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칼럼

제목온누리 모음2018-07-12 10:2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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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온누리 조선일보(새전북신문, 6월25일) 온누리 조선일보(새전북신문, 6월25일) 조선공산당은 조선일보 기자들이 만들었다. 1925년 4월 경성부 황금정(서울 을지로 1가 중국집 아서원에서 조선공산당 창립을 주도한 이가 바로 그 유명한 박헌영, 김단야, 임원근 3인방이다. 모두 당시 조선일보 기자다. 박헌영은 뒷날 북한 정권 수립 초기 부수상 겸 외무상을 지냈으나 간첩죄로 몰려 1956년 처형된다. 김단야는 러시아 망명 활동 중 반혁명 혐의로 소련 비밀경찰에게 체포돼 1938년 사형된다. 임원근은 북한 제1기 최고인민회의 의장인 허헌의 사위고 역시 북한 요직을 두루 거친 허정숙의 첫 남편이다. 이밖에도 조봉암, 김재봉, 홍남표, 홍덕유, 신일용 등 쟁쟁한 공산주의, 사회주의자들이 모두 동시대 조선일보에 몸 담았다. 1920년대 한국 공산주의 운동은 크게 세 갈래다. 소련 이르쿠츠크파를 잇는 ‘화요회’(박헌영와 중국의 ‘상해파’(신일용, 일본 유학생 계열 ‘북풍회’(조봉암. 이 셋이 모두 조선일보에서 만난다. 6·25발발 65주년을 하루 앞둔 어제 서울 인사동 한 경매장에 손바닥만한 크기(27×19cm)의 조선일보 호외(1950년6월28일자 한 장이 거액에 나왔다. 무려 1억원대다. 호외는 ‘인민군, 서울 입성 미국대사관 등 완전해방’ 제하에 “28일 오전 3시 30분부터 조선 인민군은 제 105군 부대를 선두로 하여 서울시에 입성하여 공화국 수도인 서울을 해방시켰다”고 대서특필하고있다. 이어 “오래 갈망하여 맞이하던 조선인민군대를 서울시민들은 열열한 환호로서 환영하였다”고 적고 있다. 이에 대해 조선일보는 “우리가 발행한 것 아니다”고 손사래친다. 1970년대 이후 선우휘, 김대중, 류근일, 조갑제 등우익논객과 함께 국내 최강 언론으로 군림하고있는 조선일보로서 1920년대 박헌영 등이나 1960년 그날의 호외가 달가울 리 없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도 좌익은 '주홍글씨'다. 그는 한때 공산당에 가입했던 전력을 없애고자 친형의 절친인 북한 밀사 황태성을 사형하고 이후 반공 철권으로 내달았다. 기회포착, 얼굴 바꾸기, 강한 현세 추수(追隨의지 등 조선일보와 박 전대통령은 많이 닮았다. / 임용진(논설고문. ##### 



온누리 막걸리(새전북신문, 7월16일) 온누리 막걸리 구물구물한 날씨, 오늘은 막걸리 타령이다. 인걸만 지령이 아니고 막걸리도 땅을 따른다. 와인처럼 막걸리도 숙성주라 기후, 물맛, 손맛 따라 느낌이 제각각이다. 서울 ‘장수막걸리’는 꼭 서울내기들처럼 세련됐다. 전국 800개 양조장 주 유일하게 인공탄산을 첨가해 맑은 첫맛, 쌈빡한 끝맛이다. 적당히 묽은 농도에 우유처럼 희디 흰 장수막걸리 한 두 병 차고 북한산 정상에서 한 잔, 내려오다 기슭 주막에서 또 한 잔 하던 걸 잊지 못한다. 수많은 이가 서로 부딪히지 않기 위해서인지 대도시가 시골보다 규칙을 잘 지킨다. 장수 막걸리는 서울 사람들처럼 질서 순응, 규칙 준수형이다. 점도와 탁도, 신맛·쓴맛·단맛의 균형이란 점에서 장수막걸리는 가히 국가대표급 ‘범생이’다. 전주, 전북에도 막걸리 수 십 종이 있다. 장수 번암막걸리, 진안 냉천막걸리, 남원막걸리, 완주 천둥소리와 뿌리깊은 막걸리 등 금세 생각나는 것만 십여종인데 게중 유통 강자는 ‘전주막걸리’다. 전주 막걸리 통칭이 아니라 (주전주주조가 생산하는 고유 브랜드인 ‘전주막걸리’는 일단 첫맛이 서울 것보다 묵직하다. 걸쭉하다. 탄산이 일체 없고, 김치로 치면 아주 미세하게 군둥내가 난다 할까? 그래서 서울 등 외지인에겐 대번에 호불호가 엇갈린다. 하지만 잔을 거듭하다보면 이내 ‘인’이 박혀 그 ‘개미’를 잊지 못한다. 뭐라 딱히 표현 못하나 시원하고 혀를 잡는 것을 전북인들이 “개미 있다” 할 때의 바로 그 표현 ‘개미’다. 전주막걸리는 전국 공장 막걸리 중 유일하게 천연 암반수를 사용한다. 인천 ‘소성주’, 부산 ‘생탁’도 명주다. 소성주는 넓은 포용력과 쏘는 듯한 청량감을 동시에 갖췄으며 생탁은 마시노라면 부산사투리가 입속에서 충돌한다. 이밖에 지하수로 빚은 여수 ‘개도막걸리’, 장수막걸리와 소성주 중간 쯤인 경기도 표준 맛 ‘지평막걸리’ 등 대한민국은 넓고 마실 건 많다. 이상 모두 공장 제조품이 이 정도니 송명섭 막걸리, 금정산성 막걸리 등 누룩으로 빚은 수제(手製야 말해 무삼하리요. / 임용진(논설고문. ##### 


온누리 막걸리(새전북신문 7월16일자) 온누리 막걸리(새전북신문 7월16일자) 요즘 구물구물한 날씨, 오늘은 막걸리 타령이다. 인걸만 지령이 아니고 막걸리도 땅을 따른다. 와인처럼 막걸리도 숙성주라 기후, 물맛, 손맛 따라 느낌이 제각각이다. 서울 ‘장수막걸리’는 꼭 서울내기들처럼 세련됐다. 전국 800개 양조장 주 유일하게 인공탄산을 첨가해 맑은 첫맛, 쌈빡한 끝맛이다. 적당히 묽은 농도에 우유처럼 희디 흰 장수막걸리 한 두 병 차고 북한산 정상에서 한 잔, 내려오다 기슭 주막에서 또 한 잔 하던 걸 잊지 못한다. 수많은 이가 서로 부딪히지 않기 위해서인지 대도시가 시골보다 규칙을 잘 지킨다. 장수 막걸리는 서울 사람들처럼 질서 순응, 규칙 준수형이다. 점도와 탁도, 신맛·쓴맛·단맛의 균형이란 점에서 장수막걸리는 가히 국가대표급 ‘범생이’다. 전주, 전북에도 막걸리 수 십 종이 있다. 장수 번암막걸리, 진안 냉천막걸리, 남원막걸리, 완주 천둥소리와 뿌리깊은 막걸리 등 금세 생각나는 것만 십여종인데 게중 유통 강자는 ‘전주막걸리’다. 전주 막걸리 통칭이 아니라 (주전주주조가 생산하는 고유 브랜드인 ‘전주막걸리’는 일단 첫맛이 서울 것보다 묵직하다. 걸쭉하다. 탄산이 일체 없고, 김치로 치면 아주 미세하게 군둥내가 난다 할까? 그래서 서울 등 외지인에겐 대번에 호불호가 엇갈린다. 하지만 잔을 거듭하다보면 이내 ‘인’이 박혀 그 ‘개미’를 잊지 못한다. 뭐라 딱히 표현 못하나 시원하고 혀를 잡는 것을 전북인들이 “개미 있다” 할 때의 바로 그 표현 ‘개미’다. 전주막걸리는 전국 공장 막걸리 중 유일하게 천연 암반수를 사용한다. 인천 ‘소성주’, 부산 ‘생탁’도 명주다. 소성주는 넓은 포용력과 쏘는 듯한 청량감을 동시에 갖췄으며 생탁은 마시노라면 부산사투리가 입속에서 충돌한다. 이밖에 지하수로 빚은 여수 ‘개도막걸리’, 장수막걸리와 소성주 중간 쯤인 경기도 표준 맛 ‘지평막걸리’ 등 대한민국은 넓고 마실 건 많다. 이상 모두 공장 제조품이 이 정도니 송명섭 막걸리, 금정산성 막걸리 등 누룩으로 빚은 수제(手製야 말해 무삼하리요. / 임용진(논설고문. ##### 


온누리 막걸리(새전북신문 7월16일자) 온누리 막걸리(새전북신문 7월16일자) ////온누리 막걸리(새전북신문, 7월16일) 요즘 구물구물한 날씨, 오늘은 막걸리 타령이다. 인걸만 지령이 아니고 막걸리도 땅을 따른다. 와인처럼 막걸리도 숙성주라 기후, 물맛, 손맛 따라 느낌이 제각각이다. 서울 ‘장수막걸리’는 꼭 서울내기들처럼 세련됐다. 전국 800개 양조장 주 유일하게 인공탄산을 첨가해 맑은 첫맛, 쌈빡한 끝맛이다. 적당히 묽은 농도에 우유처럼 희디 흰 장수막걸리 한 두 병 차고 북한산 정상에서 한 잔, 내려오다 기슭 주막에서 또 한 잔 하던 걸 잊지 못한다. 수많은 이가 서로 부딪히지 않기 위해서인지 대도시가 시골보다 규칙을 잘 지킨다. 장수 막걸리는 서울 사람들처럼 질서 순응, 규칙 준수형이다. 점도와 탁도, 신맛·쓴맛·단맛의 균형이란 점에서 장수막걸리는 가히 국가대표급 ‘범생이’다. 전주, 전북에도 막걸리 수 십 종이 있다. 장수 번암막걸리, 진안 냉천막걸리, 남원막걸리, 완주 천둥소리와 뿌리깊은 막걸리 등 금세 생각나는 것만 십여종인데 게중 유통 강자는 ‘전주막걸리’다. 전주 막걸리 통칭이 아니라 (주전주주조가 생산하는 고유 브랜드인 ‘전주막걸리’는 일단 첫맛이 서울 것보다 묵직하다. 걸쭉하다. 탄산이 일체 없고, 김치로 치면 아주 미세하게 군둥내가 난다 할까? 그래서 서울 등 외지인에겐 대번에 호불호가 엇갈린다. 하지만 잔을 거듭하다보면 이내 ‘인’이 박혀 그 ‘개미’를 잊지 못한다. 뭐라 딱히 표현 못하나 시원하고 혀를 잡는 것을 전북인들이 “개미 있다” 할 때의 바로 그 표현 ‘개미’다. 전주막걸리는 전국 공장 막걸리 중 유일하게 천연 암반수를 사용한다. 인천 ‘소성주’, 부산 ‘생탁’도 명주다. 소성주는 넓은 포용력과 쏘는 듯한 청량감을 동시에 갖췄으며 생탁은 마시노라면 부산사투리가 입속에서 충돌한다. 이밖에 지하수로 빚은 여수 ‘개도막걸리’, 장수막걸리와 소성주 중간 쯤인 경기도 표준 맛 ‘지평막걸리’ 등 대한민국은 넓고 마실 건 많다. 이상 모두 공장 제조품이 이 정도니 송명섭 막걸리, 금정산성 막걸리 등 누룩으로 빚은 수제(手製야 말해 무삼하리요. / 임용진(논설고문. ##### 


온누리 막걸리 요즘 구물구물한 날씨, 오늘은 막걸리 타령이다. 인걸만 지령이 아니고 막걸리도 땅을 따른다. 와인처럼 막걸리도 숙성주라 기후, 물맛, 손맛 따라 느낌이 제각각이다. 서울 ‘장수막걸리’는 꼭 서울내기들처럼 세련됐다. 전국 800개 양조장 주 유일하게 인공탄산을 첨가해 맑은 첫맛, 쌈빡한 끝맛이다. 적당히 묽은 농도에 우유처럼 희디 흰 장수막걸리 한 두 병 차고 북한산 정상에서 한 잔, 내려오다 기슭 주막에서 또 한 잔 하던 걸 잊지 못한다. 수많은 이가 서로 부딪히지 않기 위해서인지 대도시가 시골보다 규칙을 잘 지킨다. 장수 막걸리는 서울 사람들처럼 질서 순응, 규칙 준수형이다. 점도와 탁도, 신맛·쓴맛·단맛의 균형이란 점에서 장수막걸리는 가히 국가대표급 ‘범생이’다. 전주, 전북에도 막걸리 수 십 종이 있다. 장수 번암막걸리, 진안 냉천막걸리, 남원막걸리, 완주 천둥소리와 뿌리깊은 막걸리 등 금세 생각나는 것만 십여종인데 게중 유통 강자는 ‘전주막걸리’다. 전주 막걸리 통칭이 아니라 (주전주주조가 생산하는 고유 브랜드인 ‘전주막걸리’는 일단 첫맛이 서울 것보다 묵직하다. 걸쭉하다. 탄산이 일체 없고, 김치로 치면 아주 미세하게 군둥내가 난다 할까? 그래서 서울 등 외지인에겐 대번에 호불호가 엇갈린다. 하지만 잔을 거듭하다보면 이내 ‘인’이 박혀 그 ‘개미’를 잊지 못한다. 뭐라 딱히 표현 못하나 시원하고 혀를 잡는 것을 전북인들이 “개미 있다” 할 때의 바로 그 표현 ‘개미’다. 전주막걸리는 전국 공장 막걸리 중 유일하게 천연 암반수를 사용한다. 인천 ‘소성주’, 부산 ‘생탁’도 명주다. 소성주는 넓은 포용력과 쏘는 듯한 청량감을 동시에 갖췄으며 생탁은 마시노라면 부산사투리가 입속에서 충돌한다. 이밖에 지하수로 빚은 여수 ‘개도막걸리’, 장수막걸리와 소성주 중간 쯤인 경기도 표준 맛 ‘지평막걸리’ 등 대한민국은 넓고 마실 건 많다. 이상 모두 공장 제조품이 이 정도니 송명섭 막걸리, 금정산성 막걸리 등 누룩으로 빚은 수제(手製야 말해 무삼하리요. / 임용진(논설고문. ##### 



온누리 추석 잡화(雜話) ////<font size="4">온누리 추석 잡화(雜話) 이번 주말이 추석연휴다. 신소리나 한 번 하자. 명절 땐 맛으로도 귀향한다. 타지 사는 전주 출신들에겐 풍년제과 땅콩센베이, 일품향 군만두, 백일홍 찐빵, 홍콩반점 짜장, 콩나물국밥, 막걸리, 비빔밥 등이 대표적인 고향 맛이다. 대부분이 반세기 이상 문을 열어놓고 있지만 몇 달 전 중앙동 홍콩반점이 폐점했다. 햇볕 따뜻한 이층 창가에서 후루룩 후루룩 하던 그 구수한 연갈색 짜장면 맛을 이젠 더 이상 볼 수 없다. 없어진 게 또 있다. 고스톱 풍정이다. 명절이면 부모 친척 형제 친구끼리 방석 깔고 앉아 안방 건넌방서 마주치던 화투장 소리가 안 들린 지 꽤 오래다. 고스톱을 일본이 한국사람 심성 망가뜨리기 위해 보급했다는 음모론부터 한때 너무 성행했던 나머지 고스톱 망국론까지 나와 두들겨 맞았으니 그 놀이가 잦아들지 않았다면 오히려 이상하다. 하지만 나는 고스톱 옹호론자다. 술을 손위 사람한테 배우듯 고스톱도 그렇게 배우면 된다고 생각한다. 영국 사람들이 식탁에서 브릿지 하듯, 미국 가정이 프로 스포츠 중계로 소통하듯 우리도 명절에 윷놀이, 고스톱 핑계로 이야기 꽃 좀 피우면 안 될 게 뭔가. 고스톱은 남 탓 하는 책임전가가 단점이라고 한다. 하지만 서로 핀잔 주고 얼굴 벌개지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나누면서 즐길 수 있는 게 고스톱의 덕이다. 치다 화내고 후회하면서 인간수양도 된다. 연휴기간 중 뉴스로는 프란치스코 교황 미국방문을 전하는 외신이 좀 참신하다. 게스트하우스에 살며 소형차 애용하는 이 서민 교황이 미국 고질인 빈민, 이민 문제에 어떤 언급을 할까,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를 비롯한 공화당 우파는 또 어떤 반응을 보일까. 명절은 생활 전선 속 짧은 휴전(休戰이다. 추석 덕담이랍시고 상투구에 불과한 단체 인사문자를 내 전화기 속에 마구 난입시키는 건 이 휴전 협정 위반이다. 자제해 주시기 바란다. / 임용진(논설고문. ##### 



임용진 칼럼 어른들의 대한민국(새전북신문, 9월25일자) 임용진 칼럼 어른들의 대한민국(새전북신문, 9월25일자) 나는 평상시 윗옷 깃에 꽂는 노란색 세월호 작은 리본을 결혼식 등 남의 경사에선 가끔 뗀다. 보는 이가 어찌 받아들일까, 눈치를 보아서인데 또 떼면서도 내가 이걸 떼야 하나 망설이고 자신을 못마땅해 한다. 추석도 마찬가지다. 명절에 하필 세월호 얘기람. 하지만 꼭 해야겠다. 기만적인 무관심이 도를 지나친 듯하기 때문이다. 중앙일간지, 공중파 TV 등은 물론이려니와 ‘여당 대표 사위 마약 투약’ 등을 하루 내내 ‘하하’ 대며 곱씹는 종편 유선방송에 이르러선 할 말이 없다. 최근 묻혀 버린 세월호 이슈는 이렇다. ▲ 세월호 특조위 활동 시작 / 예산 제로, ‘낙하산’ 직원 등 때문에 출범 후 반년간 유명무실 고사당할 뻔했던 특조위(정식명칭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뒤늦게 살아나긴 했다. 특조위 고위직(=행정지원실장), 실무직(=조사1과장)을 정부 파견 관리로 충원하는 절충안을 특조위원들이 받아들였고 예산도 당초 신청한 160억원에서 45%가 깎였으나 89억원이 배정됐다. 특조위는 지난 14일부터 앞으로 6개월간 피해자 대상 진상규명 조사신청을 받는다. 수사권, 기소권 없는 독립조사권이긴 하지만 특조위 본령이 이제 시작됐다. 하지만 걱정은 크다. 한국 국가권력이 딴 건 몰라도 1947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이른바 ‘반민특위’ 이후 민간 차원의 조사는 여러 이유로 비틀거나 심지어 방해하는 특별한 재능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 세월호 배·보상 접수 / 해양수산부는 지난 1일부터 오는 30일까지 9월 한 달 간 세월호 참사 피해자 대상 배상, 보상을 접수한다. 보도에 따르면 해수부는 ‘특별법 규정에 따라 신청 기간이 끝나면 원칙적으로 배보상을 더 신청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한다. 하지만 난 상식적으로 알지 못하겠다. 민간 특조위가 피해자 진상규명 조사신청을 받고 결과를 내려면 앞으로 반년도 훨씬 더 걸릴 터인데 정부 해수부는 이달 내에 피해신청을 완료하고 기한 넘기면 보상도 없다니, ‘선 보상, 후 피해조사’는 혹 앞뒤가 바뀐 것 아닌가. 희생자 일부나 화물주, 어민 등 보상이 시급한 이들과 상세한 조사 및 심리적 보상을 우선시하는 이들 사이엔 시간 개념이 다른데도 이 차이를 인정치 않고 몰아치니 정부는 흡사 ‘사건 종결’로 오해한 것 아닌지 모르겠다. ▲ 추모교실, 비겁한 어른 / 안산 단원고엔 당시 2학년이던 희생자들의 교실 10개가 아직도 524일째 빈 자리로 남아 돌아오지 않는 주인들을 추모하고 있다. 올해 2학년 학생들은 딴 교실서 공부하고있다. 또 지난 6일 KBS TV ‘도전 골든벨’에 출연한 한주연(안양 부흥고) 학생은 “기억하고 싶지 않다고 해서 모른 척 하고, 나의 일이 아니라고 해서 못 본 척 하는 비겁한 어른은 되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발언 대부분이 잘리고 불과 몇 초 방영됐지만 이 명료한 세월호 ‘불망’(不忘) 선언은 트위터, 페이스 북에서 큰 이슈가 됐다. 지난 5월엔 같은 프로에 출연한 고창여고생 수백명이 노란리본을 달고 나오기도 했다. 지난해 4월16일을 기점으로 대한민국엔 ‘좌 우’, ‘빈 부’에 이어 또 하나 대립항이 추가됐다. ‘잊지 않는 자’와 ‘잊(으려)는 자’이다. 20, 30대 청년 세대는 임금피크제, 일자리, 연금 등 ‘밥그릇’ 관련해 기성 세대를 불신한 지 이미 오래다. 세월호 이후엔 ‘잊지 않는’ 10대가 여기 가세했다. 혹시 저들에게 불신과 불망의 조기교육을 시킨 것 아닌지, 후과를 어찌 감당할 것인지. 어른들의 대한민국이 나는 심히 우려된다. / 임용진(논설고문 



온누리, 전주 2017 FIFA U20월드컵(새전북신문, 10월1일자) 온누리, 전주 2017 FIFA U20월드컵<font face="Batang" size="3"> 축구는 사람을 울리고 웃긴다. 도하의 비극. 지난 1993년 10월25일 일본 열도가 패닉에 빠졌다. 카타르 도하서 벌어진 미국월드컵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일본은 이라크에게 인저리 타임 종료 10초전에 동점골(22)을 허용하는 바람에 손에 다 잡았던 월드컵 티켓을 놓쳤다. 대망의 첫 월드컵 본선진출이 날아간 순간 국가적 실망과 낙담으로 도쿄 시 전체에 한 동안 정전과도 같은 정적이 흘렀고 이후 곧 비통한 흐느낌으로 변하던 과정을 마침 도쿄에 있던 나는 진하게 목격했다. 그보다 10년 전 한국은 멕시코에서 신기원을 쐈다. 1983년 6월12일 제4회 멕시코 세계축구청소년선수권 4강전 몬테레이 경기장. 우루과이를 상대로 전후반 1대1로 비긴 한국은 연장 종료 1분 전(연장후반 14분) 신연호(당시 고려대1년)의 빨래줄 같은 슈팅으로 ‘4강 신화’를 썼다. 우루과이가 우루루 무너졌다. ‘악바리’ 박종환 감독이 이끈 한국은 이 대회서 붉은 색 상의를 입고 벌떼처럼 달렸다. ‘붉은 악마’의 시작이었다. 축구는 인생이다. ‘세계 불패’인 브라질이 지난해 브라질 월드컵서 독일에 치욕의 17 패를 당할 줄 뉘 알았으랴. 영국의 전설적 선수 리네커가 “축구란 다 큰 남성 열한 명이 90분 공을 쫒아다닌 뒤 결국 독일이 이기는 경기”라 했지만, 독일도 언젠간 눈물을 흘릴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전 프랑스 국가대표 지네딘 지단(43)을 좋아한다. 시오노 나나미도 그를 “결혼하고 싶은 선수, 로마시대 백인대장 같은 이”라고 표현했다. 다 불세출의 선수지만 마라도나가 망나니, 메시가 완전체, 펠레가 천재, 베컴이 째쟁이라면, 지단은 인간의 고뇌와 허탈을 그라운드에 표현한 드문 경기인이었다. 전주가 대전, 인천 등과 함께 오는 2017년 6월 20세 이하 축구월드컵(2017 FIFA U20)을 유치했다. 전주월드컵경기장은 축구팬들 사이에 ‘전주성’이라 불리운다.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에 개최에 이어 ‘전주성’에서 15년만에 더 젊은 월드컵을 볼 수 있다니 가슴이 뛴다. 내가 사는 곳은 참 좋구나! / 임용진(논설고문) 온누리 과메기, 홍어, 칼국수(새전북신문 11월26일자) //



온누리 과메기, 홍어, 칼국수 음식이 기호라고? 권력이기도 하다. MB(=이명박) 맏형이자 최근 포항제철 비리혐의로 구속된 이상득(81) 전 국회부의장은 전성기 시절 매년 12월쯤 국회에 과메기를 자주 반입했다. 그는 지난 2010년 겨울 국회 의원회관 식당에서 과메기 시식회룰 열어 국회의원과 출입기자들에게 직접 맛보기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포항 태생이자 당시 원내대표던 김무성 현 여당 대표가 이 시식회를 후원했으니 비린 과메기 냄새가 그들 권세와 함께 국회에 진동했다. 포장마차에서도 과메기가 한 때 날개 돋친 듯 팔렸으나 MB 퇴진 후엔 그 인기가 전만 못한 듯하다. 과메기는 비릿하고 홍어는 코를 찌른다. 전라남도 식 삭힌 홍어는 한때 야당 상징이었으나 DJ(=김대중)가 청와대 주인이 되자 일순 권력 후각이 됐다. 그 몇 해 전만 해도 낮선 메뉴던 ‘삼합’이 국민음식이 됐다. 종로, 광화문, 여의도에 홍어집이 눈에 띄게 늘고 미중(味衆)은 연신 눈물을 흘리면서도 ‘푹 삭힌 홍어’를 연호했다. 실세 단골인 한 홍어집에 사람이 모이고, 번창하고, 식당 주인마저 목에 힘 주고 다녔으니 나머지 권력 촌극이야 일러 무삼하리요. YS(=김영삼)는 삼선교, 성북동 등 주로 서울 강북 구도심 칼국수집을 다녔다. 특히 북악 스카이웨이에서 자하문 상명대학 쪽으로 내려가기 직전 성북동 ‘국시집’이 그의 평생 단골처다. 강남 ‘소호정’에 다닌 건 비교적 훗날 일이다. 이 집들 공통점은 고기 국물이 듬뿍 밴 경상도식 ‘국시’ 계통이란 점이다. 닭 칼국수나 조개 칼국수와는 맛이 다르다. 인걸이 가고 나니 입맛도 무상하다. 오늘 낮엔 그냥 담백하게 칼국수 한 그릇, 저녁엔 홍어에 탁배기나 한 사발 할까보다. 과메기는? 솔직히 내 입맛엔 별로다. / 임용진(논설고문 /// 



온누리 전북문화관광재단(2016.1.7.) 

나는 전북이 ‘문기’(文氣)의 고장이라고 생각한다. 문화의 기운과 기세가 다른 어느 곳보다 세다. 한 마디로 문기란, 누가 뭐라지 않아도 문화를 생활 가운데 위치시켜놔야 직성이 풀리는 DNA다. 팔 년 전 인천에서 이태를 살았는데 그야말로 ‘해불양수’(해불양수)의 도시다. 바다는 작은 물을 사양치 않는다는데 시장실(=당시 송영길 시장)에선 전라남도 사투리가, 기획관리실장 방에선 경북 포항 사투리가 들렸다. 항구다운 포용심이 인천의 자산이다. 그런데 이상한 건, 인천시립미술관이 없다는 것이다. 있긴 한데, 무슨 일로 건립계획만 세우고 십년 이상을 작은 데서 더부살이하고 그나마 여기저기를 전전하고 있었다. 전주 같으면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인천엔 시립국악단도 없다. 역시 전북 같으면 생각 못할 일이다. 뭐가 좋고 나쁜 게 아니고, 인천의 진취심·포용력 못잖게 거기 살면서 전주 ‘문기’가 그리웠단 얘기다. 전북문화관광재단이 새해부터 일을 시작했다. 지난 15년간 논의만 하다 송하진 현 지사 취임과 함께 법제를 서둘러 조직, 예산을 갖추고 출범했으니 전북으로선 숙원 하나 해결한 셈이다. 못 사는 이들에겐 문화나 관광이 다 우선 순위가 아닌 듯하다. 실제로 문화예술 관련 예산이 매년 깎여 새 기구 출범초부터 전북 문화예술인들이 ‘예산 배정 확대’를 요구하며 서명운동을 하고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일단 만들었다는 게 중요하다. 광주가 2010년, 인천이 2004년 시립 문화재단을 만드는 등 실용 절차에선 전주가 뒤졌지만 일단 물길을 잡았으니 전주 ‘문기’를 쏟을 일만 남았다. 재단의 첫 대표이사는 소설가 이병천(60) 씨다. 단구의 이 사나이는 전북을 대표하는 이야기꾼이면서 지난 2007년 ‘아시아아프리카문학페스티벌’을 전주에서 성공적으로 치른 주인공이다. 모옌(중국), 나달 엘 사다위(이집트) 등 60개국 작가 80명이 참가한 이 단군 이래 최대 문학행사기간 동안 전주는 세계문학의 수도였다. 방송국 PD 출신이기도 한 이병천 대표에 내재한 조직, 행정 역량이 재단에서 한껏 발휘되길 바란다. ‘문기’는 전북의 자존심이자 피우면 꽃이고 닦으면 돈이 되기도 할 것이다. /임용진(논설고문. #####) 







온누리, 히말라야(2016.1.14.)




영화 ‘히말라야’가 새해 극장가 화제다. 지난해 말 상영 시작 이래 최단기간 700만명을 넘어섰다 한다. 




‘히말라야’(감독 이석훈, 출연 황정민·정민)는 엄홍길의 ‘휴먼원정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산악인 박무택과 장민은 지난 2004년 에베레스트 등정 후 하산과정에서 조난당한다. 이들을 구하기 위해 대원 백준호가 산에 오르나 그마져 함께 실종된다. 엄홍길은 이들 아끼는 후배 세 명의 시신을 되찾기 위해 2005년 ‘초모랑마(=에베레스트) 휴먼원정대’를 결성한다. 등정이 아닌 시신 수습을 목표로 한 원정은 인류 등산 사상 처음이다. ‘히말라야’는 고도 8,000m 설산에서 이뤄지는 산악인들의 우정과 도전을 그리고 있다. 




네발과 티벳, 중국에 걸친 광대한 지구의 지붕 ‘히말라야’엔 8,000m 급 이상 봉우리가 스무개 쯤 있다. 이른바 ‘8,000급 14좌’란 그 중에서도 주봉 14개를 뜻한다. 이 ‘14좌’를 첫 완등한 이는 살아있는 전설 라인홀트 메스너(72·이탈리아)다. 무산소와 알파인 스타일로 고봉을 누빈 메스너 외에도 예지 쿠크츠카, 에르하르트 로레탄 등도 14좌의 전설들이다. 한국에선 엄홍길이 첫 완등(2000년)했고 이후 박영석, 한왕룡, 김재수, 김창호, 오은선 등이 뒤를 잇고 있다. 




‘좌’(座)란 그냥 좌석이 아니고 보살, 부처, 고승의 자리다. 그래서 별자리를 ‘성좌’(星座)라 하고 열 네 개 높은 봉우리도 ‘14좌’로 존칭한다. 혹자는 엄홍길 등의 14좌 등정을 ‘제패’라 표현하고 무슨 운동경기처럼 ‘기록’이란 말도 쓰는데 이는 매우 참담할 뿐이다. 설산에 혼을 묻은 예지 쿠크츠카, 우에무라 나오미, 고상돈, 박영석, 박무택, 장민, 백준호, 지현옥, 고미영 등이 들으면 코웃음칠 것이고 살아 돌아온 엄홍길 등도 몸을 사릴 것이다. ‘14좌’란 겸손과 성실, 용기, 동료애에 주는 대자연의 백지 훈장일 뿐이다. 




14좌 완등자 중 한왕룡은 군산 출신, 오은선은 남원 출신, 11좌 완등 후 하산 중 사망(2009년 낭가파르밧)한 고미영은 부안 출신이다. ‘히말라야’를 보고 영화관을 나서는 관객들 얼굴엔 대개 눈물자국이 있다. 고산 뿐 아니라 진도 근해에도 우리 동료, 동포, 어린학우들이 아직 갇혔는데. 영화관 밖 현실은 무척 답답하구나. / 임용진(논설고문)








임용진 칼럼, 산의 향기(2016.1.15) 




삶의 향기가 이 코너 제목인데, 과연 그 향기란 뭘까. 




인간사 수많은 직업 중 가장 멋지면서도 이해 안 되는 직업 중 하나가 전문 산악인이다. 도전, 사내다운 멋이 있고 남보다 월등한 체력과 집중력과 의지력이 부럽지만 한편 그 무서운 데를 왜 가나, 사서 고생하나, 가정은 누가 돌보나 하는 등 걱정 때문에 막상 나 보고 하라면 절대 못 할 일이 그것이다. 특히 마지막 대목, 가정에 관해선 많은 여성들이 ‘산악인은 무책임하다’고 분노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산악인도 사람이다. 찬 바람 살을 에는 빙벽에서 비부악하거나 크레바스 벼랑에 쳐박히다 간신히 걸려 식은 땀 흘리는 그들도 자식과 아내(남편), 부모에 때문에 자주 속으로 운다. 물론 질질 눈물 흘리진 않는다. 돈벌기와 거리 멀다는 건 모든 이가 다 인정하니 아예 맘이 가볍다. 하지만 가장 서운한 건 주변의 몰이해다. 예술가도, 카레이서도, 이종격투기 선수도 인정받는 직업이다. 이에 비해 산악인은 돈도, 존경도, 제대로 된 직업인으로서 인정도 없다. 혹 먹고살기 위해 상업등반이라도 할라치면 ‘버렸다’고 손가락질 하고 전성기 후 이벤트성 도전을 하면 ‘한물 갔다’고 외면 한다. 하지만 그들의 자부심은 매섭다. 그 단적인 예를 본다.




▲허영호(63) : 북극해는 지름 2,000km의 얼음바다다. 수많은 원정가, 탐험가들이 여길 걸어서 건너려 했으나 ‘난빙대’ 때문에 실패했다. 난빙대란 북극해 주변을 빙 두른 평균 너비 150km 이상의 크고 작은 얼음산 구역이다. 바다가 해변과 부딪치며 녹고 얼기를 반복해 만든 울퉁불퉁한 이 ‘악마의 벽’, 난빙대를 건너면 북극 원정은 99%이상 성공했다고 봐도 틀림없다. ‘전설’ 라인홀트 메스너(72·이탈리아)도 1995년 3월초 이 난빙대에 막혀 후퇴했다.




메스너 실패 며칠 뒤 러시아 헬기 안트노프 24 한 대가 그 난빙대 상공을 날고 있었다. 허영호 대장을 비롯한 한국의 ‘북극해도보횡단원정대’가 탔다. 작은 얼음동산이 삐죽삐죽 칼처럼 끝도 없이 이어진 난빙대를 굽어보며 그들은 말이 없다. 러시아인 헬기 기장이 허영호에게 제안했다. “저긴 걸어서 못 간다. 난빙대 끝 부분에서 내려주겠다” 허영호가 잠깐 있다 말했다. “노! 기수 돌려라. 우린 처음부터 시작한다.”




허영호 원정대는 세 달 뒤인 그해 6월19일 캐나다 엘즈미어 섬 워드헌터 곶에 도착해 세계 원정사상 두 번 째 북극해 도보횡단을 성공시켰다. 허영호가 그날 헬기 기장에게 ‘예스’ 했다 하더라도 아무 문제 없었을 것이다. 전문가 말고 누가 시비할 일도 아니다. 하지만 허대장의 ‘노’ 덕분에 원정대는 99일간 죽을 고생, 위험한 고비, 동상과 함께 대자연에 대한 떳떳함을 얻었다. 진짜 원정을 성공시켰다. 




▲박영석(2011년 사망·당시 48세) : 그는 북극해에서 허영호와 반대 결정을 내렸다. 히말라야 8,000m 이상 고봉 14좌를 한국인 최초로 완등한 박영석은 에너지 덩어리, 쾌속의 사나이, 기록의 사나이다. 1993년 에베레스트를 시작으로 2001년까지 8년2개월만에 ‘14좌’를 모조리 올랐다. 1998년 한 해에 ‘6좌’나 올라 기네스 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그런 ‘기록’을 의식해서였을까. 그는 2005년 4월 비행기 타고 난빙대를 건너 북극점 원정을 시작했다. 4월30일 도보로 북극점에 도달, 또 다른 기록을 추가하나 ‘쉬운 길’을 택한 찜찜함은 남았다. 




박영석은 이후 2009년 에베레스트 남서벽에 ‘코리안 루트’를 개척, 원정의 질에 관한 아쉬움을 말끔히 씻는다. ‘히말라야 14좌 모두에 코리안 루트를 내겠다’는 게 그의 포부였다. 이때까지 한국 산악인들은 남이 내 놓은 길을 따라 정상에 올랐다. 등정(登頂)만 했지 등로(登路)가 없었다. 히말라야 산신령이 조금만 더 너그러웠던들 박영석의 꿈은 이뤄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2011년 10월 안나푸르나 코리안 루트 개척 중 실종된다. 그의 묘비가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에 있다. 박영석은 세계의 지붕이 됐다. 




요즘 만원사례인 영화 ‘히말라야’(감독 이석희)에 보면 엄홍길(56)의 꿈이 ‘16좌 완등’ 운운 하는 대사가 나온다. 하지만 그런 거 다 팔기 위해 언론 등이 만든 거다. 허영호, 엄홍길, 박영석 등은 산 이외 훈장이 필요 없는 족속들이다. 아는 듯 모르는 듯, 먹고 살고 원정대 비용도 마련하기 위해 묵인했지언정 저급한 ‘마케팅 용어’를 그들 본심으로 오해해선 안 된다. 




히말라야 ‘14’좌를 세계 첫 완등한 라인홀트 메스너는 1988년 제15회 캘거리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가 수여한 공로 메달을 이렇게 거부했다. “등반에선 싸우는 상대도 없고, 심판도 없다. 단지 나 자신과의 싸움이 있을 뿐이다.” 




시성(詩聖) 라빈드라나드 타고르도 말했다. “참다운 목표는 최고의 한계점에 도달하는 게 아니라 완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 완성은 끝이 없다” 남이 몰라 주더라도 무한히 높은 곳에 올라 무한한 완성을 추구하는 산꾼들에게 고산행은 향기 짙은 한 편 시다. 누가 시인에게 이유를 묻겠나. /임용진(논설고문)










온누리, 대한(2016.1.21.) 




너무 따뜻해 올핸 수도 한 번 안 얼고 지나나 했더니 오늘 내 집 온수가 얼었다. 그리고 아뿔싸, 뒤뜰 울타리에 내놓은 소나무 분재와 화분 몇 개도 홉박 눈을 이고 있어 황급히 실내에 들였으나 행여 벌써 동해(凍害) 입지 않았나 걱정 된다. 




오늘이 대한(大寒)이다. 말이 ‘큰 추위’지 사실 보름 전 ‘작은 추위’(=소한)보다 못한 게 보통 절기의 흐름이다. 그래서 속담에 ‘소한 얼음 대한 가서 녹는다’, ‘대한이 소한에 놀러가 얼어 죽었다’, ‘대한 끝에 양춘(陽春·따뜻한 봄) 있다’고 했다. ‘춥지 않은 소한 없고 포근하지 않은 대한 없다’고도 했다. 




일년 이십사 절기는 매 계절에 여섯 씩 분포되는데 겨울은 ‘추위 들임’(=입동)에서 시작돼 ‘작은 눈’(=소설), ‘큰 눈’(=대설), ‘겨울 클라이막스’(=동지)를 지나 한 굽이 꺾이며 ‘작은 추위’(=소한), ‘큰 추위’(=대한)로 끝난다. 모두 보름 간격이다. 그러니 대한은 겨울 끝이고 푸릇푸릇 봄이 일어서는(=입춘) 바로 앞이다. 




달력상 연말 연시는 이미 지났으나 계절적으로는 대한이 한 해 끝이요 입춘이 새해 시작이다. 제주도에선 그래서 대한 전후한 요즘을 ‘신구’(新舊)라 한다. 묵은 해, 새해가 갈마든다는 의미의 ‘신구’는 이사에 좋다는 속설이 있어 요즘 제주에선 요즘 전·월세값이 오르고 방 구하기도 어렵다.




‘대(大)’, ‘소(小)’ 이름값을 하려는 것인지 올해는 이례적으로 대한이 훨씬 춥다. 기상대 발표로는 북극 기온 상승으로 제트 기류 속도가 느려져 한반도에 영향을 미친 것이란다. 앞으로 며칠 더 추울 것이라지만 이 정도 추위야 여느 겨울도 한 두 차례 보여주는 것, 사계절 뚜렷한 곳에 사는 이로선 오히려 반갑기조차 하니 위축되진 말자. 올해 입춘은 보름 뒤인 다음달 4일이고 또 설이 곧 닿아있다. 그믐달, 섣달이 오가는 대한 ‘신구’여서 또 무척 바쁘고 즐거운 계절이다. / 임용진(논설고문)








온누리, 눈의 국적(2016.1.28) 



지난주 대한 폭설 이후 소낙눈이란 말이 자주 들린다. 여름 소낙비처럼 겨울에 단기간 강하게 퍼붓는 눈이 그것이다. 이전에도 간간히 쓰이던 말이나 이번에 새삼 소낙눈 위력을 실감했다. 서해안에서 제주까지 불과 하루 이틀새 수십 센티씩 쌓였다. 제주 공항 등이 마비되고 전국이 설설엉금 기어 다녔다. 




이번 소낙눈을 볼작시면 함박눈도 일부 있으나 전반적으로 가루눈이었다. 장독대에 밤새 쌓인 복스런 눈에 아침 창이 환해지고 누렁이 컹컹 짖으며 발자국 남기던 그런 눈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봤던 한국 눈이 아니라 흡사 북극이나 캐나다 북쪽지방에서 경험한 그런 가루눈이다. 겨울철 영하 수십도까지 내려가는 추운 나라에 내리는 눈은 일단 크기가 작다. 습기 전혀 없고 쌀가루보다 약간 큰 조그만 눈이 밀가루처럼 우수수 떨어진다. 




잿빛 하늘에서 멋들어진 춤사위 뽐내며 우왕좌왕 천천히 낙하해 옷이나 손에 닿은 순간 약간 찬기를 남기고 찰나에 스러지는 한국 함박눈(=snow flake)과 달리 북극 가루눈(=powder snow)은 바람 없는 날은 거의 줄눈으로 수직 강하하고 바람 센 날은 아예 블리자드(=폭풍설)처럼 횡으로 얼굴을 때린다. 함박눈은 곡선이고 이번 가루눈은 직선이었다. 함박눈 내리면 대개 포근하지만 이번 눈 내릴 땐 추워 목을 싸매야만 했다. 




에스키모 말엔 눈 색깔, 형태에 관한 표현만 수백 개가 있다 한다. 그 정도까진 아니지만 우리도 다양한 편이다. 적설량 관련해서도 겨우 발자국 날 정도로 약간 내린 게 ‘자국눈’, 땅을 살짝 덮은 건 ‘살눈’, 30cm 정도 쌓인 건 ‘잣눈’, 키 만큼 쌓인 건 ‘길눈’이라 했다. 이번 폭설은 ‘잣눈’이었으나 북극 온난화로 앞으로 ‘길눈’에 대비해야 할 게 뻔하다. 




삼한사온은 거의 없어졌고 눈 내린 날 포근하다는 것도 곧 옛말이 될 게다. 스키 타기엔 이번 같은 가루눈이 최상 조건이다. 2018평창동계올림픽대회 조직위원회가 좋아하겠다. 하지만 난 춤 추는 조선눈, 복스런 함박눈이 훨씬 좋다. 이것도 필경 사라질 것, 그래서 더 안쓰러운갑다. / 임용진(논설고문)








온누리 - 난(蘭) (새전북신문, 2월4일자)



  동양란 꽃 향기는 유향(幽香)이다. 숨은 선비를 은유한다. 화려 요란하지 않으니 잘 관찰하지 않으면 드러나지 않는다. 유향, 난향은 킁킁대며 냄새 맡는 게 아니다. 두 손 귀에 모아 유심히 숨죽여 듣는 거다. 작은 소리 포착하듯, 정신집중하고 향기(=香)를 들어야(=聞) 하는데 들리는 이에겐 그 향기가 ‘난향만리’(蘭香萬里)지만 안 들리는 이에겐 지척이라도 마이동풍이다. 




   매,란,국,죽 문인화 사군자 중 난초는 유독 그리지 않고 ‘친다’고 한다. 난 잎은 칼과 같다. 굳고 뾰죽한 게 선비 기개다. 그걸 붓으로 죽죽 쳐 나감은 맘 속에 기른 수양, 공부, 인내, 결기의 표시다. ‘기르다’나 ‘치다’나 다 수양, 배양의 뜻이 있다. 또는 겨울 초입 가지치기 하듯 망설임 없이 먹으로 백지를 가르는 것이니 아무래도 난잎은 ‘그리다’보다 ‘치다’가 훨씬 어울린다. 




   문인화 묵란은 옛부터 수월 임희지·표암 강세황·완당 김정희 등이 잘 그렸고 근세엔 석파 이하응이, 최근엔 시인 김지하가 즐겨 그렸다. 특히 고종 아버지인 대원군 이하응의 석파란이 유명하다. 그는 정권을 잡기 전, 파락호 시절부터 난을 쳐 팔아서 생계했으며 후일 청나라 천진으로 3년간 압송돼 불우낙척했을 때도 난 치기로 소일했다. 저항시인 김지하 역시 암울한 유신시절 사형수 독방에서 난을 치며 생을 이었다. 완당, 석파, 지하 등에게 묵란은 칼이고 저항이고 사람 향기, 희망의 향기였다. 




   그제(2일) 박근혜 대통령 64회 생일에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선대위원장이 동양란 화분을 선물로 보냈으나 청와대로부터 세 차례 퇴짜 맞고 우여곡절 끝에 받아들여졌다 한다. 선물로 보낸 난은 30만원짜리 ‘황금강’이었다 한다. 이는 일반 한란 등보다 키가 작고 잎이 노릿한 황금색이어서 꽃보다 잎을 감상하는 품종이다. 고가의 난을 보내고 사양한 이유는 잘 모르겠으나 그들이 하필 난으로 농(弄)한 것은 불만이다. 이제 난향마져 정치가 가져가려는 것인지. 제발 그 분들께 부탁하거니와, 오는 봄 내 작은 방 춘란 향기까지 오염시키진 마시라. / 임용진(논설고문)








온누리, 에곤 바르(새전북신문, 2016년2월18일자) 



  지난해 타계한 에곤 바르는 동방정책과 독일 통일 입안자다. 사회민주당 총리던 빌리 브란트의 전폭적 후원 아래 바르는 지휘봉을 잡고 1960년대부터 독일 통일을 이끌어 마침내 1990년 10월 무너진 베를린 장벽 위에서 ‘환희의 송가’를 부르게 한다. 




   그는 “통일을 항상 생각한다. 그러나 통일을 말하지 않는다”고 했다. 바르는 통일을 직접 언급해 미국, 구 소련 등을 자극하는 일을 피했다. 대신 동·서독 통행 허용이나 가족 방문같은 ‘작은 발걸음’으로 변화를 시작해 나중에 이를 기정사실화 했다. 




   브란트가 이끈 사회민주당은 구 소련, 동독 등 공산주의 연합에 다가서 독일 통일 당위성을 이해시키며 실마리를 풀었다. 이게 ‘동방정책’이다. 반면 당시 야당인 기독민주당의 외교정책은 ‘할슈타인 원칙’이다. 동독과 수교하는 나라와 단교하고 서독은 자유주의 서방과 유대를 굳혀 힘 우위로 통일을 압박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1982년 총선서 사민당이 헬무트 콜의 기민당에 진 뒤에도 바르의 동방정책 기조는 유지된다. 콜 총리가 현실을 받아들여 기존 할슈타인 원칙을 포기했을 뿐 아니라, 어제까지 정적이던 바르로 하여금 2년 더 재직하며 통일설계를 완성토록 했기 때문이다. 




바르는 생전에 한국 개성공단을 ‘대단한 상상력’이라고 극찬했다. 당시 정동영 통일부장관에게 “한국 통일은 독일식으로도, 베트남식으로도 갈 수 없다. 개성공단에서 그 해법을 본다”고 말했다. 그는 또 “경제적 곤경이 정권 붕괴를 초래할 것이란 생각은 환상이다. 남이 경제적으로 옥죌수록 그들은 자신의 허리띠를 더 졸라맨다. 결과적으로 울브리히트(당시 동독 지배자)의 입지를 강화하고 분단을 심화할 뿐”이라고도 했다. 




   요즘 통일부는 분단부, 또는 반(反)통일부가 돼버렸다. 홍용표 통일부 장관 입으로 개성공단 폐쇄를 발표한 것부터 블랙코미디다. ‘흡수통일’, ‘적화통일’, ‘궤멸’ 등 남북양쪽에서 통일에 관한 말이 많으나 진정한 염원은 없다. 2년 전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 대박’ 발언은 일순 신선했으나, 쉽게 대박이 오지 않을 것이니 쉬운 포기도 예상됐다. 바르는 “기적을 기다리는 건 정치가 아니다”고 했다. 통일을 기적처럼 바라는 이는 정치가 자격이 없다. / 임용진(논설고문)



임용진 칼럼, '전북인 소석'을 추모함(새전북신문, 2016.2.29.)



   소석 이철승이 타계했다. 내가 그를 만난 게(실은 그가 날 만나준 게) 지난해 10월26일이다. 그게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일이어서 날짜를 기억한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헌정회 원로의원회관에서였다. 모 잡지 인터뷰 건이었는데 아마 이게 그의 마지막 공식 인터뷰였을 것이다. 정치, 체육 등 문답을 끝낸 뒤 오후 두시 쯤 소석이 늦은 점심을 사줬다. 굴비 백반이다. 점심은 사담이니, 자연 전주 얘기가 나왔다. 그는 내게 고향 선배, 중·고·대학교 선배다. 내 아버지보다 칠 년 연장이니 자연 백부가 조카 대하듯 말한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갈라지는 듯하면서도 울림이 있다. 특유의 말투를 살리기 위해 좀 번잡해도 녹음 그대로 전달한다.




   “나는 파티 등에서 개인 소개를 이렇게 얘기해. 나는 맛과 멋을 흥과 신명으로 비비는 전주 비빔밥 출신이요. 그게 의미가 있어. 인간이 맛을 알아야 하고, 멋을 알아야 한단 말이여. 전주 비빔밥이 맛과 멋이 있잖어, 응? 그러면 흥이 나야 할 거 아녀. 육자배기라도 한 마디 하고, 춤도 추고 단가라도 부르고. 그래서 흥이 나면 신명이 나는 거지. 그것이 일제시대 탄압 속에서도 이 민족을 살린 것이고, 그것이 내 건강과 장수의 비결이여. 그래서 내가 후진이나 정치인들에게 내 소개를 이렇게 하고, (전북 출신) 동지들도 그럽시다 하는 거여. 이런 얘기 하는 놈이 누가 있어?”




   소석의 보스다운 화법이 전달됐는지 모르겠다. 그 내용은 고향 자랑이고 비빔밥 사랑이다. 1970년대 초 어느날 흑백TV 뉴스로 방영된 야당영수 이철승의 대정부 질의 장면이 생각난다. “장관! 기요, 아니요를 분명히 하시오!”. 소석에게 전주 말은 국회건 어디서건 대한민국 표준어였다. 




   7년 전에도 소석을 특집 인터뷰 했다. 정동영 당시 제17대 대통령선거 후보가 이명박 후보에게 참패한 직후, ‘전북 정치, 어디로’를 묻기 위해 2009년 12월19일 서울 무교동에서 그를 만났다. 전북엔 대통령 될 뻔한 인물이 둘 있다. 소석과 정동영. 둘 다 야당 영수급이고 소석은 특히 5·16 군사혁명 전까지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보다 훨씬 거물 정치인으로서 30년 아래 고향후배, 중·고등학교 후배인 정동영에게 해 줄 말이 분명 있을 거라 판단했다. 역시 당시 육성을 그대로 전하면 이렇다. 




   “정치란 건 질 때도 있는 거여. 승부 이후가 중요해. 나도 고향을 사랑하지만, 그러나 공인으로, 정치인으로 살아오면서 지역감정이란 졸렬한 카테고리에 예속되진 않았어요. 헌정 사상 최초로 배출한 도 출신 대통령 후보를 당선시키지 못해 도민들이 섭섭하겠으나 대선은 전북 대표가 아니라 국가 대표를 뽑는 자리여. 크게 졌으니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것을 객관적으로 따지고 잘못을 되풀이 않아야 미래가 있어.”




   그는 1988년 13대 총선에서 DJ바람을 업은 손주항에게 무려 6만여표 차로 참패해 정계 은퇴한다. 득표율 고작 9.8%. 당시 소석 캠프 가족표도 안 나왔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소석 자신이 “묘목을 키워 사람들이 편히 쉴 정자를 만들 수 있을 만큼 자랐는데 꺾어버린 셈”이라고 섭섭해 했다. 하지만 섭섭한 걸로 끝, 다른 정치가들처럼 유학, 칩거, 은퇴번복, 복귀 등으로 간을 보진 않았다. 이때가 소석 66세. 이후 그는 자유총연맹, 서울평화봉사상재단, 헌정회 등 명예직에만 관계하며 자신이 졸렬해짐을 경계했다. 




   어떤 이는 승부에 목숨 걸고, 어떤 이는 피 터지게 싸우다가도 일단 경기가 끝나면 원위치한다. 김대중, 김영삼, 이철승이 다 마초지만 두 김 씨가 전자라면 소석은 후자였다. 그는 7선의원다운 완력을 자랑하되 표독하지 않았고 절치부심하되 상성(喪性)에 이른 적이 없다. 김제 만경처럼 넓고 유복한 그에게서 나는 천생 ‘평야인’(平野人)을 봤다. 그래서 굳센 섬 출신, 짠물들에게 애초 패배가 예정됐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소석은 자주 “내가 스포츠맨”이라고 자랑했다. 대학(보성전문) 때부터 역기를 들어 팔순에도 근육 탄탄했으며 평생 술, 담배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같은 헬스 매니어라 할 지라도 김영삼 전 대통령을 스포츠 맨이라 하진 않는다. YS에게 스포츠는 정치를 하기 위한 체력이었을 뿐이다. 이에 비해 소석은 평생 거의 종교적으로 바벨에 매달렸다. 자신을 채찍질하는 잣대, 엄격함, 자제력이 그의 바벨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스포츠맨답게 그는 1988년의 총선 참패를 ‘졌으면 진 거지’ 하고 받아들인 듯하다. 사석에서 그에게 이렇게 묻기도 했다. “전주 사람들에게 서운하시죠?” “예전에 잠깐 그랬지. 하지만 경기에 졌다고 심판을 원망할 순 없잖어?” 




   소석에게 결국 묻지 못한 말은 ‘당신이 사쿠라였소?’다. 인생 대선배에게 차마 실례를 하지 못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돌직구라도 던졌어야 했다. 소석 특유의 화법으로 짐작하자면, 아마 이렇게 답했을 것이다. “국가 안보는 방죽의 둑이요, 자유는 방죽의 물이기에 서로 의존적인 거요. 월남이 패망하는 마당에 우리도 안보 지키며 경제성장하고 정권경쟁도 허는 것이지. 쥐 잡자고 장독대 깨뜨려서야 되겄어?”




   최근 소석의 소원은 ‘이평’(二平)이었다. 내후년 2018평창동계올림픽을 보는 게 첫째 ‘평’이요, 남북통일 돼 평양 가서 냉면 한 그릇 하는 게 두 번 째 ‘평’이다. 스포츠맨답고 정치인다운 바램을 둘 다 이루지 못했다. 그래도 이미 맘이 평화로웠던 전북의 거목이시여. 부디 영면하소서. / 임용진(논설고문)








온누리, 임진택(새전북신문, 2016.2.25.) 



  "윤봉길 거동 봐라 / 일장기 내던지고 군중 속을 헤치더니 경축대로 뛰쳐나간다. / 물통폭탄 도시락폭탄 뇌관을 재빨리 제거터니 / 휙 휙 단상 위로 투척하니 / 경축대 한 복판에 떨어진 폭탄들이 쾅! 쾅! / 벽력같은 소리내며 연속으로 폭발한다” 




   창작판소리 ‘백범 김구’ 중 윤봉길 거사대목이다. 박진감 넘친 휘모리 장단과 실감나는 도시락 폭탄 투척 발림에 창자와 청중이 혼연일체됐다. 지난주 목요일(18일·서학동 국립무형문화유산원) 판소리 ‘백범 김구’를 들었다. 재미있고 의미 있고 눈물 났다. 




   세 시간이나 걸리고 결말 뻔한 백범 일대기여서 첨엔 ‘지루하겠군’ 생각했으나 이 선입견은 금세 깨졌다. 공연장을 거진 채운 이 백여명 청중 추임새와 박수가 내내 그치지 않았다. ‘백범 김구’는 문화기획자이자 소리꾼인 임진택(67) 작창이다. 소리는 세 부분으로 나눠 정읍출신 명창 왕기철(55), 왕기석(54) 형제와 작창자 임진택이 분창했다.




임진택은 ‘비갭(=非甲)이’다. 경기고, 서울대 졸업(외교학과), 전직 동양방송 PD(공채 12기) 출신인데다 소리도 스물 중반에사 처음 시작해 얼핏 소리 내력보다 학벌이 좋은 아류(亞流)로 여길만하나, 이 비갭이가 ‘오적’, ‘똥바다’, ‘오월광주’, ‘남한산성’ 등을 지어 한국 현대 판소리를 확 업그레이드시켰다. 




   임진택은 민청학련간첩단 조작사건에 연루된 ‘빵잽이’다. 김지하, 김근태, 이철과 감방동기다. 1974년 출옥후 어느날 서울 명동 까페 테아뜨르에서 명창 정권진의 수궁가에 반해 그 이튿날 이문동 국악예술학교로 정권진을 찾는다. “서울대 생이 먼 판소리?” “판소리로 ‘오적’을 부르고 싶습니다. 가르쳐주십시오.” 국창 정재근·정응민을 조·부로 둔 진짜 광대 정권진은 이 책상물림을 제자로 허락해 이후 한국 판소리에 새 숨을 불어넣는다.




   일찍 서울 물을 먹긴 했으나 임진택은 워낙 이 고장 김제에서 나고 자란 이다. 그는 여섯 살 때 원평 장에 갔다가 인파 가득한 시장 한 가운데서 “뭔가 텅 빈 것”을 느꼈다고 한다. 동학혁명 최후의 패전지인 바로 그 원평, ‘텅 빈 동학’이 자신의 삶의 원형이라고 임진택은 생각한다. 판소리 ‘동학’을 작창하는 게 그의 꿈 중 하나다. / 임용진(논설고문)








‘게하’ 세계여행 (새전북신문, 2016.3.2.)



   3월동풍 건듯 부니 언제 눈이 퍼부었던가, 분명코 봄이로구나.




   게스트하우스를 3년째 하다 보니 이게 작은 지구란 생각이 든다. 지구촌 여러 인종이 찾아 와 붙박이인 내게 즐거움을 준다. 유목민을 보는 정주민 느낌이랄까. 깨닫지 못한 걸 새삼 하나씩 던지고 가니 가만히 앉은 나도 기본적으로 각국 게스트 사이를 쉴 새 없이 오가는 세계 여행객이다. 




   게스트하우스는 사업자등록증 상 ‘외국인도시민박’ 업종이다. 내 집엔 미국, 일본인보다 유럽, 중국인이 많이 온다. 아마 한옥마을 전체 국가별 유입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일본 여행객은 최근 한일관계 등 때문에 한국내 유입 자체가 준 듯하다. 




   세계 여행 챔피언은 단연 독일 사람들이다. 일년 중 해외여행일수가 가장 많은 나라답게 독일인들은 여행 베테랑이다. 지적으로 성숙돼있고 눈동자 차분하고 공부를 많이 해 온 듯 핵심만 물어본다. ‘한옥마을에서 어디를 갈까’ 하는 두루뭉수리한 질문을 하는 이는 독일인이 아니라고 봐도 좋다. 그들은 ‘삼백집과 왱이집 맛 차이가 뭐냐’, ‘마이산을 가려는데 북부 주차장과 남부주차장 어디가 좋냐’는 식으로 꼬치꼬치 묻는다. 독일서 펴낸 한국여행 안내서엔 꼭 마이산이 있어 독일 게스트한텐 아예 내가 먼저 진안행을 권한다. 서비스 한 방을 앞서 날려주면 그들 반응이 괜찮다. 




   독일인들은 꼭 후기를 남긴다. 어느 게스트하우스에 대한 평가나 정보를 다른 여행객과 공유하는 걸 거의 의무로 생각하는 듯하다. 그런데 그 후기도 보안 몇 점, 위치 몇 점, 서비스 몇 점, 청결도 몇 점 하는 식으로 꼼꼼히 나눠 쓴다. 이에 비해 프랑스인들은 후기가 대개 후하다. 세목별로 나눈다기보다 분위기, 주인과의 교감에 평가가 좌우되는 듯하다. 빈티지 좋은 보르도 와인을 마신 후 빈 병이 아까워 라운지에 뒀더니 프랑스 게스트들에게 효과가 좋다. 그들은 대개 목소리 잔잔하고 우울한 듯, 몽상하듯 말한다. 프랑스 사람은 어딘가 다르다. 




   영국인들은 일반적으로 음식에 담백하다. 아침메뉴로 제법 풍부하게 이것저것 차려내도 시리얼과 우유로 간단히 때우는 이가 많다. 유쾌하고 잘 생기기론 역시 이탈리아 사람이다. 그들은 눈을 똑바로 보며 새처럼 지지귄다. 이탈리아인들끼리 커플로 올 때도 많은데 그럴 땐 주의해야 한다. 자칫 게스트 중 누가 이탈리아인의 여자친구에게 호감있다는 오해라도 줄라치면 게스트하우스가 부숴질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한국 젊은이들과 가장 잘 어울리는 것도 이탈리아 게스트다. 




   게스트하우스는 숙식 뿐 아니라 친교장소이기도 하다. 밤새 라운지를 시끄럽게 하기론 한국 사람 따를 이가 없다. 지난날 부여, 옥저시대부터 가무음주를 즐겼다는 신나는 민족답게 한국 젊은이들이 일단 자기소개 후 한 잔 음주 게임을 시작하면 몇 시간이고 박수, 함성이 이어져 주인 화를 돋구고서야 그치기 일쑤다. 음주 게임은 일종의 권주가다. 낯선 분위기를 술과 함께 순식간에 기화시키는데 그 종류만도 수 십 가지다. 이걸 번갈아가며 몇 시간씩 발산하는 건 한국인과 이탈리아인들 뿐이다. 다른 외국인들은 분위기에 압도당해 혀를 내두르지만 이탈리아 게스트는 조금만 배우면 곧 게임을 이끈다. 




   중국인들은 정말 실용적이다. 전주 택시운전사에게 택시값이 많이 나온 거 아니냐고 ‘고소하겠다’고 중국말로 소리 지를 정도로 에너제틱하고 게중 어떤 이는 미니 밥솥을 지참해 게스트하우스 내에서 밥까지 지을 정도로 프래그마틱하다. 옷차림도 평범하고 표정도 꾸미지 않으나 우리와 정서 통하고 사람들이 ‘진국’이어서 난 중국 게스트들을 좋아한다. 옷차림 화려하기론 세계 각국 중 가운데 단연 한국 게스트가 으뜸이다. 옷 뿐 아니라 배낭, 우산, 모자까지 ‘깔마춤’(색깔맞춤) 하고 서울에서 전주 오는데 너무 번거로울 듯한 바퀴가방을 끌고 오는데 사실 이는 여행 ‘초짜’란 광고다. 하지만 어떤 미숙도 그들 깔깔대는 웃음이 무마해주니, 청춘은 진정 아름다와라! 




   가장 잊지 못할 게스트는 오히려 노인이다. 각각 다른 시기에 온 남성 홀로 여행자 세 명. 70대 초·중반 스페인과 미국 게스트, 80대 초반 호주 게스트. 이들은 몇 년 째 세계를 돌고 있었다. 집 없다는 게 공통점이다. 생각날 땐 일년에 한 두 차례 모국에 들러 가족을 만나면 그뿐, 또 짐을 꾸려 떠난다고 한다. 집 팔아 떠난 길, 언제 끝낼지 모르니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저렴한 숙소를 이용하는 듯했다. 길 흐르고, 시간 흐르고, 인생도 흐른다. 여정이 길고 그들 배낭은 간소했다. 저런 노년도 있구나. 누군 크루즈 탄다지만, 그와는 차원이 다른 게스트하우스 인생 여행이 있단 걸 난 그들에게서 배웠다. 언제까지 알탕갈탕할 것인가. / 임용진(논설고문)



온누리, 슈퍼 화요일(새전북신문, 2016.3.3.)


어제(2일) 미국 슈퍼 화요일이 끝났다. 미국인들은 중요한 건 다 ‘슈퍼’를 붙인다. 슈퍼 마켓, 슈퍼 볼, 슈퍼 맨, 슈퍼 모델 등. 슈퍼 화요일은 선거 흥행을 위해 만든 미국식 이벤트다.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 3월 첫 번째 화요일 미국 남부 21개주가 동시에 각 당별 후보 경선을 치른다. 미국 50개주 가운데 약 반이 같은 날 후보를 경선하니 대선 예고편 중에서도 ‘초강력 슈퍼 예고편’으로 관심을 끈다.




  올해 흥행은 괜찮아 보인다. 타이틀 롤이 화려하다. 스펙 좋기로 우주 제일인 여성(힐러리 로댐 클린턴)과 유태인 사회주의자(버니 샌더스·이상 민주당), 억만장자 비호감 파시스트(도날드 트럼프) 및 쿠바인 2세 젊은 피 두 명(테드 크루즈, 마르코 루비오·이상 공화당) 등 다섯이 주연 경쟁을 하고있다. 아버지와 형이 대통령인 젭 부시 공화당 상원의원은 선거 전만 해도 당연히 주연 감이었으나 이미 색이 바랬다. 




  민주당 후보 둘은 모두 70대 관록파다. 클린턴(70)이 당선되면 최초의 여성, 최초 부부 대통령이 된다. 보스톤 여성명문 웰슬리 대 출신, 변호사, 퍼스트 레이디, 국무장관을 거쳐 백악관까지 노리고 있다. 10여년 전 백악관에서 시도 때도 없이 열린 남편 ‘지퍼’ 때문에 속앓이하던 것에 비하면 참으로 금석지감이다. 샌더스(75)는 어제 오클라호마 등 네 개 주만 이기고 나머지를 클린턴에게 내줘 4대8, 하프게임 당해 전망이 어둡다. 하지만 샌더스 같은 이가 선전하는 걸 보니 미국도 진보주의 종자가 있나보다. 샌더스는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자임한다. 경제 불평등 해소를 위한 증세와 월가 규제를 주장하고 있다. 워낙 그는 무소속 상원의원이지만 대선을 위해 민주당에 합류했다. 




  트럼프는 미국의 ‘일베’(일간베스트) 대장 쯤 된다. 막가파 식 우익 좌충우돌로 인간의 야만적 본성을 대리충족시킨다. 다만 그가 어제 12개 중 7개 주서 대승한 걸 보니 미국 우익들은 오바마가 어지간히 싫었나보다. 크루즈와 루비오는 모두 1971년 생, 40대 중반 보수주의자다. 하지만 연합하지 않는 이상 트럼프를 꺾을 방도는 없어 보인다. 미 대선은 오는 11월8일 간접선거(선거인단 538명)로 치른다. 현재로선 힐러리 클린턴이 꽃노리패를 쥐었다. 민주, 공화당 누구도 그녀 후광에 조연급이다. 




  선거는 민주주의 꽃이라지만 대부분 자본과 권력 토양에서 자라는 꽃이여서 그닥 향기롭진 않다. 하지만 미국선거는 재미라도 있다. 우리는? 잘 모르겠다. / 임용진(논설고문)






온누리, '알파 고'(새전북신문, 2016.3.10.)


  압도적인 최고수가 있다. ‘황금곰’ 잭 니클로스(골프), ‘백발 황제’ 레이몽 클루망(당구), ‘이도류’ 미야모도 무사시(검객)처럼 수많은 고수가 즐비한 승부세계에서도 남들을 고개 숙이게 하는 강자 중의 강자다. 체스에선 가리 카스파로프가 그 사람이다. 




   카스파로프(64·러시아)는 아제르바이잔 출신의 전 세계 체스챔피언이다. 그는 22살 때 당시까지 불침항모던 아나톨리 카포프를 제치고 최연소 세계 체스챔피언에 올라 최근까지 수 십 년간 체스계 황제로 군림했다. 그의 별명이 ‘파괴자’다. ‘카스파로프는 상대를 이기는 게 아니라 파괴한다’는 평가 때문에 그런 별명이 붙었다. 이 파괴자를 파괴한 게 딥 블루다. IBM사의 컴퓨터 딥 블루는 1996년 카스파로프에게 졌으나(6전 3패2무1승) 이듬해인 1997년엔 첫 판만 어이 없는 실수로 내줬을 뿐 나머지를 모조리 이겨 대승(4승1패)했다. 이후 체스에서 인간은 컴퓨터를 이기지 못한다는 게 상식이 됐다. 




   어제(9일) 벌어진 이세돌 9단과 컴퓨터 ‘알파 고’ 대결이 화제다. 지상파 KBS 2까지 실시간 중계했을 정도다. 전남 비금도 출신의 이세돌(33)은 한국바둑사 최고의 풍운아다. 12세에 한국기원에 입단해 최연소 9단이 됐고 국제기전에서 15차례나 우승해 세계 최고수가 됐다. 이를 상대한 알파 고는 구글이 제작한 특별한(=‘알파’) 바둑(=‘고’·‘Go') 기계다. 컴퓨터의 일반적인 연산기능은 물론 스스로 학습에 학습을 거듭하는 딥 러닝 기능까지 갖췄다.




   이세돌은 그야말로 ‘쎈 돌’이다. 출중한 기력 뿐 아니라 성격도 개성적이어서 승부사다운 면을 두루 갖췄다. 그는 어제 호선에서 뜻밖에 흑을 잡았다. 알파 고를 ‘프로’ 대접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던 것인지, 일부러 불리한 선택을 한 게 이세돌답게 까칠했으나 기계는 이런 데 아랑곳하지 않았다. 결국 이세돌이 불계패했다. 아무리 인공지능(AI)이라도 그렇지, 기계에게 돌을 던지다니! 바둑계 전체가, 아니 전 세계 상식적인 인류가 이에 놀랐다. 


   하지만 이미 예견된 충격이다. 인간은 계산에 관한 한, 체스뿐 아니라 바둑에서도 컴퓨터를 이기지 못 한다. 다만 그 순간이 앞당겨졌을 뿐이다. 알파고 바둑솜씨를 TV 중계로 본 내 친구 한 명이 이렇게 얘기했다. “그래도 컴퓨터는 피카소가 절대 못 돼” 이 말이 정답일 것이다. 창조, 직관 등은 영원히 인간에게만 고유한 영역이다. 


   알파고와 이세돌은 앞으로 네 번 더 싸운다. 이세돌이 무척 열받았기 때문에 결과가 흥미진진하다. 아쉬운 점 하나는 구글이 내 건 상금이 1백만달러(10억원)라는 것이다. 인간지능을 대표했다는 의미에서 이세돌로선 이겨도 져도 좀 손해다. 한 1천만 달러는 받았어야 하지 않았나. 구글만 선전시킨 모양이 됐다. / 임용진(논설고문)






온누리 - 참회 (새전북신문, 2016.3.17.)


  벌써 반 백 년이 넘었다. 56년 전 어제인 1960년 3월16일 마산 경찰서. 민간인 지프 운전사 김 씨(당시 20세)는 새벽5시 상사 지시로 경찰서에 파견돼 눈에 수류탄이 박힌 채 사망한 신원미상 학생의 시체를 차로 운송한다. 경찰 지휘로 당일 마산 제1부두 해저에 남몰래 수장된 이 시신은 약 한 달 후 떠올라 4·19 학생혁명에 불을 지핀다. 그 지프 운전자가 김덕기(76) 씨고 신원 미상 학생은 전북 남원 사람 김주열(당시 마산상고 1학년) 열사다. 


  김덕기 씨가 사건 후 처음으로 김주열 묘소를 찾아 비석을 어루만지는 사진이 그제 일제히 보도됐다. 김 씨는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운전만 했기 때문에 법적으론 무죄지만 그래도 고인에게 미안해 매일 속죄 기도를 했다고 한다. 천주교도인 김 씨는 “평생 참회 눈물을 흘렸다. 뒤늦게나마 직접 사죄할 수 있어 감사하다”고 말했다 한다. 


  속죄, 참회와 관련해 생각나는 또 한 사람이 고 이항녕 홍익대 총장이다. 광복 전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해 하동군수, 창녕군수를 지낸 그는 평생 이를 후회했다. 친일 이력이 부끄러워 광복직후 고위 관직 제의를 일체 마다 했으며 1980년대 초 한 일간지에 ‘나를 손가락질 해다오’란 글을 실어 통렬한 공개 반성을 하기도 했다. 광복도 수 십 년이나 지난 후에 굳이 자신의 치부를 들추는 이유가 뭔가 하는 의문도 있었지만, 참회란 그런 것이다. 망각의 덮개로는 절대 치유 되지 않는 병, 바로 양심의 상처 때문이다. 


  고 소석 이철승은 “정치란 가만 두면 더 더러워지는 하수도 공사”라고 했다. 세속 욕심 때문이건 불행한 우연 때문이건, ‘하수도 공사’에 개입되는 건 인간사 불가피하니 참회가 그 정화밸브다. 오죽하면 역사에 결백했을 단 한 사람, 윤동주조차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참회록’)고 했을까. 


  참회 없이 사는 이도 있겠으나 그건 경화된 암세포나 마찬가지다. 김주열, 전태열, 세월호, 백남기. 참회할 일이 너무 많은 사회에서 사는 게 새삼 송구해 무연히 주위를 돌아볼 때가 있다. 특히 4월을 앞두고서. / 임용진(논설고문)




온누리 - 이팝나무(새전북신문, 2016. 3.31.)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 이팝나무는 수령 250년이나 되는 천연기념물(214호) 노거수다. 여기엔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먼 옛날 흉년이 들어 한 어린이가 굶어 죽었다. 그의 애비가 자식을 땅에 묻고 나무 한 그루를 심으며 울먹였다. “아가야. 이 나무는 쌀밥나무다. 저 세상에서라도 배부르게 먹으렴”. 흉년 들 때마다 무덤도, 나무도 늘어났다. 그 숲자리가 지금 마령초등학교다. 그 쌀밥나무가 요즘 이팝나무다. 


   쌀밥은 이밥, 또는 이팝이라고도 하는데 왜 ‘이’가 쌀을 뜻하는지 그 연유는 분명치 않다. 왕조시대 땐 ‘금수저’들만 쌀밥을 먹었기에 왕족 즉 이(李)씨가 먹는 밥이라 해서 ‘이밥’이라고 붙였다는 설도 있는데 좀 작위적이다. 내 생각엔 이밥의 ‘이’는‘엿 이’(飴)자 아닌가 한다. 맨날 꽁보리밥이나 수수밥, 피죽 등만 입에 칠하다가 어쩌다 한 번 쌀밥이라도 먹을라치면 엿처럼 달고 맛있지 않았겠나. 


   이팝나무는 5월께 개화하는데 그 꽃이 쌀처럼 희다. 가지에 주렁주렁 소담스레 달린 꽃이 먼데서 보면 꼭 그릇에 소복이 담긴 쌀밥 같다. 조팝나무도 있는데 이건 흰 꽃잎 가운데 노란 꽃술이 있어 먼데서 보면 역시 쌀에 조 섞은 밥 같다. 다 자라면 조팝나무는 2m 정도 중키고 이팝나무는 20m나 되는 꺽다리 관목이어서 구분이 쉽다. 이팝나무 개화철이 절기상‘입하’여서 입하나무가 변해 이팝나무 됐다는 설도 있으나 역시 믿을 수 없다.


   세월호 참사 2주기를 맞아 정읍에 ‘세월호 추모 이팝나무 공원’이 조성된다. 희생자 304명을 기려 시민 최아무개 씨가 이팝나무 304그루를 기증했고 정읍시는 부지를 내 곧 시민 304명이 한 그루 씩 이를 심을 계획이다. 이팝나무는 8년이 지나야 꽃이 핀다. 이번 식재될 나무도 모두 8년생, 곧 꽃이 필 것이다. 수백년 전 진안 마령에서도, 지금 정읍에서도 이팝나무는 아이들 생명이다. 그 귀한 꽃이 다시는 지지 않길. 다시는 결핍도, 거짓도 없는 세상을 만들길. 소원과 결의를 이팝나무에 부친다. / 임용진(논설고문)





임용진 칼럼 - 지치지 않겠다! (새전북신문, 2016.4.1.)



   제 풀에 지쳐 그만두겠지. 제가 언제까지 가겠어.


   이게 칼자루 잡은 자의 여유다. 칼날을 잡은 이는 손에 피 묻히고 아프다고 아우성 치나 저들의 오불관언에 곧 칼을 놓고 엉엉 울다 시간 지나 상처에 새살 돋기만 기다린다. 세월호 참사가 꼭 그렇다. 


  이제 보름 후면 벌써 2주기다. 무책임과 혼미, 무도, 용렬, 무능력의 막장 결합체인 대한민국 세월호 안에서 ‘가만 있으라’ 지시만 믿고 기다리던 단원고 2학년 학생 등 꽃같은 생명 304명을 잃은 당시엔 온 나라가 슬퍼했다. 모든 부모가 분노했다. 대통령도 약간 눈물 비치고 해양경찰을 없애는 등 제스처를 보였다. 하지만 그뿐, 사고발생 직후 7시간 동안 대통령 종적 무상에 따른 책임론과 국정원 개입 의혹 등이 제기돼도 ‘난 모르겠다’, 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가 지지부진 끝에 구성돼 수사권과 예산, 각종 자료와 책임자 출석 요구해도 ‘안 된다’는 등 이 정부는 지난 2년간 단 한 가지 태도만을 고수했다. 바로 철저한 외면이다. 


   외면은 상대 피로를 노린다. ‘동정 피로’라 할까. 누구나 먹고살기 힘든 판에 남 어려운 처지 편드는 게 얼마나 갈까 하고 인간의 기본적인 휴매니티마져 뭉개지길 기다리는 시간끌기다. 그러는 사이 제 풀에 지친 이들이 분열해 혹자는 ‘위로금 더 타려는 거 아니냐?’, ‘세금도둑이다’고 막말하고 얌전한 이들도 종국엔 ‘이쯤 관두는 게 좋겠다’는 식으로 타일러 피해자들끼리 서로 반목하게 만드는 야비한 전략이다. 


   얼마 전 내 아들이 말했다. “아버진 유족도 아니면서 세월호 리본을 왜 달아요”. 내 아내도 그런다. “당신 딴 건 시큰둥하면서 왜 세월호에만 소릴 높여”라고. 내 집안 일은 아무 것도 아니다. 지난 2년 간 피해학생들 교실을 추모현장으로 남겨 둔 안양 단원고에선 학부모들이 ‘존치파’와 ‘이전파’ 두 편으로 갈려 극단적으로 대립하고 있다. 한편은 희생 학생 존치교실(기억교실)이 재학생 학업에 방해된다며 ‘옮기라’ 요구하고 다른 한편은 ‘그럴 수 없다’고 서운해 한다. 이 시민갈등을 보다 못해 국내 7대종단 모임인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가 중재에 나서고 있으나 이게 어디 종교인들에게만 맡길 문제인가? 사람 수백 명이 죽고 그 책임소재가 여태 미스터리인 정치적, 사회적, 교육적 참사인데 안산시 시장, 국회의원, 지도층, 교육감은 뭐하고 있나. 단원고 추모교실은 평수는 작지만 이나라 전체의 축도다. 현실을 현실로 해결치 않고 ‘논쟁 피로’ 끝에 영혼 문제로 넘긴다면 그 뒤에서 안도할 자 누구일까. 


   지난 2011년 3월11일 동일본대지진 때 미야기 현 이시노마키 시 오카와 초등학교에서도 학생(74명)과 교사(10명) 84명이 쓰나미에 밀려 학교 운동장에서 희생됐다. 어린 초등학생들이 뒷산으로 도망가려 했으나 ‘운동장에서 기다려라’는 학교 지시에 얌전히 따르다 시커먼 쓰나미에 모두 휩쓸렸다. 그 5년 후인 지난 26일 이시노마키 시는 최종적으로 참변 현장 보존을 결정했다. 황폐한 학교를 보는 것만으로 가슴이 아프다는 해체론자와 후세를 위해 보존해야한다는 입장이 팽팽히 맞섰으나 가에야마 히로시 이시노마키 시장은 “3·11 참사의 반성과 교훈을 전하는 게 우리 사명이다. 다음 세대에 이를 전승하기 위한 의무를 감당하겠다”고 결론 내렸다. 오카와 주민 대상 여론조사는 ‘해체’의견(54%)이 많았으나 유족 의견을 받아들여 시장이 결단했다 한다. 희생 경위가 비슷하고 해법과 해결 과정이 우리로선 배울 점 많다. 


   오는 13일 국회의원 선거로써 그 사흘 후 세월호 2주기(16일·토요일)를 덮으려는 거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요즘 종편 TV 등에서 ‘정치 쇼’가 요란하다.  조선일보 뉴스검색을 해보라. 사흘 전 끝난 세월호 2차 청문회 관련 기사가 단 한 건도 뜨지 않는다. 철저한 외면 세력이 적지 않다는 증거다. 여기서 난 무엇을 할까. 제풀에 지치지 않았다, 아직 살았다는 표시를 어찌할까. 4월은 이런 시민적 고민의 달이다.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는 이 계절. 난 노란 세월호 깃발을 내 집에 달고 싶다. / 임용진(논설고문)



온누리 '4월7일'(새전북신문, 2016.4.8.) ////온누리 '4월7일'(새전북신문, 2016.4.8.) 어제가 신문의 날이다. 매년 4월7일을 신문의 날로 정한 건 120년 전 이날 ‘독립신문’이 창간됐기 때문이다. 오래전 구입한 독립신문 영인본을 펼쳐본다. 창간호는 ‘조선 서울’에서 ‘건양 원년(1896) 사월 초칠일 금요일’에 나왔다. 제호는 ‘독닙신문’, 세로쓰기 삼단 편집이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도록 돼있다. 가로 세로 218×303mm 크기에 매일 두 장(4페이지) 씩 나왔는데 창간호 1, 2페이지는 광고, 논설, 관보, 외국통신, 잡보 순서로 구성됐다. 광고는 신문값과 지국개설 등에 관한 짧고 정직한 비즈지스 사고(社告)다. 신문은 돈 주고 사는 것임(=‘한 장에 동전 한 푼’)을 창간호 맨 앞에서 일깨우고 있다. 창간호 논설은 그 유명한 ‘불편부당’과 ‘평등’의 창간사다 “우리는 첫째 편벽되지 아니하고도 무슨 당에도 상관이 없고 상하귀천을 달리 대접하지 아니하고… 모두 한글로 쓰는 것은 남녀 상하귀천이 모두 보게 함이요…”. 이밖에 관보는 정부 발령사항, 외국통신은 해외뉴스, 잡보는 일반 사건기사다. 이어 3페이지는 기업들 유료광고, 4페이지는 영문판이다. 창간호 논설은 서재필(1864~1951)이 썼을 것이다. 그는 약관 스물에 갑신정변(1884)을 주도한 혁명아다. 허망한 ‘3일천하’ 후 일본을 거쳐 미국에 망명했으나, 그 사이 역적으로 몰린 부·모·형·아내는 음독자살하고 두 살 짜리 아들은 굶어 죽는다. 망명 10년 후 미국 의사 신분으로 귀국한 그에게 조선이 고위 관직을 제의했으나 이를 뿌리치고 만든 게 독립신문이다. 사장 재직 2년간 그는 월급으로 책정된 150원을 받지 않았을 뿐더러 오히려 주머니 톨톨 털어 신문사를 운영했다. ‘독립신문’ 2주갑(=120년)인 지금도 신문업은 여전히 고되다.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불편부당’한 신문사가 몇이나 되며 지역신문 종사자 중 맘 편히 월급받는 이가 몇이나 되나. 면암 최익현은 “인간세상 지식인 되기 힘들다”고 탄했지만 요즘엔 신문쟁이 노릇 하기가 더 힘들다. / 임용진(논설고문) 




온누리 - '여의도'(새전북신문, 2016.4.16.)



서울 한 복판 가장 큰 섬이 여의도다. 그런데 이 섬의 뜻이 도시 알듯말듯이다. 




한자 ‘의’(矣)는 약한 감탄형 종결어미다. ‘재’(哉)가 강한 감탄, ‘그렇고녀!’, ‘그럴진저!’라면 ‘의’는 ‘그렇군!’ 정도다. ‘여’(汝)는 너란 뜻이고, ‘도’(島)는 섬이니 굳이 ‘여의도’를 직역하면 ‘너!섬’ 쯤 된다. 애초 여긴 모래섬인데다 큰 물이 나면 지금 국회의사당 부근만 남기고 다 잠겨버려 사람 안 살고 값도 매길 수 없는 곳이었다. 그래서 ‘너나 가져라!’ 또는 ‘너도 섬이냐?’는 정도로 여의도가 된 것인지 모르겠다. 




은방울자매 히트곡 ‘마포종점’(1967·박춘석 작곡)은 서울 미개발시대의 마지막 향수를 전한다. ‘밤 깊은 마포 종점, 갈 곳 없는 이 거리…’. 서강 마포나루가 서울 끝이니 그 건너 여의도야 오죽 캄캄했으랴. 하지만 1970년대 초 마포대교가 놓이면서 여의도는 삽시간에 한국의 맨하탄이 된다. 길이 곧고 넓은 계획도시에 아파트, 증권·금융사, 국회의사당, 신문·방송사가 밀집해 불과 몇 십 년만에 대한민국 중심이 된다. 돈과 권력 뿐 아니라 문화, 정신, 도시풍속 등 모든 것의 기준이 ‘여의도’로 통하는데 심지어 땅 면적까지 이곳이 스탠다드다. 새만금 방조제로 생긴 땅에 여의도 140개가 들어간다거나, 뉴욕 맨하탄이 여의도보다 30배 넓다는 식이다. 전주는? 여의도의 약 70배 크기다. 




선거가 어제 끝났다. 이 좋은 여의도에서 나가는 이, 들어오는 이, 남는 이가 오늘 교차한다. 국회의원에 올인한 이들의 정열과 회한, 눈물, 박수, 절치부심, 환호를 보노라면 드라마가 따로 없다. ‘진박’ 마케팅, ‘존영’ 코미디, ‘광주가 날 버리면 은퇴하겠다’ 등 20대 국회 노이지 마케팅도 이만하면 역대 최고다. ‘너나 가져라’던 여의도를 요즘엔 모두 서로 못 가져 안달이다. 하지만 금뱃지는 금수저가 아니다. 어렵사리 그걸 단 이에게 요구하는 건 헌신과 희생과 봉사다. 여의도는 우리 모두의 섬이다. / 임용진(논설고문)



임용진 칼럼, kcc농구단 이전파동을 보며(새전북신문, 2016.4.27.) 임용진 칼럼, kcc농구단 이전파동을 보며(새전북신문, 2016.4.27.) 스포츠 세계엔 징크스, 이른바 ‘저주’도 많다. ‘염소의 저주’, ‘어빙의 저주’, ‘달구벌 저주’ 등등. 가장 유명한 건 ‘밤비노의 저주’다. 미국프로야구(=MLB) 1백여년 사상 역대 최고 영웅 베이브 루스를 양키즈로 이적시킨 보스톤 레드삭스는 월드시리즈에서 영원히 우승 못할 거라고 당시 맘이 상할대로 상한 밤비노(=베이브 루스 별명)가 저주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명문구단 보스톤 레드삭스는 월드시리즈에만 오르면 기를 못 펴다 2004년 월드시리즈에서 미네소타 카디널즈를 상대로 우승, 86년만에 간신히 저주를 풀었다. 그 주역이 바로 데이빗 오티스(41). 내야수 강타자인 오티스는 2004년 시즌 홈런 41개를 때리는 등 중심타선을 이끌었고 2007년 월드시리즈에서도 보스톤을 한 차례 더 우승시켰다. 올 시즌을 끝으로 오티스가 배트를 놓는다. 그가 은퇴를 발표한 지난 13일(한국시간) MLB 개막전은 ‘오티스 사랑’ 경기였다. 오티스의 열다섯살 짜리 딸이 경기 전 스타디움 한 가운데서 깜짝 국가를 불렀고 오티스 자신은 빌 러셀(농구), 보비 오어(아이스하키), 타이 로(미식축구) 등 1960~70년대 프로스포츠 전설들과 함께 시구를 했다. 보스톤이 배출한 불세출의 스타들과 같이 시구함으로써 오티스는 그 동렬에 섰다. 레드삭스 구단과 시민들은 오티스를 보스톤이 낳은 역대 최고의 영웅으로 환영했다. 보스톤만 오티스를 아끼는 게 아니다. 오티스는 보스톤을 고향 이상으로 사랑한다. 도미니카공화국 야구 국가대표출신으로 MLB에 1993년 데뷔한 이방인이지만 오티스는 뼛속까지 보스토너(=보스톤 사람)다. 지난 2013년 4월 비극적인 보스톤 마라톤 테러 사건 이후 첫 경기에서 그가 직설적으로 뱉은 분노는 유명하다. “여긴 우리 도시란 말야, 제길!”(=This is our fxxxking city). 스포츠는 그것을 둘러 싼 모든 것, 운동선수·팬·구단전통·경기장·유니폼·CI·기록·기념품 및 심지어 경기가 열린 곳의 공기까지 합쳐서 이뤄내는 거대한 상징체계다. 최근 미국프로농구(=NBA) 명문 LA레이커스의 명 가드인 코비 브라이언트(38)가 은퇴했다. 땀 냄새 푹푹 쩐 그의 마지막 경기 운동복이 천문학적 고가인 건 물론 지난 4월14일의 은퇴경기를 못 본 팬들을 위해 현장서 채집한 공기를 담은 주먹만한 지퍼백이 이베이 온라인 경매에 부쳐지기까지 했다. 가격은? 1달러서 시작해 순식간에 15,300달러(한화 1,762만 원)까지 치솟았다 한다. 보스톤 셀틱스 역시 미국 동부를 대표하는 명문 농구단이다. LA 레이커스와 숙적이어서 NBA 챔피언 시리즈에서 1승1패씩을 주고받은 사이. 그러나 적장인 코비 브라이언트의 명예 은퇴를 기념해 보스톤 셀틱스 홈구장인 ‘T D 가든’의 경기장 나무바닥재를 떼어내 액자에 담아 코비에게 선물했다. 코비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선물”이라며 뛸 뜻이 기뻐했다 한다. 스포츠를 보노라면 인간이 상징적 동물임을 실감한다. 보스톤 레드삭스, 보스톤 셀틱스 뿐아니라 보스톤엔 피츠버그 패트리어츠(미식축구), 보스톤 브루인즈(아이스하키)도 있다. 모두 MLB, NBA, NFL(미식축구리그), NHL(북미아이스하키리그)의 최강팀들이다. 뿐만 아니라 하버드 대학, MIT(매사추세츠 공대), 현재 미국대통령 선거 선두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모교인 웰즐리 여대 등 세계최고의 명문대가 모두 보스톤 시내에 있다. 또 2주전 120회 대회를 치른 보스톤 마라톤은 어떤가. 기록 산실임은 물론 전세계 아마추어 달림이들의 꿈의 고향이다. 가장 압권은 미국사의 중심인 보스토너들의 자존심이다. 대놓고 말은 않지만 “뉴욕? 거기가 젊잖은 이들 살 덴가?” 하는 식이다. 전주는 긴 역사, 전통, 인구(보스톤 구도심 80만, 전주 65만명) 등에서 보스톤과 비슷한 점이 많다. 전주 연고 구단인 프로축구 전북 현대모터스, 프로농구 전주KCC이지스 등이 전국최강인 것까지 비슷하다. 소리 없이 사라져 안타깝지만 10여 년 전만 해도 전주마라톤은 전국 4대 메이저 대회 중 하나였다. 전주 KCC 이전파동이 ‘없던 일’로 원상복귀돼 다행이다. 보스톤 레드삭스 경기장인 ‘팬웨이 파크’, 셀틱스와 브루인즈 실내경기장인 ‘TD 파크’는 선수들의 요람일뿐더러 시민의 꿈 공장, 관광 매력물, 도시 자존심이 되고 있다. 전주 KCC 홈구장은 이런 점에서 미흡할 뿐아니라 생긴 지 40년이나 돼 시민안전까지 위협한다니 개선이 시급하다. KCC가 뿔 날 만도 하다. 한 관계자에 따르면 “죄가 있다면 시설 개선 약속만 밑고 15년이나 전주를 떠나지 않은 것”이라 했으니 실은 토라진지 오래 됐다. 지난 시즌 챔피언전 우승팀인 동양 오리온스는 대구시에 불만을 품고 고양시로 연고를 옮겨 승승장구중이다. 여자 프로농구 국내최강 우리은행도 지난달 춘천에서 아산으로 연고를 옮겼다. 우리은행은 아산시에 시설사용료로 일년에 단 돈 100원을 지불한다고 한다. KCC는 그간 매년 1억2천만원을 전주에 냈으니 제값을 치른 셈이다. 프로축구 현대모터스의 최강희 감독은 ‘봉동 이장’이라 불릴 만큼 사랑받고 있다. KCC 역시 젊은 전주인들에게 자부심의 원천이다. 선수들도 오티스처럼 전주를 ‘우리 도시’로 사랑하길 바란다. 전주는 작지만 한옥마을, 전통문화, 프로구단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이미 전국 ‘최강’ 중 한 곳이다. / 임용진(논설고문. #####) 



온누리-'소파'(새전북신문, 2016.5.5.)



오늘은 어린이날이다. 어린이란 말을 쓰고 어린이날을 만든 이는 소파 방정환(1899~1931)이다. 그는 단순한 동화작가가 아니라 독립운동가, 인권운동가였다. 3·1운동 때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만세 부르다 투옥되기도 했다. 거인 방정환을 되돌아 본다. 




△‘동심여선’(童心如仙) : 어린이 맘은 신선과 같다! 방정환의 묘비명이다. 지병과 과로 때문에 불과 32세로 아깝게 타계한 그는 마지막 가는 길까지 이렇게 새길 정도로 어린 친구들을 사랑했다. 그의 묘는 서울 광진구 아차산에 있다. 




△‘소파’(小派) : 방정환이 스스로 지은 자호(自號). ‘잔 물결’이다. 그는 타계 며칠 전 부인에게 이러한 말을 남겼다, “부인, 내 호가 왜 ‘소파’인지 아시오? 나는 여태 어린이들 가슴에 ‘잔물결’을 일으키는 일을 했소. 이것이 갈수록 커져 뒷날 큰 물결이 되어 출렁일 것이니 부인은 오래 살아 그걸 꼭 봐주시오”.




△10만부 : 방정환이 1923년 3월20일 창간한 월간지 ‘어린이’의 월 최다 발행부수. 당시 서울 인구가 30만명에 불과했으니 ‘어린이’는 한국잡지 사상 전무후무한 베스트 셀러다. 어린이로 상징되는 신문명 욕구, 평등에 대한 갈구가 그만큼 컸지만 마케팅도 훌륭했다. ‘어린이’는 독자선물로 윷놀이판, 금강산 게임 말판 등을 증정했다. 요즘으로 치면 ‘보드 게임’ 특별선물인 셈. 




△검열 : ‘어린이’는 애초 예정일보다 스무 날 늦게 창간됐다. 일제 검열 탓이었다. 그 사정을 창간호 말미에서 이렇게 전한다. “소위 원고검열이라는 절차가 어떻게 까다로운지 여기 저기 왔다 갔다 하는 동안에, 어느덧 20여일이 획 지나가고 …그런 가운데도 내용 기사 중에 짭짤한 구절은 원고 검열할 적에 꼭꼭 삭제를 당하여 마치 꼬리 뺀 족제비 모양이 되었습니다”. 잡지 ‘어린이’가 단순한 소년지 이상임은 일제도 이미 간파하고 있었단 얘기다. ‘어린이’는 당대 최고 지성의 잡지였다. 마해송, 손진태, 박목월 등이 필진 참여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2014년 한해 접수된 아동학대 사례가 1만27건이다. 힘없는 어린이들이 부모 등 친권자로부터 말 못할 학대를 당하고 있다. 소파가 이를 봤다면 뭐라 했을까. 부모 같지 않은 자들 때문에 어린이 인권이 한 세기 전 피식민지 수준으로 후퇴해 버렸다. 평등세상 훈훈한 ‘큰 물결’은 언제 이나. / 임용진(논설고문)





온누리 - 엄숙주의(새전북신문, 5월 19일)



  북한 조선노동당 제7차대회가 어제 폐막했다. 김정은 위원장을 지도자로 대내외에 천명한 가운데 작은 화제 하나는 영국 BBC 방송 취재진 셋을 대회 기간 중 국외 추방한 것이다. 그들이 TV 뉴스에서 김정은을 지칭해 쓴 ‘뚱뚱하고 예측할 수 없는’이란 표현이 문제됐다. 특히 ‘뚱뚱한’이란 표현이 “최고존엄을 모독했다”고 북한 당국이 발끈했다. 대체 뭔 말을 썼길래?




   기사 원문을 보니 문제 된 단어는 ‘커풀류언트’(corpluent=‘뚱뚱한’)다. 이와 비슷한 말로 ‘플럼프’(plump)는 둥실둥실하게 살찐 것, ‘포틀리’(portly)는 나이 든 배불뚝이, ‘스타우트’(stout)는 작고 단단하게 딱 되바라진 걸 의미하고 ‘팻’(fat)은 이 모든 게 다 포함되는 그냥 ‘뚱뚱하다’ 정도이다. 사전을 더 들여다보니 ‘커풀류언트’는 ‘팻’을 피하기 위해 많이 쓴다고 돼있다. 그러니 좀 공적인 매체의 기사 투 단어가 ‘커풀류언트’다. BBC 기자로선 여러 표현 중 그나마 격 떨어지지 않게 고른 게 ‘커풀류언트’ 아닌가 싶은데 이게 북한을 건드렸으니 거기선 지도자 체형 관련 발언 자체가 금기인 걸 몰랐나보다. 




   작고 통통한 것을 ‘난쟁이 똥자루’라고 하는데 이건 아마 북한 유래 속어인 듯하다. 최은희·신상옥 납북 수기인 ‘조국은 저하늘 저멀리’에 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자신의 작고 ‘포틀리’(portly)한 체형을 빗대 “내가 난쟁이 똥자루만하다”고 웃었다고 한다. 




   남의 장애나 비정상적 체형 등을 대놓고 언급하는 건 점잖은 이들이 삼갈 일이다. 하지만 뚱뚱한 걸 뚱뚱하다고 해야지 뭐라 하나. 우리는 단순히 발음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대통령의 성에 어떤 조류를 갖다 붙이고, 그 이름자에 어떤 놀이기구를 붙이기도 하는데 말이다. ‘최고존엄’에 대한 불경이 이보다 지극할 데 없지만 그래도 어른스럽고 관대한 대한민국이라 소소한 것까지 트집 잡지 않아 다행이다. 이에 비하면 북한은 너무 엄숙하다. 그게 생존형, 생계형 엄숙주의인 듯해 더 안타깝다. / 임용진(논설고문)








온누리 - '전주성'(새전북신문, 5월26일 )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 프로농구 전주kcc 연고지 이전 파동이 잦아든 지 한 달도 안 돼 이번엔 프로축구 전북현대 심판매수 건이 터졌다. 




   그제(24일) 전주 월드컵경기장엔 꽤 많은 관중이 모였다. 전북현대와 멜버른 빅토리(호주) 간 2016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이 열렸다. 전북이 2대1로 이겼고 경기 내용도 괜찮았다. 하지만 이날 포커스는 경기가 아닌 그 후였다. 전국 언론들이 밤늦은 10시까지 경기장에 모여 전북현대의 ‘심판매수’에 관해 카메라를 들이댔다. 




   전주 월드컵 경기장은 축구팬들 사이에 ‘전주성’으로 통한다. 이 홈구장에서 전북현대는 K리그 **승 위업을 이뤘다. 전북현대 최강희 감독은 전북 팬들에게 ‘봉동 이장’으로 불리운다. 전북현대 숙소가 봉동 현대자동차 공장 부근에 있기 때문이다. 사랑과 존경의 대상인 ‘전주성’에서 ‘봉동 이장’을 비롯한 전북현대 프런트들이 불명예스런 혐의로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이철근 단장과 최 감독은 이날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죄송하다, 책임 지겠다”는 요지로 솔직히 사과했다. 구단 공식입장은 “스카우트 한 사람 때문”이라고 심판매수 책임을 프런트 직원에게 돌리고있지만, ‘봉동이장’은 진퇴를 깨끗이 할 것으로 보여 역시 스포츠맨답다. 




   한국축구 레전드인 차범근은 지난 1998년 심판이 개입한 ‘프로축구 경기조작설’을 폭로했다가 대한축구협회로부터 미운 털 박혀 프랑스월드컵 대회기간 중 해임됐다. 독일 분데스리가에서도, 이탈리아 세리에 A에서도 10여년 단위로 승부조작 스캔들이 터져 세계를 떠들썩하게한다. 지난 2006년엔 그 유명한 유벤투스FC팀이 여기 휘말려 우승컵을 몰수당했으며 하위리그로 강등되기도했다. 




   스포츠맨은 비교적 정직한 이들이지만, 돈이 걸린 곳 어디에건 유혹이 없겠는가. 이미 터져버린 일, 전북현대가 솔직히 수습해 프로 스포츠의 악폐인 ‘매수’를 근절시키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이건 승부보다 훨씬 중요한 ‘전주성’의 자존심이다. / 임용진(논설고문)




 온누리 - 둥지 내몰림(새전북신문, 2016.6.2.)



   서울 가로수길(강남구신사동), 홍대앞(마포구서교동)은 ‘젠트리피케이션’의 대명사다. 10, 20년 전만 해도 소규모 공연장, 스투디오, 화랑, 멋진 카페 등이 있던 한적한 거리였으나 요즘엔 주중에도 사람 물결을 이루는 도심 관광지가 됐다. 이를 노린 대기업, 다국적 기업 등의 프랜차이즈 식당이 들어서고 땅값 오르고 전세값 올라 영세 점포들은 천정부지 집값 때문에 버티지 못하고 문 닫거나 이사를 간다. 서울 구도심 북촌, 서촌도 마찬가지다. 공중목욕탕, 세탁소, 전파상, 백반집은 이미 오래 전 없어졌고 자본 기초체력이 월등한 스타벅스, 맥도날드 등만 살아남아 여기저기 천편일률 비슷한 성형도시가 되어간다. 




   대중이 움직이는 곳에 거대자본이 들어오고 그곳 터잡이인 영세 상인이나 예술가·원주민들은 폭등한 임대료에 절망해 딴 곳으로 이삿짐을 싼다. 그런데 이 현상은 익숙하되 말이 영 어색하다. ‘젠트리피케이션, 젠트리피케이션?’ 하다가 어원을 찾아보니 중세이후 영국 지주계급 ‘젠트리’에서 나왔단다. 말끔한 젠트리들이 찌질한 영세 서민을 내쫓고 거리를 번뜻이 단장하는 게 요즘 자본 행태와 다르지 않아 이름 내력은 짐작 된다.




   하지만 그래도 계속 이걸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불러야 하나? 신문 방송도 무슨 새 추세인 양 이 서양말을 쓰니 꺼림칙하던 차, 국립국어원에 전화를 걸었다. “젠트리피케이션을 뭐라 해야 되나요?” “그게 뭐죠?” 일순 실망했으나 이러저러 설명을 한 끝에 기다리는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아, 그거요. 최근 ‘둥지 내몰림’으로 다듬어졌습니다.” 




   한옥마을도 둥지 내몰림이 심각하다. 여덟 평짜리 점포 임대료가 보증금 1억원에 월세 800만원인 곳도 있다. 구도심 개발과 둥지 내몰림은 한 동전의 양면이다. 대학로에서도, 뉴욕 브루클린에서도, 상하이에서도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되기 때문에 이는 세계적 현상이다. 하지만 ‘둥지 내몰림’이라 쓰면 그 세계적 현상이 내 일처럼 훨씬 쉽게 이해된다. 이것이 모국어의 장점이다. 한옥마을과 세계를 한꺼번에 아우르는 개념을 놔두고 굳이 외국어를 써야할지. 이러다 혹시 한국어가 둥지 내몰림될라. /임용진(논설고문)




'여혐' (새전북신문, 2016.6.9.)




지난달 강남역 살인사건 피해여성 박 아무개씨(23)는 유언으로 감사편지를 남겼다. 남자친구 송 아무개씨가 유품을 정리하다 발견한 이 편지를 한 시사 주간지가 보도했다. 그 몇 대목만 옮기면 이렇다. 




“심한 말, 나쁜 행동, 잠 못 자게 밤늦게 급히 했던 부탁 모두모두 고쳐주려 해주시고 잠 설쳐가며 완성해주었던 내 부탁, 어릴 적엔 몰랐는데 이제 하나하나가 보여서 정말 미안하고 감사합니다. 거짓말도, 거짓말인 것을 알면서도 믿어주신 점, 미안하고 감사합니다. … 나 혼자 힘들다고 어리광 피우고, 짜증내고, 화내도 다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소한 점 하나하나 곁에서 챙겨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등등. 




“엄마 아빠 ♥”로 시작되는 이 편지는 스물 다섯 개 문장이 모두 ‘감사합니다’로 끝난다. 지난달 어버이날에 썼다가 부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엔 이와 관련, 또 다른 편지도 회자된다. 한 아버지가 강남역 사건에 충격 받아 아들에게 보낸 이메일이다. “정말 솔직히 말해 소위 ‘여성혐오’라고 요즘 속칭되는 개념이 너와 나한테 해당되지 않는 것은 아니야. … 조신하게 다녀라, 밤에 돌아다니지 말아라, 이런 말들은 모두 ‘여자를 위한다’는 명목 아래 성행하는 성차별이란다. 여자들에게 밤에 돌아다니지 말라고 가르치는 게 아니라 남자들에게 ‘밤에 돌아다니는 여자를 해코지 하는 행위가 도덕적으로 잘못 된 일이라는 걸 가르치는 게 옳은 일이야. …지금 한국사회는 ‘가해자가 돼서는 안된다’가 아니라 ‘피해자가 되지 말라’를 가르친다는 게 문제야. …‘여혐’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겠지?” 정말 좋은 아빠다. 




며칠 전 전남 신안군 한 섬에서 20대 초등학교 여교사가 마을남자 셋에게 성폭행 당했다. 온 사회가 비난하는 가운데 정작 마을에선 이를 두고 “젊은 선생이 평소 꼬리를 쳤다”는 말이 나온다고 한다. 참 무서운 ‘여혐’이다. 만 가지를 양보해, 젊은 여성이 꼬리 치면 안 되나? 그렇다고 남을 폭행(=성폭행)하나?




앞서 ‘감사합니다’ 편지 중 가장 가슴 아픈 대목은 이거다. “ ‘사람은 성실하고, 착하다’란 것을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국 사회는 이십대 젊은 여성들의 이런 아릿다움을 연달아 뭉개고 있다. ‘여혐’은 심리적 범죄다. 흑인 혐오, 무슬림 혐오처럼 무책임한 심리적 도피다. 그런 건 트럼프에게나 맡기자. / 임용진(논설고문)








온누리- 정세균(새전북신문, 2016.6.16.)



정세균(67·국회의장)은 고려대학교 법학과 1971년 학번이다. 1972년 가을 그가 고대 총학생회장에 출마하려고 대학동기이자 동향인 양창명(65·전 언론인)을 불렀다. 정세균은 신흥고, 양창명은 전주고를 졸업했다. 전주고 출신이 많은 고려대에서 선거 승리를 위해선 양창명의 도움이 절실했다. 



“양형, 총학생회장 선거에 나가나?” “아니” “그럼 나 좀 도와줘” “알았어”


마침 전고 출신으로 후보 물망에 오르던 김용하(65·전 KCC건설 전무), 이강태(65·전 BC카드 사장)가 모두 출마를 접었기 때문에 양창명은 편하게 캠프 주역으로 정세균을 도왔다. 선거 자금이 부족했으나 이는 학생다운 방법으로 해결했다. 전주 출신이자 고대 출신인 소석 이철승이 당시 야당 지도자(신민당 부의장)였다. 동대문에서 밤새 통음한 정세균 등은 새벽 4시30분 통금이 풀리자마자 혜화동 로타리 이철승 집 대문을 두드렸다. 야당 지도자답게 이미 이십여명이 그를 만나려고 줄을 서고 있었으나 소석은 젊은이들을 가장 먼저 만나줬다. “너희는 내 뿌리다. 또 우리 앞날이기도 하다. 잘 해봐라” 대선배 소석은 지갑에서 적잖은 돈을 내어주며 격려했다. 범 전북 파워 덕에 사람과 돈을 얻은 정세균은 학생회장 선거에서 낙승한다. 


정세균은 전북 진안 빈농 출신이다. 무주고등공민학교를 거쳐 전주공고 재학중 대학에 가고 싶어 전주 신흥고등학교 교장 장평화를 찾아갔다. 기특히 여긴 장 교장이 즉석에서 낸 영어, 수학 문제를 풀고 전액장학생입학 허락을 받아낸다. 생활비는 신흥고 매점에서 빵을 팔며 벌었다. 이때 신흥 중학교 매점에선 3년 후배 서거석(62·전 전북대총장)도 같이 빵을 팔았다. 그래서 신흥학교 ‘빵돌이’들은 주의해 봐야한다는 소리가 나온다. 그들은 내공이 무척 강하다. 


정세균은 정읍출신 김원기 전 국회의장과 함께 전북이 낳은 최고위 선출직이다. 마이너, 소수파, 비세(非勢)인 듯 하면서도 국면을 장악하는 게 소싯적부터 그의 장기다. 고향을 좀 더 잘 먹여살릴까, 입법부의 격을 높힐 수 있을까. 국회의장은 이미 은퇴코스가 돼버린 것이나 아닐까. ‘빵돌이’를 주목한다. / 임용진(논설고문)






온누리 - 장마 화풀이(새전북신문, 2016.6.23.)


글을 쓰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제 안의 독기를 쏟아내기 위해서(무라키미 하루키)거나 세상을 희롱하기 위해(연암 박지원), 또는 남의 분노를 촉구하기 위해(스테판 에셀) 쓴다. 천만 사람이 천만 가지 이유를 가질 것이다. 오늘 나는 화풀이 글쓰기다. 아직 미칠 만큼은 아니지만 불만, 짜증을 해소하는 데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것만큼 좋은 것도 내겐 없다. 자판을 피아노 건반 패듯, 황토에 소나기 박히듯 세게 두드려야 한다. 


장마 때문이었을 것이다. TV 종편을 보다 화가 난 것은. ‘조, 중, 동, 매’ 이른바 4대 메이저 신문사가 운영하는 종합편성 TV가 어린이 프로 ‘뽀뽀뽀’ 수준이란 건 익히 알기 때문에 화 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지만 요즘은 특히 도가 지나치다. 유명 연예인들의 사생활을 두고 종편들이 몇 십분 씩 토론 분석하는 건 흉내 치고도 과한 언론 흉내다. 그냥 가십성, 단편성으로 짤막히 보도해도 될 일을 몇몇 이른바 전문가들이 다각도로 분석해주니 입만 열면 ‘공기’(公器)라는 전파를 가지고 그렇게 할 일이 없나. 더구나 출연자는 경찰 출신, 화장 전문가, 의사, 변호사, 모 대학 초빙교수 등이 총망라돼 제 분야도 아닌 것에 한 마디씩 거드니 이런 ‘금수회의록’이 없다. 


단어 자체가 부정 가치인 ‘상간녀’(김세아), ‘불륜’(홍상수-김민희) 등으로 시청자를 쿡쿡 질러대다 가수 박유천 피고소 건을 두고는 신이 나 화장실 그림까지 안방에 들이댄다. 어찌 신나고 바쁘던지 세월호에 철근 400톤이 실렸다든지, 세월호 특조위가 이달말로 해체 운명이란 등 소식은 종편에서 종적무상, 찾아볼 길이 없다. 


소설 ‘장마’는 이렇게 시작한다. “비는 분말처럼 몽근 알갱이가 되고, 때로는 금방 보꾹이라도 뚫고 쏟아져 내릴 듯한 두려움의 결정체들이 되어 수시로 변덕을 부리면서 침묵의 밤을 온통 물걸레처럼 질펀히 적시고 있었다”(윤흥길). “여드레 스무 날엔 온다고 하고 초하루 삭망이면 간다”(김소월, ‘왕십리’)고 했으니 장마도 가긴 갈 것이다. 그러나 장마여! 기왕 내릴 거 침묵의 밤을 홉빡 적셔 종편 보꾹(=지붕)이라도 뚫기 바랄 순 없을까. / 임용진(논설고문)





임용진 칼럼 - 서문(西門)부터 짓자.(2016.5.)


우두머리 동학꾼 중 하나인 오지영은 전북 익산 사람이다. 그가 살아남아 1940년에 쓴 ‘동학사’(영창서관)에 보면 동학 대군이 이렇게 전주에 입성한다. 


“서문으로 남문으로 물밀 듯 들어가고 동학군들은 장꾼과 같이 섞여 문안으로 들어서며 한편 고함을 지르고 한편 총질을 하였다. 서문에서 파수 보는 병정들은 어찌된 영문인지 까닭을 몰라 엎어지며 자빠지며 도망질을 치고 말았다. 삽시간에 성안에도 모두 동학군의 소리요, 성밖에도 또한 동학군의 소리다. 이때 전대장(=전봉준)이 완만히 대군을 거느리고 서문으로 들어와 자리를 선화당에 정하니 어시호 전주성은 함락되었다”


그날이 1894년 음력 4월27일, 전주 서문 장날이다. 남문과 서문 장날은 2, 7일, 북문·동문 장날은 4, 9일이다. 양력으로는 5월말 어느 때, 그러니 122년 전 딱 요즘 일이다. 정오를 기해 용머리고개에서 먼저 ‘쿵’ 하고 한 발 포성이 울린다. 이를 신호로 장꾼처럼 위장한 농민군이 마구 방포하고 밀려들자 서문 관졸들은 황망하여 겨우 포 한 발 응사하고 도주했으며 감사 김문현은 피란 가는 백성 옷을 빼앗아 입고 겨우 전주성을 빠져나갔다. 흡사 판소리 적벽가 위나라 패주 대목 중 조조 변장 탈출과 비슷한 통쾌한 장면이다. “조조의 혼 기겁하야 홍포 벗어 던져 버리고, 군사 전립 앗어 쓰고 …날 살려라, 날 살려라.”


일본제국주의자들은 1907년 도시정비를 핑계로 전주 사대문 중 남문만 빼고 동, 서, 북문을 부수고 성곽을 철거한다. 을사늑약으로 일본 식민통치가 공식화하기 3년 전 이미 그들이 조선 천지를 장악했다는 증거다. 일본제국주의가 서울 창경궁에 동물원 짓고 전주 경기전에 국민학교(=초등학교) 만들고 전국 오래된 도시 성곽과 대문을 다 부순 건 이미 주지할 터, 제발 일본 구경 다녀 온 후 오사카 성이나 구마모토 성이 잘 보존됐더라고 너무 감탄 말라. 그런 말 들으면 한숨이 나온다. 가만 놔 두면 몇 천 년도 갈 한국의 돌 구조물을 다 부순 이들이 누군데. 


지난 세기 초 전주 서문 전경을 담은 사진이 최근 군산 동국사에서 발견됐다. 서문은 이 사진 속 한 가운데 초가집들 사이에 우뚝 솟아 그때 위용을 전한다. 엽서 크기 만한 작은 사진이지만 이 발견은 전주시민을 흥분시키기 충분하다. 그저 ‘잘 생겼다’고만 전해오던 조상 실물을 백 년도 더 지난 후 사진으로 확인한 셈이라고나 할까. 서문의 정확한 구조, 위치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얻었으니 수 년 전부터 논의되던 전주 부성 복원이 이 사진 한 장으로 결정적인 힘을 받게 됐다. 전주역사박물관 이동희 관장은 “사진이 주는 정보는 거의 완벽하다. 전주 부성 복원 ‘설계도’를 얻은 셈”이라고 평한다.


이 사진 속 정보를 요약하면 이렇다. ①서문은 이층 누각인 남문과 달리 단층이다. ⓶동문도 작지만 저 멀리서 그 구조를 확인할 수 있다. ⓷사진 오른쪽에 위치한 전라감영 선화당(=감사 집무처) 측면 모습을 이번에 처음 확보했다. 아울러 감영 주변 부속건물도 확인함으로써 현재 복원중인 전라감영을 거의 원형대로 추진할 수 있게 됐다. ④전주 동헌, 전주 객사 동쪽 날개 건물(=동익헌), 서문 성벽이 확실하게 보이며 동문 성벽은 희미하게 보인다. 


이상 대부분은 처음 확인되는 것들이다. 사진 속 전주는 성벽이 철거되기 직전인 1906년 또는 1907년 전경으로 추정된다. 동, 서, 북문이 있었다는 곳에 현재 표지석이 세워져있지만 첨단장비로 사진을 분석하면 보다 정확한 위치를 비정할 수 있을 것이다. 


전주부성(사대문+성곽) 복원 논의는 지난 2006년 시작됐다. 당시 전주시청 용역 결과에 따르면, 사라진 3개 대문과 성곽 일부 복원에 700억원이 든다고 한다. 700억원 중 500억원이 토지매입 비용이다. 이는 전액 시 예산으로 충당해야 하며 나머지 200억원(=건설비)도 정부와 지자체가 6대 4 정도 분담해야 돼 가난한 전주로선 여간 큰 부담이 아니다. 결국 문제는 돈이다. 하지만 방법이 없지도 않다. 광주가 지난 연말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에 관한 특별법’ 통과로 특별 예산을 확보한 것처럼 전주도 정치역량을 발휘하면 된다. 이는 물론 국회의원 등 전주 출신 정치인들이 합심 협력해야 한다. 전주가 이미 얻은 전통문화도시 조성사업에 더 붙이건, 현재 추진중인 동아시아문화도시를 결사 성사시켜 새 예산을 얻건, 선량들이 뭉쳐 이것 하나 해결하면 고향에 큰 선물이 될 것이다. 


예산 부족 등으로 인해 전주부성 복원이 ‘원스톱’으로 힘들다면 일단 서문부터 복원하는 게 좋겠다. 서문은 동학 함성을 담은 전주의 혼이다. 서문이 선다면 ‘한옥마을-전라감영-서문’으로 관광 어트랙션 확장은 물론 전주 정신의 새 상징이 될 것이다. 지난날 정의가 강물처럼 쏟아져 들어온 곳, 전주 서문을 다시 짓자. 거기다 '전봉준 입성처'란 팻말이나 동상 하나 작게 세워두면 또 얼마나 좋을까. / 임용진(논설고문)






두려울 때 말하라. (새전북신문, 2016.6.27.)


불과 나흘밖에 안 남았다. 예정대로라면 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가 오는 30일로 없어진다. 하지만 상황이 결정적인 것 같진 않다. 


지난 7일 국회의원 129명(더불어민주당 123명 전원과 정의당 의원6명 전원)이 서명한 세월호특별법개정안(이하 개정안)이 발의됐다. 이 개정안은 더불어민주당이 당 차원에서 낸 제20대 국회 제1호 법안이다. 이번 국회에서 어떻게 하겠다, 뭐에 중점 두겠다는 게 ‘제1호’의 정치적 상징성이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야당이 힘을 합치면 이 법안 통과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국민의당이 요즘 ‘리베이트’ 파문으로 코를 석자나 빠뜨리고 있지만 국가적 사안인 세월호특별법 개정에 고개를 못 돌릴 정도는 아니다. 


지난 4월 총선에서 야당승리는 ‘진박 마케팅’ 등 여당의 헛발질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 생각엔 진짜 이유는 세월호, 메르스 등 비극에서 비롯됐다. 현 정부의 무능력, 무책임, 비윤리성 등이 거기서 단적으로 드러났기 때문에 유권자는 여당을 심판한 것이지 야당이 뭘 잘해서 이긴 게 아니다. 그래서 정치적 계산만으로도 야당은 특조위 단명을 결코 방치할 수 없다.


개정안 대표발의자는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은평 갑)이다. 초선이지만 ‘세월호 변호사’란 별명대로 지난 2년간 길거리에서 세월호에 매달린 사람이다. 총선 당시 그와 맞붙은 여당 후보는 박 의원을 ‘세월호 점령군’이라고 비난했다. 그 말이 맞다. 세월호는 지난 800일간 풍찬노숙하다 이제 갓 국회 출입을 허가받았다. 박주민 단 한 명이 아니라, 제1호 법안으로 대변되는 그 상징성이 20대 국회 의제가 됐으므로 좀 과장하자면 ‘점령’이라 할 수도 있다. 


2년이 좀 못 됐을 것이다. 지난 2014년 여름 유가족들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국회에 들어가려 했으나 한 발짝도 들이지 못했다. 대통령만 그들을 외면한 게 아니라 국회의장도, 대부분 국회의원도 외면하거나 관심을 두는 척 했을 뿐이다. 하지만 개정안 발의 바로 다음날인 지난 8일 정오 풍경은 판이했다. 세월호 유족과 시민 등 총 304명(=세월호 희생자 수)이 노란 리본 그려진 개정안 입법청원 봉투를 들고 국회 본청에 들어서자 이번엔 아무도 그들을 막지 않았다. 


새 개정안 요점은 특조위 활동시한 연장이다. 특조위가 예산 받은 지난해 8월7일을 활동기점으로 계산해 1년이 차는 오는 8월6일까지 해체를 공식 연장하며 그래도 정밀조사가 끝나지 않았을 경우 정밀조사 개시 기점으로 다시 1년 더 연장할 수 있도록 돼있다. 정부는 세월호를 오는 8월께 건진다고 한다. 정밀조사는 그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기 때문에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최대한 내년 8월까지도 특조위 활동이 가능하다. 


무엇을 ‘정밀’ 조사할까. 세월호를 침몰시킨 기계적, 기제(=시스템)적, 정치적 원인이 조사 대상이다. 과적과 ‘공박’(=꽉 매기)미흡, 조타 미숙 등 기계적 요인은 그래도 따지기 쉽다. 하지만 시스템이나 정치적 측면은 권부 핵심과 관련되다보니 조사가 쉽지 않다. 여태까지도 금기·성역·소문·추측 투성이다. 대표적인 게 이른바 ‘세월호 실소유주 국정원’설과 사고 당시 ‘대통령의 7시간’에 관한 설이다. 


세월호 2주기를 앞두고 지난 3월 발간된 ‘세월호, 그날의 기록’(진실의 힘)이나 4월 방영된 ‘그것이 알고싶다’(SBS-TV) 등으로 인해 세월호와 국정원 관련은 어느 정도 ‘설’을 벗어나 사실조각에 근접하고 있다. 세월호에 대한 국정원 관리(또는 소유) 실태, 사고와 직간접 관련성, 사고 후 신속한 구조에 어떤 영향(또는 악영향)을 미쳤나가 점차 확인되고 있는 만큼 국정원에 직접 책임을 물을 시기도 더 가까워지고 있다. 


‘대통령의 7시간’ 관련해선, 얼마 전 더불어민주당 김영춘 의원(부산진 갑)이 “특조위 조사 대상에서 대통령의 당일 행적을 제외하자”고 제안했지만 이는 안 될 말이다. 하도 정부 반발이 거세다보니 ‘급한 불(=특조위 시한 연장) 끄자’는 식으로 우회한 듯하지만, 대통령은 일개인이 아니다. 국가시스템 핵심인 대통령이 자국민 위급 상황에 어찌 대처했는가를 제쳐두고 나머지 변죽만 울리는 것은 신발 신고 발바닥 긁기에 불과하다. ‘VIP의 시간’을 밝혀야 하는 이유는 누구 개인의 사생활과는 관련이 없다. 그 때 대통령이 잘 근무했나, 국가시스템 정점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나 따져야하기 때문이다. 


해양수산부는 이달말 특조위 해체를 기정사실화하며 파견공무원 소환 등을 명했다. 정부 여당은 그간 총력 다해 세월호 초점을 희석시키려 했다. 하지만 그 댓가로 두 달 전 총선에서 여소야대를 얻었다면 내년 말 대통령선거에서 그들이 또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정권이 바뀌면 어찌되나. 진짜 세월호, 4대강, ‘옥시’ 청문회가 열리면 어찌 되나. 두려울 게 십분 예상되나 언제나 정직이 최선이다. 아무리 두려운들, 꽉 막힌 창문 밖 하늘에 서서히 바닷물이 차오르던 그때 당신 어린 형제 공포만 할 것인가. / 임용진(논설고문)



온누리 - 연꽃소리(새전북신문, 2016.6.30) 



  법정은 연꽃사랑이 남달랐다. 김영삼 정부 시절인 지난 1993년 경복궁 경회루를 가득채운 명물 홍련이 다 뽑혀 홍릉수목원으로 옮겨졌다. 경복궁 뿐아니라 창덕궁 등에서도 연꽃이 실종됐으니 들리는 말로는 연꽃이 불교 상징이라 없앴다고 했다. 아다시피 김영삼 대통령은 기독교 신자다. 법정은 첨에 이를 믿지 못하다 직접 자기 눈으로 확인하고 하도 기가 막혀 탄식한다. “꽃에게 물어봐라. 꽃이 어느 종교에 소속된 예속물인가.”




   법정은 아무 데 연꽃이 좋다고 하면 천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한번은 전남 무안군 복룡저수지 백련이 좋다는 소문을 듣자 견디지 못하고 바로 다음 날 행장을 꾸려 서울서 현지까지 왕복 이천리길을 다녀오기도 했다. 지금은 유명하지만 이십여 년 전 복룡저수지 백련은 비경 축이었다. 법정은 이를 발견하고 무척 흐뭇해 한다. “꽃의 모습은 백련 쪽이 훨씬 격이 있다. 어째서 이런 세계적인 규모의 백련이 지금껏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는지…” 




   한문에선 향기를 ‘듣는다’(=문향·聞香)고 쓴다. 강한 향수, 화장품, 좋은 포도주 향은 즉각 확산된다. 그건 맡는 향, 취하는 향, 색깔 있는 향이되 듣기엔 부적합하다. 연꽃 청향, 매화 암향이 귀 기울여 듣는 향이다. 이들은 거저 내게 오지 않는다. 구도자처럼 기다리는 자에게만 소리를 들려준다. 




   법정은 향기를 맡는다는 건 ‘동물적인 표현’이라고 싫어했다. 연꽃은 철학적, 문학적으로 들릴 뿐아니라 실제 소리를 내기도 한다. 어스름한 새벽 연꽃 사이에 서 봤는가. ‘퍽 퍽’. 꽃봉오리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 그건 사랑 고백이다. 자연이 듣는 자에게만 보내는 연서! 




   그제 본지 1면 사진에서 덕진연꽃을 봤다. 그 홍련 편지질에 또 내 가슴이 설레인다. 새벽 봉오리 터지는 소리 뿐 아니다. 바람에 큰 잎 날리며 펄럭대고 새벽엔 이슬 구르면서 ‘또르륵, 퐁’, 그리고 장마철 소낙비에 콩볶는 듯 타닥거리기까지 연꽃성은 실로 다양하다. 이때 그걸 놓치면 또 죽도록 들을 수 없을테니, 벗이여. 오늘은 연꽃 핑계 삼아 덕진공원 나들이 후 한 잔 하리라. 경북궁에도 없는 홍련, 해탈한 법정이 날 보고 오히려 부럽다 하지 않을까? / 임용진(논설고문)



온누리 - 쌀(새전북신문, 2016.7.7.)



전북은 쌀이다. 




평범하고도 새삼스런 사실이다. 사방 널린 게 논이고 쌀이어서 전북인은 그냥 이를 익숙하게 넘길 뿐이다. 김제군 광활면에 가면 진짜 평야가 있다. 일망무제, 사방 툭 트여 시야를 가로막는 게 일점도 없으니 한반도에서 이런 경개는 전북에만 있을게다. 이 좋은 곳 쌀을 가져가려고 지난날 일제가 새 항구(=군산)까지 만들었으니 전북 쌀 좋은 건 남이 먼저 탐냈다.




한국인은 밥심으로 살고 밥맛 좋으려면 좋은 쌀이 제일이다. 아무리 잘 씻고 물과 비율 맞춰 최신형 압력솥에 넣는다 한들 쌀이 시원찮고서야 맛은 이미 틀린 일이다. 지난날엔 쌀 종류가 정부미(통일벼), 일반미(아끼바레) 고작 두 가지였으나 요즘은 쌀 상표도 춘추전국이다. 전국 지자체 RPC(미곡종합처리장)에서 나오는 국산 쌀 상표가 1,800종이나 된다. 




정부나 소비자보호단체 등이 이를 대상으로 매년 10여가지 ‘명품’을 발표하는데 언제나 최강, 최다 입상자는 전북산이다. 올해도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 5일 전국 쌀을 대상으로 심사, ‘후보 명품’ 31개를 일차 추천한 결과 전북 상표가 거기 7개나 끼었다. 철새도래지쌀(군산 제희RPC ※이하 RPC생략), 탑마루 골드 라이스(익산 명천), 옥토진미(군산 회현농협), 상상예찬골드(김제 공덕농협), 새만금 쌀(김제 새만금농산), 갯마을 천년의 솜씨(부안 동진협동), 방아찧는날 골드(김제 이택) 등이다. 지역별로는 전남, 충남, 경남 등이 3개씩 포함돼 전북의 반도 안 된다. 농림부는 이 후보 중에서 오는 ‘올해의 명품’ 10개를 골라 오는 12월 최종발표한다. 




군산 철새도래지쌀은 탄력 좋고 윤기가 반지르르하다. 지난해 전국 처음으로 미국에 수출됐다. 익산 탑마루 골드 라이스는 최근 전국 1, 2위를 휩쓴 명품이다. 이밖에 다른 전북 상표도 유명 제과점, 식품 프랜차이즈, 학교 급식 등에 납품되고 있다. 이천, 강화 등도 이름난 산지지만, 전북인이라면 가까운 보석을 놔두고 굳이 먼 데 쌀을 찾을 필요가 있겠나 싶다. 




일본 니가타 한 료칸에서 고시 히카리로 지은 밥을 일본인들이 무릎 꿇고 손 떨며 감격적으로 먹는 걸 본 적 있다. 저러다 울지 않을까 하는 수준이었다. 전북 쌀도 그렇게 될 것이다. 한국인은 누구나 쌀밥에 관한 한 소믈리에다. 더구나 까다로운 이 고장 입맛을 통과한 전북 쌀이니 일본, 중국인을 울린다 해도 이상할 게 없다. / 임용진(논설고문)



온누리 - 폭로(새전북신문, 2016.7.14.)



   ‘고도원의 아침편지’로 유명한 고도원은 전주 출신이다. 그는 1997년 제 15대 대통령선거 때 잘 나가는 신문사 중견(중앙일보 정치부 차장)이었으나 하루 아침에 잘린다. 그의 직계상사인 정치부장이 이회창 대선후보에게 매일 정세보고를 하고 있음을 폭로했기 때문이다. 중앙일보 홍석현 당시 사장은 이회창 후보의 경기고등학교 후배다. 중앙일보 - 삼성 라인이 이후보를 밀고 있음은 알 만한 이는 모두 아는 사실로 눈치 빠른 정치부장이 그 다리 역할을 했다. 고도원의 폭로는 회사로선 배신이었으나 기자로선 결단이었다. 




   또 다른 기억. 1986년 전두환 군부 정권 서슬이 퍼럴 때 한국일보 편집국 내에 보도지침이 공개적으로 붙어 회사를 뒤집어놨다. 보도지침이란 신군부의 일일 언론통제 기밀 문서다. 안기부(현 국정원) 직원이 사장실, 편집국장실에 상주하던 시절이다. 뭐는 빼고, 제목과 단어 바꾸고, 뭐는 더 확대편집하란 식의 보도지침이 매일 편집국장에게 은밀히 전달되는데 당시 편집부 기자던 김주언이 야근하며 이를 비밀리 복사, 편집국 전체에 공개해버린 것이다. 김주언은 동시에 보도지침 약 600건을 통째로 월간 ‘말’지에 제공했다. 물론 그는 잘리고 갇혔지만, 그의 폭로는 한국 언론사에서 가장 대찬 일이 됐다.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이 열흘 전 세월호 침몰 직후 당시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의 음성 지침을 공개했다. “다른 걸로 대체해주든지 아니면 말만 바꾸면 되니까 한번 더 녹음해주쇼”. 이정현과 김시곤은 광주 살레시오 고등학교 동문이다. 선배 이정현이 다급한 음성으로 ‘대통령’을 팔며 후배 김시곤을 재촉하는 분위기가 생생히 드러났다. 보도지침은 음성과 문서로 형태만 달라졌을 뿐이다. 김시곤은 이 녹취를 보관하며 고민하다 앞 김주언의 설득으로 이번에 공개했다고 한다. 




   언론의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가 모르는 사실 들추기, 폭로다. 나흘 전 경향신문의 교육부 나향욱 전 정책기획관 막말 보도도 이 나라 고위공무원에 감춰진 민낯을 단적으로 들췄다. 뭘 알릴 것인가 말 것인가, 들추는 의도가 공익이냐 센세이션이냐의 잣대는 물론 민중이다. 신문은 왕이나 공주나 대통령을 위해서가 아니라, 민중을 위해 존재한다. 그래서 누가 가축 쯤으로 낮춰본다 하더라도 신문이라도 있어야 약한 이가 좀 덜 억울하다. 나향욱 막말 보도에 이정현 ‘세월호 보도지침’이 그세 묻힌 듯해 아쉽긴 하다. / 임용진(논설고문)




온누리 - 위선(새전북신문, 2016.7.21.)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 첫 황제 아우구스투스를 ‘라 그란데 후포크리시스’(=위대한 배우)라고 했다. 공화정을 할 생각이 전혀 없었음에도 공화정을 선포하는 척하다 원로원이 주는 종신 최고 통치자(=황제) 관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후포크리시스’는 가면 쓴 배우 또는 연기를 뜻한다. 이 그리스 말에서 요즘 영어 히퍼크러시(=위선)가 나왔다. 그러고 보니 고 박정희 대통령도 후포크리시스였다. 군사구데타 후 민정이양 하는 척하다 대통령에 선출된 몇 년 후 유신선포로 종신대통령 직을 노렸다. 이런 게 위선이다. 




나향욱 전 교육부정책기획관이 어제 파면됐다. 국민을 ‘개·돼지’라 했으니 파면이 당연하다. 품위손상 발언 때문에 고위공직자가 파면되기로는 그가 처음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를 놀라게 한 건 ‘개·돼지’가 아니다. 국민을 통치 대상 미물 쯤으로 본 거야 고관들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니 새삼스럽지도 않다. 그런데 나씨는 열아홉 나이에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전동차에 끼여 사망한 한 청년에 관해 “물론 비극이지. 하지만 그게 내 일처럼 느껴지나? 그렇다면 위선 아닌가?”라고 했다. 스크린도어에 끼인 건 그 청년만이 아니었다. 대한민국의 많은 일용직, 계약직, 알바 청년과 그만한 자식을 가진 부모들, 이웃 비극에 고개 돌리지 않는 평범한 시민들이 모두 안타까와 했다.




정조는 1776년 세곡을 운반하는 배가 서울로 오다 침몰해 수백명이 죽자 이렇게 하교한다. “북쪽 백성을 구하려다 도리어 남쪽 백성을 해롭게 한 것이니, 내가 딱하고 마음이 아파 차라리 죽어 몰랐으면 싶다”. ‘차라리 죽어 몰랐으면 싶다’니! 이런 평범한 가슴이 위대한 군주 정조의 진면목이었다.




나씨에게 묻고 싶다. 정조도 위선자였나? 세월호 노란 리본을 달고다녀도 위선인가? 위선이란 말 함부로 쓰지 말라. 공감과 동조는 때로 용기이기도 하다. / 임용진(논설고문)



온누리 ‘이건희 동영상’(새전북신문, 2016.7.28.) <o:p></o:p>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때문에 온 나라가 조용히 시끄럽다. 고 노무현 대통령은 생전에 “권력은 이미 시장(市場에 넘어갔다”고 말했다. 그 시장 권력 최강인 이건희 ‘경제대통령’이 젊은 여성 여럿과 정기적으로 성매매를 한 동영상(탐사전문 인터넷 매체 ‘뉴스타파’, 21일 보도이 돌아다니니 시끄러울 만하다. 동영상 사이트인 유투브를 쳐 보니 조회건수 무려 933만 3,184회를 기록중이다. 한국어 동영상을 외국인이 많이 볼 리 없고 유투브 조회자 대부분이 한국인이라 치면 국민 다섯 중 하나가 본 셈이다. 그런데도 방송 신문 등 이른바 주류언론이 침묵을 지키고 있으니, 시끄럽되 조용할 수 밖에 없다. 이건희 동영상은 몇 가지 점에서 흥미롭다. 첫째, 내용. 경제대통령께서 자택 또는 비밀가옥에서 손녀뻘 업소 여성 서넛과 집단으로 수상쩍은 뭔 일을 하시고 일인당 오백만원씩을 직접 주신다. 충격적이긴 하나 이미 영화(최근엔 ‘내부자들’) 등에서 익히 접했고 지난날 박정희 정치대통령께서도 시해장소에서 들통난 건이여서 영 생소한 것만은 아니다. 둘째는 제보자들. 뉴스타파 보도 전에 애초 한겨레신문에 동영상 제공 댓가로 5억원을 요구한 이가 있었다 한다. 이모, 신모라는 그들은 삼성 최고위 임원과 CJ그룹에도 비슷한 제의를 했다 하지만 현재 종적이 묘연하다. 혹시 삼성이 ‘관리’하고 있지 않나 걱정된다. 셋째 취재경로. 뉴스타파는 3천여명 정도의 소액 후원으로 유지되는 영세 언론이다. 이 회사가 수억원 씩 주고 동영상을 샀을 리 만무하고 어찌 잭팟을 터뜨렸는지 전직 기자로서 직업적 궁금증이 생긴다. 물론 뉴스타파는 입을 꾹 다물고 있다. 넷째, 주류 언론의 보도태도. 이건 뻔할 뻔자다. ‘밤의 대통령’ 조선일보를 비롯해 중앙, 동아일보는 마이동풍, 묵묵부답이고 다른 데도 단신 또는 인터넷판에만 보도한다. 신문에 낸 건 한겨레(11건와 경향신문(3건 뿐이다. KBS는 지상파 뉴스가 아니라 22일 밤 인터넷판에 잠깐 냈다 그마져 내용을 지웠다. 삼성전자 한 군데의 일 년 언론 광고집행액이 3조원이라니 사정은 그로써 짐작된다. 이건희 회장 뿐 아니다. 치매와 아들 재산다툼으로 망신중인 신격호 롯데 회장, 무당말 믿고 회사돈 횡령해 증권 투자한 최태원 SK회장과 배임죄에 유전성 희귀질환까지 겹친 이재현 CJ 회장도 떠오르니 그들이 하나도 안 부럽다. 혹시 정치대통령, 밤의 대통령께서는 안녕하신지, 궁금하다. / 임용진(논설고문. #####



온누리 - 새만금 카지노(새전북신문, 2016.8.4.)




  




나는 소싯적 노름에 빠진 적 있다. 그러다보니 도박 문화도 좋아해 해외출장시 유명 카지노를 일부러 들렀다. 유럽을 가게 되면 검은 계통 정장과 넥타이를 몰래 챙겼다. 그러다 들켜 처에게 핀잔 받으면 “뭐, 그냥 폼 좀 잡으려고…” 말꼬리를 흐렸지만 사실은 유럽 카지노 입구를 통과하기 위해서였다. 거기선 양복쟁이 아니면 아예 입장 불가인 곳이 많다. 




카지노는 국가다. 그 나라 문화나 국민적 특징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라스베이거스나 애틀랜틱 시티 등의 미국 카지노 리조트는 가족 손님이 많고 중산층 오락장으로 정착된 느낌이다. 여기저기서 슬럿 머신 기계음이 드륵, 드륵, 좌르르! 들리며 손뼉과 웃음, 탄식이 교차한다. 화려하고 명랑하고 시끄러운 게 할리우드 영화에서 익숙한 그대로다. 




최근엔 마카오(중국) 약진이 눈부시다. 몇 년 전 마카오 리스보아 호텔이 도박액, 관광객수에서 라스베이거스 시저스 팰리스를 앞섰으며 마카오 시내도 몰라보게 비까번쩍해졌다. 하지만 카지노 안에서 중국인들은 매우 진지하다. 도박객 표정이 심각해 보이며 딜러에게 말을 건넬 수도 없다. 딜러에게 규칙이라도 물어보면 화난 눈초리가 돌아온다. 즐거움보다는 황금색 집념이 강해 좀 무겁게 느껴졌다. 




미국인이 놀러 가고 중국인이 돈 따러 간다면 유럽 사람들은 카지노에 돈 쓰러 간다. 특히 귀족들 과시 소비하는 곳이다. 비스바덴, 바덴바덴(이상 독일), 바덴 바이 뷔인(오스트리아) 등 ‘바덴’ 자 들어가는 오래된 온천휴양지 카지노는 아예 궁전이다. 벽에 오래된 그림이 붙었고 샹들리에 주렁주렁 매달렸고 턱시도, 드레스 차림의 남녀가 고액 칩을 던진다. 그 유명한 몬테 카를로 그랑 카지노(1878년 개관)에 들어섰을 땐 성지순례 끝 바티칸에 도착한 느낌이었다. 파리 오페라 극장을 설계한 샤를 그르니에의 장엄한 건축물 속에서 난 노름이 아니라 분위기에 졌다. ‘쿠르피에’라고 하는 이곳 딜러는 부드럽게 프랑스어로만 (영어는 모르는 척!) 말했다. 마치 교양 없는 이는 도박도 말라는 듯. 큰 창으로는 지중해 푸른 바다 흰 돛배 보이고 천장엔 대형 보헤미안 글래스가 반짝이고 있었다. 




국민의 당이 새만금에 내국인 출입 카지노를 추진한다고 한다. 새만금에 중국 도박객만 몰려도 전북은 ‘대박’이다. 내국인 출입에 관해선 이견이 없지 않으나 기본적으로 전북을 먹여 살릴 양식이라면 카지노인들 어떠랴. 벌써 강원랜드 주가가 떨어졌다 한다. 그만큼 전국적 관심사다. / 임용진(논설고문)








온누리 - 8월9일(새전북신문, 2016.8.9.)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먼저 1936년 8월9일. 제11회 베를린올림픽 남자 마라톤 최종일 손기정은 32km 지점 빌헬름 언덕 오르막에서부터 치고나갔다. 2시간29분19초2 올림픽 기록으로 우승. 올림픽 사상 첫 2시간30분 벽을 깬 경사여서 10만관중도, 히틀러도 벌떡 일어서 박수 쳤다. 하지만 식민지 청년 ‘기테이 손’(손기정)은 죄지은 이마냥 고개를 떨궜다. 남의 이름, 남의 국기로 금메달 시상대에 섰기 때문이다. 이후 동아일보, 조선중앙일보, 신동아, 신가정 등이 히노마루(일장기)를 지운 채 보도해 무기정간, 폐간에 이른 것은 모두 아는 대로다. 




마라톤은 1992년 8월9일에도 드라마를 썼다. 제25회 바르셀로나 올림픽 최종일 황영조가 우승했다. 기록 2시간 12분 23초. 이번엔 일장기가 아닌 당연한 ‘태극기 우승’이었다. 바르셀로나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직접 그걸 지켜본 노옹 손기정(당시 80세)이 관중석에서 벌떡 일어서 덩실덩실 춤을 췄다. “내 죽기 전 이런 날이 오다니…” 손기정의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시상식을 끝낸 황영조는 자신의 목에서 금메달을 빼 손기정에게 걸어줬다. 숙연한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역사에 신이 있는진 모르겠으나 체육엔 있는 것 같다. 그게 아니면 ‘일장기 우승’으로 상징되는 식민통치의 비인간성, 불합리, 잔인함을 반세기도 더 지나서 딱 그날, 딱 그 종목에서 바로잡을 리 없잖은가. 하필 황영조에게 진 은메달리스트는 일본의 모리시타였다. 그는 경기 내내 이를 악물었으나 결국 황영조 뒤에서 그의 등만 쳐다봤을 뿐이다. 




스포츠 특히 육상 등 기록경기는 정직, 담백한 것이어서 국가주의를 개입시키는 것조차 어떨 땐 삿되다. 하지만 우리가 역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므로 8월9일도 잊을 수 없다. 오늘은 손기정이 촉발시키고 식민지 하 기자들이 과감히 결행하던 ‘일장기 말소 의거’ 80주년 되는 날이다. 베를린의 슬픔과 바르셀로나의 반전을 어찌 잊겠는가. 일본도 잊지 말았으면 좋겠지만 아베 아래선 애초 그른 듯하다. / 임용진(논설고문) 




  








온누리 - 피식민 가족사(새전북신문, 8월18일자)




  




8월 광복의 달이니 그거나 이야기 하자. 




가와모토 마사키(川本正樹)는 남원사람, 1928년 생이다. 그는 한국인 양용현이지만 일제하 이른바 창씨개명으로 가와모토란 이름을 쓴다. 1943년 전주 북중학교(현 전주고 전신) 1학년이던 그는 급우 두 명과 함께 2주 정학을 당한다. 하교길에 노송동 골목길에서 친구들과 한국어로 이야기한 게 징계 사유다. 골목길이라 아무도 없을 줄 알았는데 뒤에서 살금살금 따라온 일본인 지리 교사 노다(野田)에게 현장을 잡혔다. 




가와모토는 내 외삼촌이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 학교에 가 노다 등에게 ‘다신 한국말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돌아온다. 그의 아버지, 내 외할아버지는 평소 ‘호랑이’ 소리를 듣는 엄한 사람이다. “학교에서 중징계를 받아 ‘이젠 죽었구나’ 했는데 같이 집으로 돌아오며 한 마디도 안 하시는 거야. 단 한 마디도.” 외삼촌의 회상이다. 드러내놓고 친일도, 반일도 못하는 소시민이 자식의 모국어 사용에 대해 칭찬도 질책도 않던, 그런 답답한 침묵이었을 것이다. 




가와모토를 정학시킨 노다는 소석 이철승과도 악연이다. 노다는 평소 “한글은 야만인이 쓰는 부호”라며 멸시했고 걸핏하면 한국 학생을 때렸다. 이철승은 전주북중 졸업반 때 지리과 수업도중 급우 송경문을 목검으로 후려치려는 노다를 대번에 교실 바닥에 내려꽂아 한국 학생들 사이에 영웅이 됐다. 이 ‘유도’ 사건으로 이철승 등 다섯 명이 퇴학 위기에 처한다. 당시 교장이 일제 교육당국에 빌어 간신히 퇴학을 면하긴 했다. 




외삼촌 뿐 아니라 내 큰 이모는 마사코(雅子), 어머니는 요시코(佳子), 작은 외숙은 노보루(昇)이었다. 내 아버지도 중학교 때 일본 이름을 썼다는데 이미 타계 후여서 자세히 알 길이 없다. 자랑스럽지도 않은 ‘창씨’나 생면부지 노다 교사를 쓰는 것은 그게 당시 식민지 가족의 아픔이고 평균이자 팩트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엊그제 광복절 경축사를 ‘어려운 시기 콩 한쪽이라도 나눠먹자’는 식 새마을 구호로 일관했다. ‘사드’, ‘위안부’ 등 현안이 민감 위급한 터에 ‘살기 좋은 대한민국’만 역설했다. 




별 볼 일 없는 민초도 광복절 전후해선 식민지 시절 가족사를 되새겨본다. 대통령도 거창하게 대한민국 역사가 아니라, 가족사부터 시작하심이 어떨지. 그녀 아버지는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박정희)였다. / 임용진(논설고문)








온누리 - 좀비 코드(새전북신문, 2016.8.25.)










서양 사람들은 왜 그렇게 흡혈귀, 좀비를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머리 풀고 소복 입은 한국 귀신도 아니고, 못 박힌 방망이를 들고다니는 오니(=일본 도깨비)도 아니고, 사람처럼 생긴 시체들이 피를 빨거나(=드라큘라) 살을 뜯어 먹으며(=좀비) 암흑을 전염시키는 서양귀신 영화는 내 것처럼 여겨지지 않아 한 동안 무섭지도 않았다. 그냥 웃겼다. 




그런데 요즘은 좀비 영화가 무섭다. 떨리고 가슴 아프고 쓸쓸하고 가끔 눈물도 난다. 좀비 처지가 남의 일로 여겨지지 않는다. 좀비 공포의 본질은 귀신과 사람, 얼 빠진 이와 제 정신 가진 이의 경계가 흐릿하다는 점이다. 누구나 물리면 금방 좀비가 돼 흐느적거리면서 다른 약자에게 달려든다. 살면서 누구나 물고 물린다. 갑질을 당하고 때로는 한다. 당신은 누구를 문 적이 없던가. 




유명 좀비 영화 ‘새벽의 황당한 저주’(감독 에드거 라이트)에서는 좀비들이 쇼핑몰을 돌아다닌다. 이를 본 주인공들이 대화한다. “대체 저거 뭐야?” “우리들이지. 쇼핑을 좋아하잖아” 자본에 물린 중산층이 새끼 좀비와 다를 바 없다는 풍자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감독 톰 새비니)에서는 좀비를 잡은 민병대원들이 좀비를 나무에 밧줄로 달아매며 낄낄댄다. 흑인을 나무에 매달던 악명 높은 흰 색 고깔 KKK 단원에 대한 감독의 ‘디스’(=욕설, 고발, 책망)다. 




한국 좀비영화 ‘부산행’(감독 연상호)을 봤다. 서울서 부산 가는 열차 속에서 좀비와 정상인이 싸운다. 수백명이 죽고 결국 안전지대 부산에는 단 두 명만 닿는다. 열차 칸칸마다 문을 닫고 좀비 침입을 막는다고 정상인에게도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의심과 이기주의. 한 학생이 문 닫는 어른에게 외친다. “내 친구가 아직 밖에 있어요”. 행정안전부 장관은 여기서도 무책임, 무능력하다. 좀비출현이 ‘폭동’이며 ‘국민 여러분은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라’고 발표한다. 어디서 본 듯 하지 않나. ‘부산행’은 세월호와 메르스에 갇힌 대한민국이다. 그들이 탄 KTX 열차번호가 406호. 세월호 참사일(4월16일)을 차마 그대로 쓰진 못했나보다. 




우린 평등할지 모른다. 출구 없는 ‘부산행 기차’(라고 쓰고 ‘헬조선’이라 읽는다)에 있다는 점에서. 이미 좀비가 됐거나 곧 될 거라는 점에서. 그걸 인정하는 게 불편해서, 그 불편함을 카타르시스(해소)해 주기 때문에 ‘부산행’은 인기 있나보다. 어제 관람객 1천1백만명을 넘겼다고 한다. 




딴은, 굳이 영화관 안 가도 공포 투성이다. 사람들은 신호대기 짧은 짬에서도, 지하철에 매달려서도 일제히 스마트폰만 본다. 이들은 핸드폰 좀비다. 당신은 아닌가? / 임용진(논설고문)




온누리 - 병탄(새전북신문, 2016.8.29.)




오늘이 106주년 국치일이다. 




1910년 이날 매국 대신 이완용이 일본 통감 데라우치와 이른바 ‘한일합방’ 조약에 서명했다. 이를 ‘이른바’라고 한 것은 합방이 일본에 편한 말이기 때문이다. 




합방(合邦)이란 문자 그대로 둘 이상 나라(=邦)가 합치는 것이다. 일본은 조선 주권을 야금야금 잠식하던 1870년대 이후 이 말을 죽 쓰고 있는데 이는 합방이 비교적 영토적·중립적 어감을 주고 힘으로 뭘 뺏는다는 느낌은 적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입장에선, 억지로 일본에 합쳐졌다는 의미에서 아우를 병(倂) 자를 써서 ‘합병’(또는 ‘병합’)이라 쓰는 게 옳다고들 한다. 




하지만 일본은 조선을 그냥 아우른 게 아니라 수 십 년에 걸쳐 힘으로 을러대고 옥죄어 조선강토 조선인민을 집어삼켰다. 그래서 내 생각엔, 삼킬 탄(呑) 자를 더해 ‘병탄’(倂呑)이라 쓰는 게 낫다고 본다. 다 같이 합친다는 뜻이나 힘의 부당성을 나타내기론 ‘합방 < 합병 < 병탄’ 순으로 강하다. 




제가 못해 그리된 것, 다 지난 것인데 구별해 뭣하냐는 불평도 있겠으나 말은 생각의 집이다. ‘합방’이란 단어엔 ‘합의하에 또는 합법적으로 합친 건데 뭘 그러냐’는 일본식 막말이 숨어있다. ‘병탄’엔 내 땅, 내 혼을 빼앗긴 억울함이 있다. 일제 때가 아니라 ‘일제강점기’라 하고, 해방이 아니라 ‘광복’이라 쓰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교과서, 신문, 방송 등에서부터 이런 용어 통일이 이뤄지면, 한자를 알 건 모르건 적어도 지난날을 쉽게 잊진 않을 것이다. 최소한 ‘왜 같은 뜻인데 다른 단어를 사용하는가’에 대한 의문은 남길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일부 지자체 시청, 도청이 국치일에 조기를 달고 있다. 늦었지만 잘한 일이다. 내친 김에 달력, 탁상용 다이어리 등에도 표시했으면 좋겠다. 국치 뿐아니라 ‘세월호’ 등 국가적 참사도 달력에 붉게 표시해 불망력(不忘曆)을 만드는데 그 배포대상은 고위 공직자로 하면 어떨까. 높이 올라갈수록 웬일인지 중요한 걸 잘 잊어먹으니 말이다. / 임용진(논설고문)



온누리 - 소년등과(새전북신문, 2016.8.31.)



  노무현 참여정부가 자신의 권위를 인정 않는 데 실망한 검찰 권력은 또 다른 권력과 손 잡는다. 보수언론이다. 참여정부 푸대접에 절치부심하기론 조·중·동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둘 모두 ‘동일체’ 신봉 집단이다. 시키면 무조건 털고, 시키면 사정없이 쓰면서 두 동일체는 최고 비극을 합작한다. 노무현 투신이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은 검사 출신이다. 중수부 검사 시절 DJ의 이른바 ‘이용호 게이트’, 노무현의 ‘박연차 게이트’를 직접 조사한 이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은 그에게 조사받은 직후 투신했다. 당시 조선일보 등은 우 검사가 외압 겁내지 않는다, 뚝심있다는 식으로 소개했다. 지난해 초 그가 민정수석에 내정되자 조선일보는 또 “만 20세에 사법시험에 ‘소년등과’한 데 이어 40대 후반에 민정수석까지 올랐다”고 특필했다. 


 하지만 밀월은 끝난 듯하다. 정치권력과 언론권력의 두 대표가 결사 난타 하고 있다. 엊그제 조선일보 송희영 주필이 사퇴했다. 누군가 제보로 그가 지난날 대우조선 전세기로 공짜 유럽여행하고 하루 8,000만원짜리 초호화 요트에도 탄 게 드러났다. 청와대는 송희영이 고위층에 대우조선 인사청탁까지 했노라고 친절히 증언했다. 조선일보는 지난 한 달 간 청와대 우병우 수석 재산과 아들 보직 압력 의혹 등을 보도하며 줄기차게 그의 사임을 요구하고 있었다. 


인생 불행 몇 가지 중 지나치게 빨리 출세한 ‘소년 등과’(少年登科)와 똑똑하고 글 잘 쓰는 ‘유고재 능문장’(有高才 能文章)이 으뜸이라고 한다. 이런 케이스 치고 끝 좋은 이 드물기 때문이다. 지금 판국은 이 두 메이저급 불행의 막장 다툼이다. 젊은 벼슬아치 우병우와 글발 센 송희영, 청와대와 조선일보가 사생결단하고 있다. 하지만 답은 나와있다. 지금 권력에서 밀려나거나 곧 밀릴 뿐이다. 권력엔 공유 분점이 없으니 그들이 한때 노무현 강적 앞에 연합하다 등 돌렸듯 앞으로도 세력따라 몰려다닐 뿐이다. 


청와대와 조선일보에게 묻노니 중요한 건 이거다. 만리장성 앞에서 어디 진시황이 보이던가. 제발 잘나고 배운 이답게, 방정(方正)히 처신하라. / 임용진(논설고문)