 맡았다. 당시 난 국민학교 졸업반이었다. 팔달로 변 지금은 없어진 옛 아카데미 극장에서 단체관람 하며 동시대, 동년배의 현실에 어린 눈물을 적신 기억이 있다. 




    요즘 수학여행은 판이하다. 며칠 전 국회에 제출된 교육부자료에 따르면 대전 동신과학고가 학생 한 명당 306만원을 내고 뉴욕 등을 다녀와 전국 고교 수학여행비 최고액을 기록했다. 충북과학고( 302만원·미국), 한국민족사관고(297만원·영국), 인천진산과학고(288만원·미국), 부산과학고 (282만원·미국) 등이 비싸기 ‘베스트5’에 들었고 돈 문제에선 항상 등외인 전북이 여기서만은 웬일인지 ‘10위’(전북과학고, 126만원·일본), ‘11위’(전북외고, 125만원·싱가포르) 했다. 




    반면, 연천의 한 야영장에서 숙박을 해결한 경기 용인고(2만5천원)나 지역간 이해를 위해 전라도를 다녀온 경남 의령여고(12만원) 등도 있다. 도내 무주 푸른꿈고(9만원)도 임실·곡성·구례를 돌았다. 그러고 보니 수학여행비 비싼 곳은 모두 자사고, 특목고이고 싼 곳은 일반고, 대안학교이다. 그들이 왜 비싼 돈 들여 외국만 가려는지 모르겠다. 예컨대, 문화상품 천지인 진도를 돌면서 동시대에 스러진 세월호 동급생의 꿈을 팽목에서 추모한다면 그건 ‘위험한’ 수학여행인가? / 임용진(논설고문)






온누리 - 추석 잡화(雜話) (새전북신문, 9월24일자)










   이번 주말이 추석연휴다. 신소리나 한 번 하자. 




   명절 땐 맛으로도 귀향한다. 타지 사는 전주 출신들에겐 풍년제과 땅콩센베이, 일품향 군만두, 백일홍 찐빵, 홍콩반점 짜장, 콩나물국밥, 막걸리, 비빔밥 등이 대표적인 고향 맛이다. 대부분이 반세기 이상 문을 열어놓고 있지만 몇 달 전 중앙동 홍콩반점이 폐점했다. 햇볕 따뜻한 이층 창가에서 후루룩 후루룩 하던 그 구수한 연갈색 짜장면 맛을 이젠 더 이상 볼 수 없다. 




   없어진 게 또 있다. 고스톱 풍정이다. 명절이면 부모 친척 형제 친구끼리 방석 깔고 앉아 안방 건넌방서 마주치던 화투장 소리가 안 들린 지 꽤 오래다. 고스톱을 일본이 한국사람 심성 망가뜨리기 위해 보급했다는 음모론부터 한때 너무 성행했던 나머지 고스톱 망국론까지 나와 두들겨 맞았으니 그 놀이가 잦아들지 않았다면 오히려 이상하다. 




   하지만 나는 고스톱 옹호론자다. 술을 손위 사람한테 배우듯 고스톱도 그렇게 배우면 된다고 생각한다. 영국 사람들이 식탁에서 브릿지 하듯, 미국 가정이 프로 스포츠 중계로 소통하듯 우리도 명절에 윷놀이, 고스톱 핑계로 이야기 꽃 좀 피우면 안 될 게 뭔가. 고스톱은 남 탓 하는 책임전가가 단점이라고 한다. 하지만 서로 핀잔 주고 얼굴 벌개지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나누면서 즐길 수 있는 게 고스톱의 덕이다. 치다 화내고 후회하면서 인간수양도 된다. 




   연휴기간 중 뉴스로는 프란치스코 교황 미국방문을 전하는 외신이 좀 참신하다. 게스트하우스에 살며 소형차 애용하는 이 서민 교황이 미국 고질인 빈민, 이민 문제에 어떤 언급을 할까,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를 비롯한 공화당 우파는 또 어떤 반응을 보일까. 




   명절은 생활 전선 속 짧은 휴전(休戰)이다. 추석 덕담이랍시고 상투구에 불과한 단체 인사문자를 내 전화기 속에 마구 난입시키는 건 이 휴전 협정 위반이다. 자제해 주시기 바란다. / 임용진(논설고문)






임용진 칼럼 - 어른들의 대한민국(새전북신문, 9월25일자)










   나는 평상시 윗옷 깃에 꽂는 노란색 세월호 작은 리본을 결혼식 등 남의 경사에선 가끔 뗀다. 보는 이가 어찌 받아들일까, 눈치를 보아서인데 또 떼면서도 내가 이걸 떼야 하나 망설이고 자신을 못마땅해 한다. 




   추석도 마찬가지다. 명절에 하필 세월호 얘기람. 하지만 꼭 해야겠다. 기만적인 무관심이 도를 지나친 듯하기 때문이다. 중앙일간지, 공중파 TV 등은 물론이려니와 ‘여당 대표 사위 마약 투약’ 등을 하루 내내 ‘하하’ 대며 곱씹는 종편 유선방송에 이르러선 할 말이 없다. 최근 묻혀 버린 세월호 이슈는 이렇다. 




   ▲ 세월호 특조위 활동 시작 / 예산 제로, ‘낙하산’ 직원 등 때문에 출범 후 반년간 유명무실 고사당할 뻔했던 특조위(정식명칭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뒤늦게 살아나긴 했다. 특조위 고위직(=행정지원실장), 실무직(=조사1과장)을 정부 파견 관리로 충원하는 절충안을 특조위원들이 받아들였고 예산도 당초 신청한 160억원에서 45%가 깎였으나 89억원이 배정됐다. 특조위는 지난 14일부터 앞으로 6개월간 피해자 대상 진상규명 조사신청을 받는다. 수사권, 기소권 없는 독립조사권이긴 하지만 특조위 본령이 이제 시작됐다. 하지만 걱정은 크다. 한국 국가권력이 딴 건 몰라도 1947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이른바 ‘반민특위’ 이후 민간 차원의 조사는 여러 이유로 비틀거나 심지어 방해하는 특별한 재능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 세월호 배·보상 접수 / 해양수산부는 지난 1일부터 오는 30일까지 9월 한 달 간 세월호 참사 피해자 대상 배상, 보상을 접수한다. 보도에 따르면 해수부는 ‘특별법 규정에 따라 신청 기간이 끝나면 원칙적으로 배보상을 더 신청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한다. 하지만 난 상식적으로 알지 못하겠다. 민간 특조위가 피해자 진상규명 조사신청을 받고 결과를 내려면 앞으로 반년도 훨씬 더 걸릴 터인데 정부 해수부는 이달 내에 피해신청을 완료하고 기한 넘기면 보상도 없다니, ‘선 보상, 후 피해조사’는 혹 앞뒤가 바뀐 것 아닌가. 희생자 일부나 화물주, 어민 등 보상이 시급한 이들과 상세한 조사 및 심리적 보상을 우선시하는 이들 사이엔 시간 개념이 다른데도 이 차이를 인정치 않고 몰아치니 정부는 흡사 ‘사건 종결’로 오해한 것 아닌지 모르겠다. 




   ▲ 추모교실, 비겁한 어른 / 안산 단원고엔 당시 2학년이던 희생자들의 교실 10개가 아직도 524일째 빈 자리로 남아 돌아오지 않는 주인들을 추모하고 있다. 올해 2학년 학생들은 딴 교실서 공부하고있다. 또 지난 6일 KBS TV ‘도전 골든벨’에 출연한 한주연(안양 부흥고) 학생은 “기억하고 싶지 않다고 해서 모른 척 하고, 나의 일이 아니라고 해서 못 본 척 하는 비겁한 어른은 되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발언 대부분이 잘리고 불과 몇 초 방영됐지만 이 명료한 세월호 ‘불망’(不忘) 선언은 트위터, 페이스 북에서 큰 이슈가 됐다. 지난 5월엔 같은 프로에 출연한 고창여고생 수백명이 노란리본을 달고 나오기도 했다. 




   지난해 4월16일을 기점으로 대한민국엔 ‘좌 우’, ‘빈 부’에 이어 또 하나 대립항이 추가됐다. ‘잊지 않는 자’와 ‘잊(으려)는 자’이다. 20, 30대 청년 세대는 임금피크제, 일자리, 연금 등 ‘밥그릇’ 관련해 기성 세대를 불신한 지 이미 오래다. 세월호 이후엔 ‘잊지 않는’ 10대가 여기 가세했다. 혹시 저들에게 불신과 불망의 조기교육을 시킨 것 아닌지, 후과를 어찌 감당할 것인지. 어른들의 대한민국이 나는 심히 우려된다. / 임용진(논설고문)








온누리, 전주 2017 FIFA U-20월드컵



   축구는 사람을 울리고 웃긴다. 도하의 비극. 지난 1993년 10월25일 일본 열도가 패닉에 빠졌다. 카타르 도하서 벌어진 미국월드컵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일본은 이라크에게 인저리 타임 종료 10초전에 동점골(2-2)을 허용하는 바람에 손에 다 잡았던 월드컵 티켓을 놓쳤다. 대망의 첫 월드컵 본선진출이 날아간 순간 국가적 실망과 낙담으로 도쿄 시 전체에 한 동안 정전과도 같은 정적이 흘렀고 이후 곧 비통한 흐느낌으로 변하던 과정을 마침 도쿄에 있던 나는 진하게 목격했다. 




   그보다 10년 전 한국은 멕시코에서 신기원을 쐈다. 1983년 6월12일 제4회 멕시코 세계축구청소년선수권 4강전 몬테레이 경기장. 우루과이를 상대로 전후반 1대1로 비긴 한국은 연장 종료 1분 전(연장후반 14분) 신연호(당시 고려대1년)의 빨래줄 같은 슈팅으로 ‘4강 신화’를 썼다. 우루과이가 우루루 무너졌다. ‘악바리’ 박종환 감독이 이끈 한국은 이 대회서 붉은 색 상의를 입고 벌떼처럼 달렸다. ‘붉은 악마’의 시작이었다. 




   축구는 인생이다. ‘세계 불패’인 브라질이 지난해 브라질 월드컵서 독일에 치욕의 1-7 패를 당할 줄 뉘 알았으랴. 영국의 전설적 선수 리네커가 “축구란 다 큰 남성 열한 명이 90분 공을 쫒아다닌 뒤 결국 독일이 이기는 경기”라 했지만, 독일도 언젠간 눈물을 흘릴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전 프랑스 국가대표 지네딘 지단(43)을 좋아한다. 시오노 나나미도 그를 “결혼하고 싶은 선수, 로마시대 백인대장 같은 이”라고 표현했다. 다 불세출의 선수지만 마라도나가 망나니, 메시가 완전체, 펠레가 천재, 베컴이 째쟁이라면, 지단은 인간의 고뇌와 허탈을 그라운드에 표현한 드문 경기인이었다. 




   전주가 대전, 인천 등과 함께 오는 2017년 6월 20세 이하 축구월드컵(2017 FIFA U-20)을 유치했다. 전주월드컵경기장은 축구팬들 사이에 ‘전주성’이라 불리운다.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에 개최에 이어 ‘전주성’에서 15년만에 더 젊은 월드컵을 볼 수 있다니 가슴이 뛴다. 내가 사는 곳은 참 좋구나! / 임용진(논설고문)






온누리 - 구절초 공무원(새전북신문 10월8일)



  정읍 산내면은 농사 말고는 별로 생업이 없고 그나마 칠보댐으로 인해 경작지가 물에 잠겨 농사지을 땅조차 좁은 곳이다. 어찌 살기 힘들었던지 지난 10여년 전 이곳 상투리 문맹률이 15%나(전국은 2%) 됐다 한다. 정읍 출신 관리 김문원(58·현 정읍시청 국장) 씨가 이때 산내면장으로 부임했다. 




   요즘 차산차해(車山車海), 전국 명물이 된 ‘정읍 구절초축제’는 당시 김면장이 처음 발안한 것이다. 동기는 물론 가난 탈출이다. 소득증대를 위해 면민들과 함께 수도권 아파트에서 고구마, 곶감 등 소출을 직접 팔기도 했지만 별무 효과, 신통한 게 없을까 찾던 중 마을 논에 심어놓은 경관농업용 구절초가 김면장 눈에 띄었다. ‘이걸로 바깥 사람(=돈)을 끌어들이자’. 김면장 아이디어에 당시 유성엽 시장(55·현 국회의원)이 적극 찬성해 w지난 2005년 제1회 구절초 축제를 치렀다. 예산 고작 3000만원. 첫 장소는 지금과 달리 능교리 허궁실 논에서 소규모로 치렀으나 첫해 벌써 관광객 2만여명이 들었다. 




   ‘대박 예감’을 실현하기 위한 준비기로 2006년 한 해는 축제를 쉬었다. 습기에 약한 구절초 살리기에 애를 먹었던 첫 장소 대신 망경대(산내면 매죽리) 야산으로 옮겨 구절초 씨를 대량 뿌리고 이듬해인 2007년 제2회 축제를 했다. 입장인원이 금새 두배로 늘었다. 돈이 문제였지만 산내면 출신으로 당시 기획재정부 사무관이던 안내형 씨(59·현 기재부 국장)가 든든한 백이 됐다. 그가 상사를 설득해 받아놓은 예산항목은 지금도 안정적인 중앙정부 자금줄이 돼 이를 가지고 꽃 심고, 다리 놓고, 도로 정비하고, 폭포 만들어 오늘의 대형 축제 밑거름이 된다. 




   현재 치러지는 제10회 축제 입장료는 3,000원이다. 이중 2,000원을 입장객에게 현물 교환권으로 반환해주는데 이는 김생기 현 정읍시장(68) 아이디어다. 공무원이란 구절초와 같다. 이름 없는 들꽃이지만 게 중 어떤 이는 세상을 향기롭게 한다. 그래서 오늘은 일부러 김문원, 유성엽, 안내형, 김생기 이름을 명기했다. 올해 구절초 축제 예산은 2억4천만원, 관리비 5억원이며 지난해 관광객 수 55만명, 경제유발효과는 60억원이었다. / 임용진(논설고문)








온누리 -  총장 '삼김'(三金)



  고 김상협(1920~1995)은 지난 1975년 고려대학교 총장이었다. 그러나 유신 정부가 ‘긴급조치 7호’로 고대에 휴교령을 내리고 군대를 캠퍼스 내에 진주시키자 도의적 책임을 지고 총장실을 물러난다. 그는 풍모가 호랑이고 걸음걸이는 우보(牛步), 언변 유창했으며 동경대 법학과 졸업, 일찍이 잡지 ‘사상계’ 필자 시절부터 가장 깨어있는 지식인으로 존경받았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1977년 다시 고대 총장에 취임하나 1982년 전두환 신군부의 국무총리 제의를 수락하기 위해 두 번째로 총장직을 사임한다. 이미 1980년 초헌법 권력기관인 국보위원(=국가보위입법위원)이던 그는 입각 일성, “굽은 것은 펴고 막힌 곳은 뚫겠다”고 했으나 총리 재임 1년반 동안 아무 것도 펴지도, 뚫지도 못했다. 




   고 김준엽(1920~2011) 역시 임기 중 사임한 고대 총장이다. 김상협이 호랑이라면 김준엽은 학이었다. 항일 광복군 출신인 김준엽은 풍모 후리후리하고 검은 테 안경에 행동거지며 목소리 인자했으나 외유내강, 평생 권력과 타협하지 않았다. 데모 주동자를 징계하라는 압력에 “내가 그만 두겠다”고 버티다 신군부에 미운 털이 박혀 결국 1985년 임기 중 사임한다. 제자들은 그가 그만두자 ‘총장님 사퇴 반대’ 시위를 한 달 이상 계속했다. 김준엽 역시 1988년 노태우 정권으로부터 국무총리 제의를 받았으나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그가 일기에 쓴 이유는 이렇다. “많은 학생이 아직도 감옥에 있다. 제자가 감옥에 있는데, 스승이라는 자가 어떻게 그 정부의 총리가 될 수 있겠는가.” 




   최근 국사교과서 파문 가운데에 또 한 명 고대 총장 출신이 있다. 국정화 ‘총대’를 멘 김정배(77) 국사편찬위원장이다. 국편 위원장은 국무총리보다 두 단계 낮은 차관급이지만 김 위원장 역시 언제고 이 정부에서 영의정 입각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다보니 선배 고대 총장들과 오바랩 됐다. 김 위원장은 사학과 교수던 김준엽의 직계지만 권력욕에선 세 김 씨 중 가장 센 듯하다. / 임용진(논설고문)









온누리 - '막 프로젝트' 1(새전북신문 10월22일자)




   어제가 음력9월9일 중양절, 국화술 먹는 날이니 오늘도 막걸리 타령이다. 나흘 전 전주시의회에서 이경신 의원(새민련)이 ‘막 프로젝트’ 재정비를 주문했다(새전북신문 19일자 보도). ‘막 프로젝트’란 ‘막걸리 프로젝트’의 준말이다.




   지난 2007년 전주 삼천동 등 막걸리 골목을 문화상품화하자는 아이디어를 내고 이름짓고 추진한 것은 양창명(64), 안세경(58) 등 전주의 대표적인 ‘똥꾼’(=주객)들이었다. 양창명은 전직 언론인이며 안세경은 당시 전주시 부시장이다. 둘 다 전주 출신, 하루라도 막걸리를 마시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치는 이들이다. 양창명은 그때 평화동 주점인 ‘전주막걸리’에 출근하다시피 하며 혼자 하루 두 주전자(750ml 여섯병) 이상씩을 비웠다. 전주시내 청년 똥꾼들 멘토격인 그는 몇 가지 습관 또는 원칙이 있다. 막걸리 두 병에 맥주 한 병을 섞어 마신다, 막걸리 외의 주류는 입에 대지 않는다, 취태를 부리지 않는다, 술값 계산은 후배에게 양보 않는다 등등. 술이 들어갈수록 피부가 매끈하고 고와지는데 막걸리 전도사답게 그는 “이게 막걸리 덕분”이라고 전파했다. 




    안세경 역시 호주가지만 고위직 공무원이다보니 마음껏 마시진 못했다. 하지만 거의 매일 저녁 대신 막걸리를 들이키는 소문난 매니아다. 그가 어느 날 고교 6년 선배인 양창명에게 말했다. “형님, 막걸리 골목을 전주 명물로 만듭시다.” “어떻게?” “제가 행정적으로 지원할테니 형님이 민간 프로젝트 총대를 메세요.” “좋다!” 고향사랑, 전주사랑으로 두 똥꾼은 흔쾌히 의기투합했다. 그 프로젝트 이름이 막 결정하고 막 밀어부친 ‘막 프로젝트’(정식명칭 ‘테마업소선정 지원사업’)다. ‘막’이란 어감이 막걸리만큼 서민적이었다. 




   양창명이 ‘막 위원회’(=테마업소선정지원사업위원회) 위원장이 되고 역시 후배 '꾼'인 여태명, 송만규 8명이 위원으로 뭉쳤다. 시가 업소에 직접 지원하는 대신 전북도 예술인총연합회와 손잡고, 그 산하 미협, 문협 등 9개 예술단체가 각 업소와 자매결연해 지원하는 방식으로 일이 추진됐다. 시 예산 1억여원이 시 → 예술인단체 → 막걸리집으로 분배됐다. 위원회는 그 과정을 조율, 관리 했다. 위원회는 물론 무보수 봉사직, 똥꾼들의 명예직이었다. 막 프로젝트는 막걸리 도시의 막걸리인에 의한, 막걸리를 위한 거사로 추진되고있었다. / 임용진(논설고문)








임용진 칼럼 - 소소한 책읽기(새전북신문 10월26일자)










   초등학교 6학년 쯤 ‘어린 왕자’(생 텍쥐베리)를 읽었는데 하나도 재미 없었다. 지금 봐도 재미있진 않지만 몇 대목 심상(心象)은 여전히 남아있다. 예컨대 ‘이름’.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말했던가? “네가 내 이름을 불러주면 우린 서로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 존재가 되는거야”라고. 김춘수에겐 그게 꽃이다. “내가 그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경영하는 게스트하우스 칠판엔 매일매일 그날 게스트들 이름이 쓰여진다. 그야말로 갠지스 강 모래알처럼 수많은 이름 중 이 칠판 인연만큼은 내가 여우처럼, 김춘수처럼 부르겠다는 나름 기특한 뜻이다. 어린 왕자가 여러 별을 다니며 만나는 군상 중에 술고래도 있다. 그는 “술 취한 게 부끄러워 술을 마신다”고 했다. 술꾼 핑계 대는 게 꼭 나 같아 우리 집 어린 왕자(=게스트)들이 집 주인을 어찌 볼까 가끔 실소(失笑) 한다. 난 그들에게 뱀인지, 꽃인지, 술고랜지? 40여년 전 읽은 한 동화 이미지가 고등학교 국어 책 속 시(=‘꽃’)로, 게스트하우스 칠판으로 확장되고 바뀐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독서는 생활을 만든다. 난 차를 없앤 지 3년 됐다. 전주라는 중소도시가 딱 자전거 이동 크기이기에 돈도 아낄 겸 그렇게 했는데 이건 ‘월든’(헨리 데이빗 소로)에서 배웠다.




   소로에겐 ‘전원주의’, ‘숲의 성자’ 등의 수사가 따라다니지만 사실 그는 매우 혁명적인 사람이다. 1845년(28세) 그는 단돈 20여 달러를 들고 미국 메인 주 콩코드 숲 월든 호수로 들어가 2년을 산다. 전원적 삶을 위해서가 아니라 노예제도와 자본주의에 찌든 숨 막힐 듯한 19세기 중반 미국의 ‘일상적 정체성을 파괴’하는 모험이었다. 




   그가 월든 호숫가에 통나무집을 짓고 혼자 살며 남들에게 당연시된 의식주를 최소화한 것과 중소도시 전주에서 차 없이 지낸다는 건 물론 비교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불편과 주위 반대, 남의 시선 등에도 불구하고 차를 없앤 덴 만분의 일 ‘소로’적인 결단도 있다. 고백컨대, ‘차 없이 살기’에서 난 시민적 자부심마저 느낀다. 




   무엇보다 소로에게 배운 건 ‘시민불복종’이다. 그는 알려진 대로 전원적 보수주의자가 아니라 당대의 이단아고 혁명아였다. 노예제도에 반대하기 위해 메인 주에 내는 세금을 거부해 1846년(29세) 감옥에 갇혔다. 이때 그를 면회하려고 온 철학자 R.W.에머슨에게 “당신은 왜 감옥 밖에 있냐?”고 묻기도 했다. 그는 “부정한 권력에 복종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라. 그러면 자유로워지리라”고 말했다. 




   2차대전 중 소로의 책을 돌려 읽은 덴마크인들은 나치가 유대인들에게 달도록 한 노란별표시를 자기들도 착용함으로써 악법에 저항했다. 세월호 노란 리본을 유족 아닌 이들에게서 보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사드배치, 국정 국사교과서 등 문제에서도 소로식 시민불복종이 자주 눈에 띈다. 아마 ‘월든’을 읽은 건 나 뿐 아닌가보다. 가을이라 책 이야길 했다. 책은 개인 일상에 침입해 세상을 바꾼다. / 임용진(논설고문) 








온누리 - 11월의 팔달로(2015.11.5.)










  그래도 아름답다. 




  올해는 가뭄 때문에 단풍, 낙엽 색깔이 칙칙하리라더니 엊그제 춥고 오늘 말짱 갠 하늘 아래 전주시내 팔달로 은행나무 가로수들이 갑자기 샛노란 황금빛으로 바뀌어 내 눈을 아프게 한다. 이제 곧 우수수 지겠지. 아직 ‘체로’(體露)는 아니나 금세 ‘금풍’(金風)이 올 것이다. 노란 잎이 풍성히 매달려 그 안의 가지가 드러나지 않았으나 이미 황금 빛 깨달음이 숨어있다. 




   ‘벽암록’은 중국 송나라 때 책으로 역대 선승들 화두 공안을 모은 선불교의 앤솔로지다. ‘체로금풍’은 그 중 하나다. 한 중이 선종의 태두 운문선사(864~949)에게 물었다. “나무가 시들고 잎이 떨어졌을 땐 어떠 합니까?” 운문 왈, “몸이 드러나고 금풍이 불지”(=‘體露金風’).




   금강경, 금각사 등에서 보듯 불가의 ‘금’(金)은 깨달음이다. ‘금풍’은 황금 바람, 깨달음의 바람, 서방정토에서 부는 바람이다. 그게 춥고 헐벗고 메마른 담에사 오는 것이니 만사는 버린 담에 얻고 텅 빈 뒤에야 찬다. 생명도 내 쉰(=호·呼) 담에 들이 쉬는(=흡·吸) 것이요, 승마도 스키도 스케이팅도 다 타기 전에 넘어지면서 배운다. 무가에서도 진짜 스승은 맞는 걸 먼저 알려주지 때리는 것부터 가르치지 않는다고 했다. 낙목한천이 되고 비우고 넘어지고 세월에 두들겨 맞은 뒤에야 금빛 바람이 불어오니 오늘은 나무 한 그루가 네 스승이고 내 스승이다.




   난 팔달로 은행나무가 정말 좋다. 이때쯤 나무에서 떨어져 보도에 질척대는 시큼떠름한 은행 과육에도 불구하고 전주시가 가로수 은행나무를 베어버리지 않는 걸 보니 그 황금잎에 황홀해하는 건 나뿐 아닌가보다. 이를 위해 사소한 악취 쯤 참는 거겠지 생각하니 그 여유가 또 전주 시민들 답다. 젊은 외지 관광객들이 한복을 입고 은행나무 아래 재재거리며 사진 찍는다. 그들은 새싹이다. 가을에 봄이 있고, ‘체로’와 ‘새싹’이 희희낙락하니 그 비빔이 조화롭다. 전주 ‘금풍’이 사람들도 채색하는가보다. / 임용진(논설고문)






온누리 - '국정' 국사(새전북신문, 11월12일자)










   며칠 전 한옥마을 외곽 헌책방 거리에 갔다. “옛 국사 국정교과서 있어요?” “없어요” “많이 찾나요?” “예!”




   그래도 두 번째 들른 곳에서 단 한 권 남은 국정 국사교과서를 3,000원 주고 살 수 있었다. 국사편찬위원회가 만들고 교육인적자원부가 발간한 2004년도 고등학교 ‘국사’ 책이다. 이보다 이 년 전인 2002년 초판 발행 했고 2004년은 3판째이다. 나는 국사책 첫 ‘국정화’ 세대다. 유신 2년 후인 1974년에 국사책이 처음 국정화됐고 난 그해 그걸로 고3 일 년 간을 배웠다. 당시도 이름이 ‘국사’ 였고 활자는 지금보다 컸다고 생각된다. 배우긴 했으나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아 고교 단체 SNS에 “생각나는 내용 있으면 알려달라”고 올렸더니 금세 답이 돌아온다. ‘동학혁명을 동학난이라 했고 4·19는 의거, 5·16은 혁명이라 했던 것 같다’, ‘북한 김일성은 항일운동 경력을 부풀린 ‘가짜 김일성’이라고 기술돼있었다” 등등. 




   내가 구입한 2004년판은 30년 전 첫 국정 국사책과 많이 달랐다. 우선 부피가 434페이지나 되는데다 활자 크기가 전보다 작아 내용이 지난날보다 적어도 두 배는 많았다. 올컬러며 곳곳에 일차 사료를 축약한 읽기 자료도 삽입돼 이해를 도왔다. 구체적인 표현은 동학난이 ‘동학농민운동’으로, 4·19는 의거에서 ‘혁명’으로, 5·16은 혁명에서 ‘정변’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이 2004년판은 김대중 정부 시절 만든 것이다. 




   지난 2011년 없어진 국정 국사 책을 새로 만들어 내후년부터 가르칠 게 확실하다. 격한 반대 속에서도 대통령이 지시하고 국사편찬위가 실무를 맡았으니 그리 추진될 것이다. 쓸 사람이 없다지만 막상 구한다면 제 이름자 돌보지 않는 이야 왜 없겠는가. 전북과 경기도를 비롯한 전국 13개 시도의 진보 교육감들이 이미 ‘국정’ 대신 ‘대안’ 국사교과서 또는 참고서 사용을 공언했으니 내봤자 실효도 의문시되지만 아무튼 이 정부의 고집은 천하제일이다. 또 하나, 전주 사람들의 주체적, 실증적 관심도 알아줘야겠다. 그들이 헌책방에서 ‘국정’을 동낼 정도니 말이다. /임용진(논설고문)








온누리 - 공안 장검(公安 長劍) (새전북신문, 11월19일자) 










  박정희 전대통령은 애초 보통학교(=초등학교) 교사였다. 수재만 모인다는 대구사범 졸업 후 문경공립보통학교에서 2년 반을 근무하다 만주군관학교에 입학, 23세로 뒤늦게 군문에 들어선다. 당시 지역유지급인 보통학교 교사를 때려치고 대여섯 살 이상 아래 동생뻘들과 같이 장교 수업을 받은 이유는? “긴 칼 차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 긴 칼’은 권력이다. 보통학교 교사도 그때 ‘신의 직장’임에 틀림 없으나 기껏해야 분필 가루 마시며 애들 상대하는 것보다 긴 일본도 옆에 차고 절커덕 대는 장교를 택한 게 권력 직효였음은 당시 ‘보쿠세이키’(=‘박정희’의 일본식 발음), 후일 ‘다카키마사오’(=‘박정희’의 창씨명)의 행로에서 여실히 증명된다. 




   어찌 보면 권력의 길이 가장 선택하기 쉽다.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군국 제국주의 일본 아래서 나이든 군수, 교장보다 새파란 일본군 소위가 더 힘세다는 걸 당시 보쿠세이키만 알았을 리 없다. 일본 경찰 자체도 식민지 권력이었으나 그중에서도 최강은 ‘특고’(特高), 고등계 형사였다. 지금으로 치면 공안 담당이다. 경찰이나 검찰 모두 공안 쪽이 지금도 세다.




   강력부, 형사부, 특수부, 공안부 등 검사도 전공이 다양하지만 이중 권력 지남철은 역시 공안 쪽이다. 황교안 국무총리와 김수남 차기 검찰총장 예정자는 대표적인 공안통 검사 출신이다. 둘은 이석기 내란 음모사건과 통합진보당 해산을 법무부장관(=황교안)과 수원지검장(=김수남)으로 합작 지휘했다. 이들이 휘두르는 ‘긴 칼’은 사백여 년 전 한산도에서 깊은 시름하며 수루에 홀로 앉은 이가 옆에 찬 ‘긴 칼’과 같은 지, 다른지. 누군 그걸로 민족을 구했고, 누군 정권을 구하려는지. 




   마르크스는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떠돌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공산당선언)라고 했다. 한국에선 빈사의 공안 유령이 회생해 떠도는 듯하다. / 임용진(논설고문)










임용진 칼럼 - 대통령의 사생활(새전북신문, 11월23일자)










    한 때 대통령 되려면 숨겨놓은 딸 하나 쯤 있어야 한다는 농담이 돌았다. 그도 그럴 것이 어제 세상을 뜬 김영삼 전 대통령과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등이 오랫동안 ‘숨겨놓은 딸’ 루머에 시달렸다. 고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 역시 수 십 년 간 딸을 숨겼다. 그는 친구의 딸을 사랑해 재임 동안에도 내연을 계속했으며 대통령 관저인 파리 엘리제 궁에서 불과 5km 거리에 이른바 ‘작은 집’을 두고 그쪽으로 퇴근할 정도였다. 둘 사이 딸 마자린 팽조가 1996년 미테랑 장례식에 나타남으로써 소문이 공식 확인됐다. 




     프랑스인들은 미테랑의 혼외정사를 로망스 정도로 여긴다. 친구가 자기 딸을 집에 감금하고 못 만나게 하자 현직 대통령 미테랑이 심야에 친구 집 앞에서 “내 사랑을 내놓아라”고 고함지르기도 했다. 잡지 ‘파리마치’가 1994년 한 식당에서 식사중인 아버지 미테랑과 숨겨진 딸 팽조를 파파라치 사진으로 보도하자 프랑스 전체가 일순 시끄러웠으나 곧 ‘뭘 그런걸…’ 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한국에서도 ‘YS’와 ‘DJ’의 숨은 딸 이야기는 가십성 이상으로 발전되지 않았으니 대통령의 사생활에 관해선 프랑스까진 아니더라도 한국에도 똘레랑스(=관용)가 없다 할 순 없겠다. 우리도 적어도 공사(公私) 구분은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요즘 문제되는 ‘대통령의 7시간’에 관해선 사정이 다르다. 세월호 참사 당일인 지난해 4월16일 오전 10시쯤 박 대통령은 서면(書面)으로 첫 보고를 받은 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하기까지 7시간 동안 대면보고 지시도, 대통령 주재 회의도 하지 않았다. 일찍이 없던 참사니만큼 문서 보고 즉시 비서실장이나 주무장관을 불러 얼굴 맞대고 따져 물었어야 정상임에도 불구하고 종적 무상 부재했으니 과연 그에 합당한 이유가 뭔지, 어디 있었는지 밝혀야 할 것인데 뭐가 거북한지 자꾸 덮으려는 인상을 줘 오히려 문제가 커졌다. 




     급기야 최근 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가 이를 조사하겠다 하자 여당 추천 위원들이 ‘총사퇴 불사’ 기자회견을 했는데 이마져 해양수산부와 미리 짜 맞춘 액션이란 의혹이 최근 보도로 드러났다. 언론이 할 일을 하네, 못하네 하지만 그래도 꼭 필요한 게 이런 경우다. ‘머니투데이’는 작은 경제지지만 지난 19일자에 세월호 특조위 여당 추천 위원들의 ’현안대응 방안‘을 공개해 특종을 터뜨렸다. 해수부가 작성한 이 행동지침에 따르면, 특조위가 ‘대통령의 7시간’을 조사하려할 경우 이에 속한 여당측 위원들의 단계별 방해전략이 제시돼있다. “①의결과정에서 문제를 계속 제기하며, ②필요시 여당 추천의원 전원 사퇴 표명하고, ③특히 부위원장이 앞선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여당추천위원들은 19일 기자회견에서 ‘특조위는 기울어진 운동장’(= ①)이라 했으며, ‘전원사퇴 불사’(=②)를 외쳤고, 18일 회의 도중 이헌 부위원장이 퇴장(=③)하면서 지침을 충실히 이행했다. 하지만 어떤 내부자고발로 지침이 폭로됐으니 이 정부 신뢰는 더 땅에 박혔다. 세월호 참사 진상을 은폐하려는 이들에게 조사하라고 명함을 줬으니 피의자가 피해자를 조사하는 격이다. 박대통령은 지난주 국무회의에서 근엄한 표정으로 ‘국민들이 진실된 사람을 뽑아주시라’고 주문했다. 과연 진실을 중시하긴 하는 모양이지만, 그 진실이 세월호에 관한 한 예외임을 확인시킨 게 이번 문건 파문이다. 




     ‘대통령의 사생활’이라 할지라도 박 대통령과 미테랑, YS, DJ 사이엔 차이가 크다. 그들은 적어도 근무시간에 종적 무상하지 않았으며 국가재난을 7시간이나 방치하지 않았다. 마이니찌, 요미우리 등 일본 주요신문은 수상의 하루 일정을 매일 분단위로 자세히 보도한다. 수상이 어느 식당에서 몇시 몇 분 누구와 만나 얼마짜리 무슨 메뉴를 먹을 것인지 나올 때도 있지만 그걸 사생활 침해로 여기는 일본 수상이 있단 소린 듣지 못했다. 한국의 장관급 각료들은 그들이 국내에 있는 한 대통령이 부르면 반드시 한 시간 내에 현신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 신료들을 콜 하지 않은 ‘7시간’을 어찌 설명할까. 회사 다녀본 이는 알 것이다. 일개 영업사업도 근무 중엔 자신의 자취를 항시 회사에 알린다. 하물며 국가 막중대사를 경영하는 대통령임에랴. 고 박정희 전 대통령도 사생활 도중 비운의 저격을 당했으나 그것조차 어디까지나 퇴근 후의 일이다. 세월호 참사 같은 경우 박 전대통령이라면 오히려 근무 공백을 스스로에게 결코 용납치 않았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 특조위는 오늘(23일) 오전 전체회의를 열어 ‘대통령의 7시간’ 조사 건을 의결한다. ‘지침’대로 여당 추천의원 4명은 사퇴하고 나머지 위원들만으로 통과될 게 확실하다. 대통령의 사생활은 이제 없다. / 임용진(논설고문)








 온누리- 과메기, 홍어, 칼국수 




    




  음식이 기호라고? 권력이기도 하다.




   MB(=이명박) 맏형이자 최근 포항제철 비리혐의로 구속된 이상득(81) 전 국회부의장은 전성기 시절 매년 12월쯤 국회에 과메기를 자주 반입했다. 그는 지난 2010년 겨울 국회 의원회관 식당에서 과메기 시식회룰 열어 국회의원과 출입기자들에게 직접 맛보기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포항 태생이자 당시 원내대표던 김무성 현 여당 대표가 이 시식회를 후원했으니 비린 과메기 냄새가 그들 권세와 함께 국회에 진동했다. 포장마차에서도 과메기가 한 때 날개 돋친 듯 팔렸으나 MB 퇴진 후엔 그 인기가 전만 못한 듯하다. 




   과메기는 비릿하고 홍어는 코를 찌른다. 전라남도 식 삭힌 홍어는 한때 야당 상징이었으나 DJ(=김대중)가 청와대 주인이 되자 일순 권력 후각이 됐다. 그 몇 해 전만 해도 낮선 메뉴던 ‘삼합’이 국민음식이 됐다. 종로, 광화문, 여의도에 홍어집이 눈에 띄게 늘고 미중(味衆)은 연신 눈물을 흘리면서도 ‘푹 삭힌 홍어’를 연호했다. 실세 단골인 한 홍어집에 사람이 모이고, 번창하고, 식당 주인마저 목에 힘 주고 다녔으니 나머지 권력 촌극이야 일러 무삼하리요. 




   YS(=김영삼)는 삼선교, 성북동 등 주로 서울 강북 구도심 칼국수집을 다녔다. 특히 북악 스카이웨이에서 자하문 상명대학 쪽으로 내려가기 직전 성북동 ‘국시집’이 그의 평생 단골처다. 강남 ‘소호정’에 다닌 건 비교적 훗날 일이다. 이 집들 공통점은 고기 국물이 듬뿍 밴 경상도식 ‘국시’ 계통이란 점이다. 닭 칼국수나 조개 칼국수와는 맛이 다르다. 




   인걸이 가고 나니 입맛도 무상하다. 오늘 낮엔 그냥 담백하게 칼국수 한 그릇, 저녁엔 홍어에 탁배기나 한 사발 할까보다. 과메기는? 솔직히 내 입맛엔 별로다. / 임용진(논설고문)








온누리 - 'V' (새전북신문 12월3일자




영화 ‘브이 포 벤데타’(2005, 감독 제임스 맥티그)는 명화는 아니지만 수작이다. 포탈 등에 검색하면 장르는 액션, SF 등으로 나오지만 나름 메시지가 분명한 정치 드라마다. 무대는 2040년 영국. 나치 히틀러를 닮은 독재자 ‘셔틀러’와 이에 맞선 이름 없는 피해자 겸 투사 ‘V’의 대결 이야기다. 결국 정의가 승리한다. 언제나 가면을 쓰고 나오는 V는 위선적 지배집단을 부수며 자신의 죽음을 역사의 제단에 바친다. 승리와 죽음. 전형적인 영웅서사 구조다. 




    새삼 이 영화가 생각나는 건 일주일 전 박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복면 시위 금지’를 지시했기 때문이다. 이후 여야는 물론 나라 전체가 복면, 가면 논란이다. 이와 관련, 영화속 V의 대사가 남 일 같지 않다. 




    ▲“가면 뒤엔 살덩이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신념이 있다” 




    ▲“국민이 정부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국민을 두려워해야 한다” 




    ▲“기억하라, 기억하라. 11월5일을”




    ▲“너희들이 가진 건 총알과 그 총알에 맞기를 바라는 희망 뿐이지” 




    이번 주말 또 한 차례 대규모 시위가 광화문에서 예정돼있다. 수많은 이들이 또 마스크를 쓰고 ‘기억하라, 4월26일(=세월호 참사일)!’ 등을 외치며 ‘물대포와 그 물대포에 맞기를 바라는 희망’세력에 격렬히 부딪칠 것이다. 영화 속 독재자 셔틀러는 뜻밖에 저항이 거세자 당황해 소리 친다. “마스크를 쓴 자는 무조건 체포하라!” 




    ‘브이 포 벤데타’ 한 번 씩 보시길 권한다. 영화는 기득권 상징인 영국 국회의사당이 우렁찬 ‘1812년 서곡’(차이코프스키) 대포소리와 함께 폭파되는 걸로 끝난다.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해 김무성·황교안·김수남 씨등 최고 권력층에게 이 영화가 특히 유익할 것이다. 아니, 이미 봤을지도 모르겠다. 어디까지나 파국은 그들이 가장 두려울 것이므로. / 임용진(논설고문)








온누리 - ‘막 프로젝트’⓶




  




   두 달 전 ⓵편을 쓰고 이거저거 딴 소재 때문에 ‘막 프로젝트’를 미뤘으니 해 넘기기 전에 오늘 두 번 째를 써야겠다.




   최근 전주 막걸리가 비싸다는 말이 나온다. 푸짐하고 맛난 안주를 싼 값에 준다는 소문만 믿고 전주 서신동, 삼천동 막걸리 타운을 찾은 일부 외지 관광객들이 ‘비싸다’, ‘맛 없다’고 불평하기 시작했다. 음식도 이미지 장사다. 대부분 미각보다는 소문을 파는 건데 나쁜 평판은 전염병보다 빨리 번진다. 이미 상업화된 한옥마을은 그렇다 치고 전주 막걸리에서마저 남들이 ‘바가지’, ‘상혼’을 연상한다면 이런 낭패가 없다. 




   최근 논란이 되는 건 이른바 ‘세트 판매’ 또는 ‘코스 판매’다. 한 주전자(750ml 막걸리 세병 들이) 단위로 주문하고 주문시마다 새 안주를 주는 보편적인 ‘주전자’ 판매 대신 ‘세트 판매’는 최초 주문액(5만~6만원)이 비싸고 안주도 한꺼번에 많이 준다. 정신없이 바쁜 성수기에 이만원짜리 한 주전자 놓고 몇 시간씩 끄는 눈치 없는 고객을 원천봉쇄할 수 있는데다 전반적으로 매출총액이 높기 때문에 업주측이 이를 선호한다. 하지만 고객 입장에선 호주머니 부담이 크고 음식낭비 등으로 개운찮은 인상을 받는다. 상다리가 휘어지게 깔리는 안주는 ‘서울 촌 놈’ 겁주긴 하겠으나 선술집 특유의 간소한 감동이 없고 눈치 빠른 고객은 금세 ‘상혼’을 의심한다. 지난 10월초 이경신 시의원이 전주시의회에서 ‘막 프로젝트 재정비’를 주문한 게 바로 이런 이유다.




   물론 전주 시내 ‘똥꾼’들은 이미 자신의 비밀스런 단골집이 있다. 남부시장 ‘정읍집’ 등 몇몇 식당이나 경원동 ‘주인네 막걸리’, 서서학동 ‘진안집’ 등이 한 주전자 기본 1만~1만2천원으로 괜찮게 마실 수 있는 곳들이다. 기본 2만원이긴 하지만 서신동 ‘달빛주막’도 실속파들에게 인기다. 하지만 관광객들에겐 역시 교통편이나 실내장식, 편의시설, 화장실 등을 고려해 서신동, 삼천동, 효자동 등 막걸리 타운을 추천할 수 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전주 막걸리 집 원조 중 하나인 삼천동 ‘수목’이 최근 ‘기본 1만원’(막걸리 세 병)에 동참했다는 건 토속주객이나 관광주객 모두에게 희소식이다. ‘푸짐하고 맛나고 싼’ 게 진짜 전주 재산이다. 관청의 ‘제2의 막 프로젝트’가 바로 이 기본에서 출발해야 할 것인데 이미 서민들이 먼저 시작했으니 역시 전주답다. / 임용진(논설고문)






임용진 칼럼 - 혼미, 용렬, 무도(새전북신문, 12월22일자)










  또 연말. 교수신문 사자성어가 뉴스가 됐다. 올핸 뭐가 뽑히려나 궁금했는데 ‘혼용무도’(昏庸無道)라고 그제 보도됐다. 올해 한국사회가 ‘혼미하고 용렬하고 도가 없어서’ 뽑혔다고 한다. ‘혼미’는 어둡다, 어리석다이고 ‘용렬’ 역시 비슷한 뜻이다. 사람이 순하고 어리석은 걸 ‘용(庸)해 빠졌다’고 하는데 바로 그 용법이다. 누가 혼미하고, 용렬하다는 것인가? 바로 대통령이다. 




   매년 연말과 연초 교수신문은 묵은 해 평가와 새해 희망을 담은 사자성어를 십여년 째 발표하고 있다. 교수 800명에게 설문한 것이라니 전국 수만 명 교수 중 어떻게 대표성이 있는진 잘 모르겠으나 매년 선정돼 지상에 오른 사자성어를 보면 촌철살인 묘가 있어 곱씹을 만하다. 그런데 올핸 그 겨냥하는 바가 사회 전체를 에두르지 않고 청와대를 직격해 말 그대로 촌철‘살인’(殺人)이 돼버렸다. 이를 두고 홍준표 경남지사가 “혼자 고군분투하는 여성 대통령이 안쓰럽다”며 “한국사회의 지식인집단까지 극한 용어로 흔들어대면 대한민국은 앞으로 2년을 어떻게 운영하느냐"고 걱정했다. 그의 걱정은 국정운영 차원이기도 하지만 ‘안쓰럽다’, ‘여성’ 등의 표현으로 볼 때 박근혜 대통령 개인에 대한 페미니스트적 동정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여성이면 어떻고 남성이면 어떤가. 어쩌다 대통령이 비난을 지나 부하(=홍 지사)에게 동정까지 받게 됐는지 정말 안쓰런 노릇이다. 대통령 본인은 이런 평가가 큰 불만일 것이지만, 지난 3년 치세 동안 남들에게 치유와 희망보다 고통과 실망을 준게 사실이다. 




   ● 혼미 : 지난 여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는 어리석은 정부가 뭔지 현주소를 보여줬다. 문형표 전 복지부 장관은 메르스 1번환자가 확진된 지난 5월20일 “전염병이 낮다. 일반국민에게 전파 가능성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국내 첨단 삼성병원이 부분 폐쇄되고 지난 11월말 마지막 80번 환자가 사망하기까지 메르스는 사망 38명, 확진 186명, 격리 16,000명과 미증유의 공포, 불신을 남겼다. 국가재난 질병 콘트롤타워가 청와대인지 보건복지부인지 삼성인지 시청인지 경제부총리인지 헛갈릴 정도로 서로 미루고 말을 바꾸는 무책임, ‘국격’ 때문에 대응등급을 상향조정 못했다는 해당 장관의 무지, 이 장관은 더구나 사태 발생 엿새만에 그것도 일대일 대면보고가 아닌 국무회의 자리에서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국회 증언했으니 국가시스템이 부재해도 이런 부재가 없다. 역시 미증유 재난인 세월호 침몰참사 시에도 대통령에겐 7시간 동안 대면보고나 지시행위가 없었으니 사건은 우연히 커지지 않았다. 무책임, 무능력, 불신 등 혼미 종합판이었다. 




   ● 용렬 : 범인, 보통사람 등을 가리키는 말이 ‘용’이고 못나고 낮은 걸 가리키는 게 ‘열’(劣)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강한 대통령인 듯하다. 여당과 정부가 그의 눈치 보기에 여념 없다. 오죽하면 ‘박심’(朴心)이 모든 정치 행위의 기준이 될까. “진실한 사람을 뽑아달라”는 국회에서의 이례적인 대국민 주문이 선거법 위반인지 아닌지 모르겠으나 이 때문에 진짜 박(=진박)과 가짜 박(=가박)이 생겼으며 원조 친박, 청와대 친박, 복박(復朴), 탈박(脫朴) 등 희한한 말이 파생됐다. 모두 ‘박심’ 농도가 기준이니, 이 나라가 민주주의인 건 맞지만 여당 주변에선 ‘박(朴)주주의’라 하는게 옳을 듯하다. 하지만 이게 정말 강한 것일까? 여당과 청와대 바깥에서 보자면 이는 다 큰 어른들이 벌이는 소극적(笑劇的) 병정놀이다. 여당 표밭 일부지역에선 ‘박심’을 벗어나면 ‘불신지옥’이겠지만 다른 데선 오불관언이다. 민의가 아닌 대통령의 마음을 눈치 보게 하면 강하긴 강하다 하겠으나 대인배라 할 순 없다. 자신에 대한 비판을 수용하지 않고 그럴 기세가 있으면 ‘배신의 정치’로 몰아치고 국민과 역사에 대해 ‘혼’이 있네, 없네 하고 지역 편 가르기가 이보다 심할 때 없으니 군자, 대인, 뛰어난 이의 정치는 분명 아니다. 




   ● 무도 : 세월호 참사 이후 600일이 더 지났다. 그간은 인본주의적 도리나 정치신의 등이 없는 무도(無道)의 시기였다. 박대통령은 지난해 5월 중순 진도 팽목항에 찾아가 눈물 흘리며 위족을 위로했으나 그 한 달 후 국회연설시엔 ‘살려주세요’를 연호하는 유족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고 이후 세월호 관련 일체 언급이 없다. 애초 ‘악어의 눈물’을 흘린 건지 참 무도할 따름이다.




   조선 역대 왕 중 재위 후반이 전반보다 나은 이가 숙종이다. 그는 46년 재위 동안 처음엔 장희빈을 둘러싼 궁중, 여성 문제로 ‘난정’(亂政)·‘혼군’ 소릴 들었으나 후반기엔 신료들의 남인, 노론, 소론 싸움 속에서도 수시로 민간에 미행(微行)하며 대동법 확대실시, 상평통포 주조, 일본통상 등 특히 민생 쪽에서 좋은 치적을 이뤘다. 이 정부도 그러면 좋겠다. 내년엔 희망이 있어야 하므로. / 임용진(논설고문) 








  




 온누리- '말 많을까 하노라'(새전북신문, 2015.12.24.)



  올해도 다 저문다. 다사다난이란 표현으로 모자랄 만큼 사건이 많았다. 양의 해였지만 늑대에게 다 잡아먹혔는지 순한 양 울음소린 묻혀버렸다. 대신 국내 메르스 전염, 해외 파리테러·시리아 난민사태 등으로 신음과 비명이 그치지 않았다. 이말 저말 말도 많았다. 기억나는 것만 간추린다. 




  ▲“이 세상에 진실을 이길 것은 아무 것도 없다” /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지난 5월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검찰에 출두하면서. 결국 ‘진실’ 때문에 그는 역대 최단명 총리(63일 재임)가 됐다. 




  ▲“옛말에 ‘들어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이 한결같은 이가 진실된 사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 박근혜 대통령이 엊그제 국무회의에서. 몇 달 전 국회에서 “진실한 사람을 뽑아달라”고 호소하더니 여전히 ‘진실’ 노이로제를 뿌리치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 화법에서 ‘진실’은 ‘불복종’에 대한 반대말이다. 




  ▲“잘못된 역사 교육으로 청년들 입에서 ‘헬조선’이란 말이 회자되고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지난달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관련해서. 젊은이들의 절망적인 취업난, 불평등 코리아(=‘헬조선’)가 교육 탓이라니 이번엔 해경이 아닌 교육부를 없애려나?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자존심)가 없냐?” / 올해 최고 히트작인 영화 ‘베테랑’에서 경찰 역 맡은 황정민이. 가슴이 확 뜷렸다. 




  ▲“나라가 발전하고, 국민이 편안하게 살기 위한 노력을 계속 하다가 대통령까지 됐다”, “정말 간절하게 원하면 온 우주가 나서서 도와준다” / 박근혜 대통령이 어린이날 청와대를 방문한 어린이들에게. 누리꾼들은 즉각 “내가 힘든 이유는 온 우주가 감동할 만큼 노오력하지 않았기 때문” 등의 댓글을 달았다. ‘노오력’은 불가능과 동의어가 돼버렸다. 




  ▲“모기가 더 무섭다” /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달 아프리카를 방문하며 “테러가 무섭지 않냐”는 질문에. 이런 지도자는 남의 가슴을 울린다. 




  ▲“야구는 해봐야 하는 것이고 결과는 끝나봐야 아는 것” / 김인식 감독이 지난달 세계야구 ‘프리미어 12’ 일본과의 준준결승에서 9회 역전승(4-3) 한 뒤. 우리 인생도, 가난한 전북도, 대한민국도 아직 안 끝났다. 장갑 벗어봐야 안다. 연말 힘들 내십시오! / 임용진(논설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